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안착 노리는 넷플릭스와 창작 자유 원하는 봉 감독의 새로운 실험에 시선집중
<옥자>의 제작비는 500억 원 규모다. 제작비를 전부 투자한 곳은 미국에서 출발한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다. 전 세계에서 6900만 명에 이르는 유료 가입자를 가진 넷플릭스는 <옥자>의 순제작비 5000만 달러(약 579억 원)를 전액 투자했다. 한국 영화는 물론 해외 자본이 투입된 합작 영화를 통틀어 역대 최대 규모다. 봉준호 감독은 넷플릭스로부터 제작비 투자는 물론 영화 촬영과 편집 등에 관한 전권을 부여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힘입어 <옥자>에는 할리우드 스타 제이크 질렌할과 릴리 콜린스, 틸다 스윈튼, 폴 다노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여기에 톱스타 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영화 제작사 플랜B엔터테인먼트가 공동 제작사로 참여한다. 브래드 피트 역시 <옥자>의 공동 프로듀서 타이틀로 참여한다.
# <옥자>와 봉준호 감독, 왜 넷플릭스와 만났나
봉준호 감독은 첫 번째 글로벌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2013년 내놓은 <설국열차>를 통해 미국 등 해외 자본과의 협업을 경험했다. 영화는 한국에서 900만 관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고, 유럽에서도 고무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북미 지역 개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봉준호 감독은 현지 투자배급사로부터 여러 요구를 받았고,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철저히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할리우드 제작 환경 탓이다.
물론 이런 경우는 봉준호 감독에만 해당하는 일도 아니었다. 앞서 할리우드에 진출한 <스토커>의 박찬욱 감독도 할리우드 스튜디오와의 협업에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영화를 기획하고 연출하는 감독이 가진 고유의 권한을 전적으로 따르지 않는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 때문이다.
‘옥자’의 봉준호 감독은 넷플릭스로부터 제작비 전액을 투자받고 완벽한 창작의 자유를 보장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봉준호 감독이 <옥자>를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내건 조건은 ‘완벽한 창작의 자유’였다. 봉 감독은 지난해 11월 <옥자> 제작을 알리면서 “전작 <설국열차>보다 더 큰 예산과 완벽한 창작의 자유라는, 동시에 얻기 힘든 두 가지를 넷플릭스가 제공했다”고 밝혔다. 또 “감독으로서 진정 환상적인 기회”라며 “<옥자>에도 (공동제작사인) 플랜B엔터테인먼트 특유의 저돌적인 에너지가 뒤섞이길 기대한다”고도 했다.
올해 초 한국에 진출한 넷플릭스는 전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동영상 서비스다. 유명 감독 데이비드 핀처가 연출하고 케빈 스페이시가 주연한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제작해 전편을 동시에 사이트에 공개하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북미 방송가에서 ‘혁명’을 일으켰다. 한국배우 수현이 출연해 시즌2까지 방송한 넷플릭스의 또 다른 드라마 <마르코폴로>의 경우 회당 제작비가 100억 원을 넘는다. 드라마 한 편이 웬만한 한국영화 제작비보다 높다.
# 극장 개봉 없이 온라인 공개? 투자 회수는 어떻게…
영화계가 <옥자>에 더욱 주목하는 이유는 봉준호 감독이 가진 영향력이나 할리우드 배우들이 참여한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넷플릭스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된다. 극장 개봉이 중심인 한국 환경에서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옥자>가 극장 개봉 없이 온라인으로 공개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꺼낸다. 넷플릭스가 한국시장 진출을 선언함과 동시에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거액을 투자하기로 결정한 배경 역시 이를 활용해 한국 시장에 ‘안착’하려는 시도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옥자> 제작진은 “극장 개봉도 준비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그 방식에는 변화가 불가피하다. 극장 개봉 규모나 방식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투자사인 넷플릭스와의 협의를 거쳐 야하는 숙제도 있다.
그렇다면 넷플릭스는 극장 개봉 없이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까. 업계에서는 ‘문제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579억 원의 제작비는 한국영화를 놓고 보면 최대 규모지만 사실 넷플릭스가 진행하는 여러 프로젝트와 비교하면 그리 큰 액수는 아니다. 드라마 시리즈의 편당 제작비로 100억 원을 투자할 정도로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넷플릭스는 전세계 6900만 유료 이용자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철저한 유료 회원제다. 한 번 결제하면 원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TV뿐 아니라 스마트폰 등 이동기기를 통해서도 사이트를 활용할 수 있어 휴대성도 갖췄다. 가입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넷플릭스에서만 독점 공개되는 작품 역시 늘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독점 개봉한 영화 <와호장룡2>를 비롯해 <매트릭스> 시리즈로 유명한 앤디, 라나 워쇼스키 감독의 드라마 시리즈 <센스8>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넷플릭스는 한 번 회원으로 가입하면 꾸준히 매출이 발생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사이트를 향한 충성도 또한 높다. <옥자> 역시 넷플릭스를 기반으로 전 세계 관객에게 동시에 공개되는 셈이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
“괴수영화 아니다” <옥자>는 어떤 영화? <옥자>는 유전자가 변형된 거대 돼지와 한 소녀의 이야기다. 소녀의 가장 친한 친구인 돼지의 이름이 바로 ‘옥자’다. 유전자 변형을 시도한 다국적 기업이 옥자를 회수하려 하자, 소녀가 이를 막기 위해서 나선 모험을 그리고 있다. 서울에서 두 달 동안 촬영을 진행하고 이후 미국과 캐나다에서 나머지 분량을 진행할 계획이다. 봉준호 감독은 <옥자>를 두고 “괴수영화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영화가 기획되던 초반 거대한 동물이 등장한다는 내용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괴수영화’라는 소문이 퍼진 탓이다. 이를 의식한 듯 선을 그은 봉 감독은 “거친 세상의 한복판을 통과하는 옥자라는 동물과 소녀, 그 둘의 기이한 여정과 모험을 독창적으로 그려내고 싶다”고 밝혔다. [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