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구치소 생활 못 참아…‘상장’ 욕심이 제 발등 찍었다
법조 브로커를 통한 판·검사 로비 의혹이 제기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는 지인들에게 이런 고민을 자주 털어놨었다고 한다. 코스피 상장을 앞두고 ‘해외 원정도박’으로 처벌받을 때만 해도 ‘오너 리스크로 상장이 조금 늦춰지는 정도’로 보였지만, 길지 않은 구형조차 피하려 했던 그의 과한 욕심 탓에 추가 처벌을 받을 처지에 놓인 셈이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2심에서 4개월이나 감형되면서 다음 6월 초면 만기로 출소할 수 있었던 정운호 대표. 하지만 정 대표는 한 달을 참지 못하고 사고를 쳤다. “왜 석방을 약속하고 지키지 못했느냐”며 최 아무개 변호사와 다퉜는데 경찰에 고발하는 과정에서 5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선임료와 성공보수가 언론에 공개된 것.
정 대표와 틀어진 최 변호사 측은 정 대표의 각종 비리를 폭로하기 시작했다. 정운호 대표 측 브로커들이 현직 부장판사들을 상대로 각종 로비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몸통으로 지목한 이는 정운호 대표의 지인이자 법조 브로커인 이 아무개 씨. 이 씨는 대담하게 직접 재판부와 접촉한 사실이 드러나며 법조 비리 의혹에 불을 지폈다. 저녁 식사를 하며 “잘 봐달라”고 요청했고, 다음 날 부장판사는 바로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하면서 청탁은 불발로 끝났다.
정운호 대표가 이 씨를 통해 진행한 로비는 법조계뿐이 아니었다. 과거 경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대리점을 내주겠다”며 9억 원대 로비를 한 정황과 함께, 이 씨를 통해 지하철 상점에 입점하기 위해 서울메트로 고위관계자들에게 돈을 건넨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로 서울메트로 입점 관련 형사 판결문에 보면 브로커 이 씨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 씨가 당시 받은 돈은 10억 원대로 이 중 상당 부분이 서울메트로 고위관계자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정운호 대표에게 없어서는 안 될 로비스트였던 이 씨는 엄청나게 다양한 직함을 파고 다니는 브로커였다. P 사 대표, 인터넷 언론 I 사 보도본부장, L 호텔 부회장 등 그의 직함은 한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알려졌는데 정작 법인등기부에 이름을 올린 곳은 하나도 없었다.
정운호 대표는 양형을 낮추고 구치소에서 나오는 데만 이 씨를 이용하지 않았다. 회사를 성장시키는 중요 시점마다 항상 브로커와 함께였다. 서울메트로와 롯데면세점에 네이처리퍼블릭을 입점시킬 때 브로커 이 씨 외에도 브로커 한 아무개 씨를 활용했다. 특히 한 씨는 롯데그룹 오너 일가와도 친분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정 씨는 20억 원가량을 한 씨에게 주며 “롯데면세점 좋은 자리에 입점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사건이 ‘법조 게이트’로 확대되자 검찰은 정운호 대표를 재차 소환해 조사했는데, 정 대표는 브로커와 관련된 모든 사실관계를 털어놓았다고 한다. 현재 법조 비리의 몸통인 브로커 이 씨는 “정운호 대표가 그럴 줄 몰랐다”며 주위에 불안감을 토로하고 도망 다니고 있다. 그러다보니 검찰도 일단 법조 비리보다는 정운호발 입점 로비 수사에 착수했다. 네이처리퍼블릭과 한 씨 등을 체포한 것. 한 씨 등이 수억 원에 달하는 정운호 대표의 돈을 받은 사실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 시점에서 이번 사건이 어디까지 확대될지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운호 대표가 정·관계 어디까지 돈을 댔는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 정운호 대표가 수사에 협조적이고, 정 대표의 계좌 추적을 마친 검찰은 1억 원 이상의 뭉칫돈이 흘러간 것을 별도로 정리해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법조인과 기업인 외에 정치인이 갑자기 등장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게 검찰 내 관계자들의 반응이다.
정 대표를 바라보는 검찰, 법원 관계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사법부와 검찰의 신뢰도에 흠집이 나는 이슈들을 만들어냈기 때문. 검찰에서 정운호 사건과 관련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이라는 설명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이어, 올해는 정운호 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했다. 지금 시점에서 확실한 단 한 가지는, 정운호 대표가 징역 8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구치소 생활을 참지 못하고 어떻게든 자유의 몸이 되려다가 더 큰 처벌을 받게 됐다는 점이다.
남윤하 비즈한국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