연줄 없고 눈치도 안 봐 ‘오해’ 살 만한 스타일
▲ 사진제공=SK 와이번스 | ||
SK는 시즌 전 예상과 달리 넉넉하게 단독 1위를 질주하고 있다. 본래 1위 팀은 견제를 당하게 마련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팀들은 항상 1위 팀을 흔들려는 노력을 한다. 여기에 김성근 감독의 야구 스타일이 다소 비신사적이라는 해석까지 더해졌다.
#“한화는 감독 입을 막아야지”
김성근 감독이 갖고 있는 프로야구 8개 구단의 선수단 일람표에는 군데군데 형광펜으로 덧칠이 돼있다. “얘는 한번 데려와서 키우고 싶은데 연봉이 너무 세네” “이 정도 성적에 왼손 타자면 ○○○와 트레이드해서 데리고 왔으면 좋겠어” 등 관심 있는 선수들을 체크해 놓았다. 그런데 한화 이글스 선수 명단에는 단 한 곳에도 형광펜 칠이 돼있지 않았다. 취재진이 “한화 선수들에는 관심이 없으신가”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김성근 감독은 일람표에서 김인식 감독을 가리키며 “한화에선 김인식 감독 입을 칠해야지”라는 농담을 던지며 껄껄 웃었다.
올해 들어 김인식 감독이 마치 ‘김성근 저격수’처럼 자신에게 딴지를 거는 발언을 자주 했던 걸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화에선 선수가 아니라 김인식 감독의 발언이 자신을 뜨끔하게 만들며 괴롭힌다는 얘기다. 그런 관계니 설령 원하는 선수가 있어도 교섭이 될 리 없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올해만 해도 여러 차례 사건이 있었다. 김성근 감독이 경기 중 잠수함투수 조웅천을 잠시 좌익수로 기용했던 기상천외한 사건 때에도 김인식 감독은 “그게 뭐~야, 완전 SK고등학교야. 고등학교 야구네”라며 비난했다. 최근 SK가 KBO 코치 인원(6명) 규정을 어기고 경기 중 더그아웃에 비등록 코치 2명이 더 있도록 했다가 지적받은 것과 관련해서도 김인식 감독은 “다른 팀에서 말하기 전에 SK 스스로 규정을 지켜야 한다”며 일침을 가했다.
#‘SK식 벌떼야구’
김성근 감독은 데이터 야구 신봉자다. 이른바 ‘벌떼 야구’로 특출난 스타플레이어 없이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그런데 워낙 세밀하게 경기를 운영하다보니 상대 입장에서 열 받을 만한 사건도 자주 벌어진다.
얼마 전에도 SK가 7-1로 앞서고 있는 가운데 9회 마지막 수비 때 아웃카운트 1개를 남겨놓고 투수를 바꾼 일이 있었다. 게다가 7-1 정도로 앞선 팀에서 경기 막판에 그다지 필요 없는 2, 3루 도루를 자꾸 시도하면 상대팀 벤치는 부글부글 끓을 수밖에 없다.
올해 SK 야구에 이 같은 일이 잦다는 것이다. 이러다보면 이른바 ‘보복 행위’가 등장하게 된다. 당일이야 참는다 해도, 다음 경기에서 SK 타자들을 향해 빈볼이 날아가는 경우가 발생한다. SK가 열 받아서 여기에 대응하면 결국 또 보복이 이어진다. 빈볼의 악순환이 한동안 지속되는 경우가 바로 이런 사례다.
다른 팀 사령탑들도 “SK는 몸조심해야지, 그렇지 않고 다치면 자기 손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김성근 감독이 은근히 약 올리는 플레이를 많이 하고 있으니 여차하면 한 게임 정도 승부를 포기하고 보복에 집중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상황이 꽤 심각하다는 걸 눈치 챈 김성근 감독은 최근 삼성 롯데 등과의 빈볼 시비가 불거진 뒤 곧바로 “빈볼도 없을 테고, 보복도 있어선 안 되는 것”이라면서 한발 물러섰다.
#비호해줄 인맥 없는 것도 이유
1942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김성근 감독은 재일교포 2세 신분이었다. 나중에 한국대표팀에서도 활약했지만 김 감독이 국내 야구계에서 세력화할 연줄을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지난 30년간 김 감독의 지도 스타일에 감명받은 몇몇 코치와 선수들이 “나는 김성근 감독 계열”이라고 말하긴 하지만 하나의 세력을 이룰 만큼 숫자가 많지는 않다.
이 같은 김 감독의 배경이 그만의 독특한 야구 스타일을 만들어왔다고 보면 된다. 남들 눈치 볼 필요 없이 철저하게 성적과 기량만으로 선수를 기용한다. 김성근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 형편없던 전력의 팀도 4강권에 올라가는 사례가 많았다. 남들은 비신사적이라 불릴 만한 선수 교체도 김성근 감독 입장에선 ‘만약에 대비한 철저한 뒷문 관리’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일부분 오해를 살 만한 스타일인 것도 사실이다.
또한 위아래로 연줄이 거의 없는 편이기 때문에 어떤 시비 거리가 생겼을 때 프로야구계에서 김성근 감독을 비호해줄 만한 인물이 드물다. 그래서 나머지 7개 구단으로부터 공격받기 쉬운 대상인 셈이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