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광현서 ‘금’광현으로…
▲ 지난달 8일 도쿄돔에서 열린 `코나미컵 한국의 SK 와이번스 대 일본의 주니치 드래곤스의 경기에서 선발로 나선 SK 김광현이 역투하고 있다. 연합뉴스 | ||
먼저 프로야구는 기준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선수는 아웃카운트 하나까지 또렷하게 기억해내며 특정 경기 순간을 언급했고 또 다른 이는 본인만의 독특한 상황에 대입해 2007년을 돌이켰다. 프로야구 간판 선수들의 ‘그때 그 시절’을 돌아본다.
지난 12월 7일 일본 프로야구단 야쿠르트 유니폼을 입은 삼성 출신 임창용은 “입단식에서 새 유니폼을 입었을 때야말로 올해 가장 기뻤던 순간”이라고 밝혔다. 등번호 12번이 새겨진 야쿠르트 유니폼 상의를 받아들면서 지난 5년간의 뼈아팠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을 건 당연지사. 임창용은 2002년 이후 해외 무대에 진출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번번이 실패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때론 에이전트에게 속아 휘둘리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원 소속팀 삼성 프런트와 갈등이 생겨 애를 먹었다.
우여곡절 끝에 보장받은 연봉이 30만 달러(약 2억 8300만 원)에 불과한 비교적 헐값에 야쿠르트 유니폼을 입게 됐지만 임창용에겐 마침내 해외 진출의 꿈을 이뤘다는 점에서 야구를 시작한 이래 가장 기쁜 날이 됐다고 한다. 임창용은 “입단식에서 새 유니폼을 입고 야쿠르트 관계자와 악수를 나누는데 일본 언론에서 사진을 막 찍길래 ‘아, 이제 진짜 됐구나’ 하는 기쁜 마음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임창용은 구체적인 시점을 정하진 않았지만 올 정규시즌 도중 ‘이젠 임창용도 끝났구나’라는 식으로 쳐다보던 주위 시선을 올해 최악의 기억으로 거론했다. 지난 2005년 가을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임창용은 지난해 대부분을 재활로 보냈고, 올해 본격적으로 마운드에 컴백했다. 구단에선 당연히 그를 선발투수로 분류했다. 하지만 기대에 못 미치자 시즌 중반 선발진에서 제외됐다.
올해 데뷔 첫 시즌을 치른 SK 투수 김광현은 지난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두산 에이스 리오스와 선발 맞대결을 펼쳐 승리했을 때를 최고의 장면으로 꼽았다. 7⅓이닝 1안타 9탈삼진 무실점. 8회 마운드를 조웅천에게 넘겨줄 때까지 김광현은 SK 에이스가 아니라 한국프로야구 에이스처럼 던졌다. 그날 승리로 시리즈 전적 2승2패를 맞춘 SK는 기세를 몰아 결국 4승2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김광현은 “그때 이후 나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후 주니치와의 코나미컵 첫 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됐을 때보다도 한국시리즈 4차전이 더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 임창용, 양준혁 | ||
올해 삼성 베테랑 타자 양준혁이 경기 중 슬며시 눈물을 훔친 적이 있었다. 지난 6월 9일 잠실 두산전. 3회에 우월 2루타 한 개를 기록한 양준혁은 9회에 좌중간 안타를 추가하면서 93년 데뷔 후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통산 2000안타의 주인공이 됐다. 1루 베이스를 밟고 선 양준혁의 눈가에 얼핏 이슬이 맺히는 게 텔레비전 중계화면을 통해 보였다. 이튿날 양준혁과 통화를 했다. 그는 “별다른 생각이 안 날 줄 알았는데 1루 베이스를 밟고 나니까 2000개의 안타를 치기까지 힘들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휙 스쳐지나가더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고 말했다. 양준혁에게 올 한 해 최고의 순간은 바로 그날, 2000안타의 영광과 함께 했던 날이다. 반면 양준혁에겐 지난 10월 초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예선 야구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했을 때가 최악의 순간이라고 한다. 69년생으로서, 한국 나이 서른아홉살의 노장이지만 올해 8개 구단 어떤 타자와 견줘도 손색없는 좋은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결국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다. 양준혁은 “내심 야구 인생의 마지막 대표팀 합류를 꿈꿨고 개인적으로 준비도 했는데 합류하지 못해 아쉬웠다”고 털어놓았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야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