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상고심 가면 재판부 구성도 못하는 초유의 사태 올 수도
조희팔 사기 사건의 피해자 김 씨 외 13명이 대한민국, 전직 대법관 1명, 현직 대법관 11명, 청주지방법원 판사 3명, 전 청주지방법원 부장판사 1명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장을 지난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접수한 것으로 <일요신문>이 단독으로 확인했다.
현직 대법관 11명이 피고로 지정된 이번 소송은 상고심 재판부가 구성될 수 없는 국내 최초의 소송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는 해석까지 내놓고 있다. 실제로 이번 소송의 피고로 지정된 현직 대법관 11명은 민사소송법 제41조에 의거해 직무집행에서 제척된다. 또 11명의 대법관을 제외하고 나면 해당 사건의 최종심을 판단할 재판부 구성조차 할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이번 손해배상청구소송이 1심, 2심을 거쳐 최종심인 대법원까지 가게 될 경우 대법원에선 아예 재판이 열릴 수 없게 된다. 최종심에서 판결을 내려야 할 대법원의 현직 대법관 11명이 피고로 지정돼 직무집행에서 제척되기 때문이다.
조희팔 사기 사건의 피해자들이 대한민국과 전.현직 대법관 12명, 지방법원 부장판사 및 판사 4명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장을 지난 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접수했다.
원고는 이번 소송을 제기한 이유에 대해 크게 두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우선 청주지방법원과 대법원의 항고 및 재항고 기각으로 재판청구권(민사집행법에 규정된 전부명령을 받을 권리)을 침해당했다는 주장이다. 원고 측의 주장에 따르면 조희팔의 기획실장 김 아무개 씨가 고철수입업자 현 아무개 씨에게서 돌려받을 투자금반환채권에 대해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을 신청했는데, 처음에는 청주지방법원이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을 인용하다가 나중에 ‘전부명령’ 부분을 기각했다고 한다. 대법원도 청주지방법원의 결정에 동의했다. 이에 원고는 청주지방법원과 대법원에 항고 및 재항고를 제기했으나, 이 또한 모두 기각됐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2014년 2월 청주지방법원 재판부는 조희팔의 기획실장인 김 씨로부터 고철수입을 한다는 명목으로 760억 원을 투자받은 현 씨에 대한 항고심 재판에서 ‘채권압류 및 전부명령’ 이용 결정 중 ‘전부명령’ 부분에 대해 기각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어 원고는, 현 씨에 대해 채권 압류만 인정하고 전부명령을 기각한 청주지방법원에 항고를 제기했으나 그해 11월 기각됐다. 또 원고는 항고 기각 결정에 대해 대법원에 재항고를 제기했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1월 19일 심리불속행 기각을 결정했다. 지난해 12월 29일 대법원은 또 다시 준재심을 기각했다.
종전의 대법원 판결을 살펴보면 ‘압류된 금전채권에 대한 전부명령이 절차상 적법하게 발부되어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전부명령이 제3채무자에게 송달될 때에 피압류채권이 존재하지 않으면 전부명령은 무효다. 무효인 채권압류와 유효인 채권압류는 경합하지 않는다’고 판시된 바 있다. 하지만 청주지방법원은 ‘무효인 채권압류와 유효인 채권압류는 경합한다’고 대법원의 판결과는 반대의 판결을 내렸다.
원고 김 씨는 “전부명령이 기각돼 추심명령을 받은 사람들과 비례 배당을 받아 그 손해가 크다”며 “재판을 잘못한 대법관과 판사들이 연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원고는 상고심 절차에 관한 특례법상 종전 대법원 판례와는 상반된 해석이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심리불속행 기각을 할 수 없으나, 대법원이 이를 지키지 않고 심리불속행 기각을 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원고가 ‘전부명령’ 기각을 결정한 청주지방법원과 대법원을 상대로 항고, 재항고, 준재심을 청구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모두 심리불속행 기각했다. 이는 종전 대법원 판결에서 ‘압류된 금전채권에 대한 전부명령이 절차상 적법하게 발부되어 확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전부명령이 제3채무자에게 송달될 때에 피압류채권이 존재하지 않으면 전부명령은 무효다. 무효인 채권압류와 유효인 채권압류는 경합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내용과는 상반돼 심리불속행 기각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게 원고 측의 주장이다.
현직 대법관 9명이 피고로 지정된 이번 소송으로 상고심 재판부가 구성될 수 없게 됐다.
특히 원고는 지난해 1월 19일 심리불속행 기각된 준재심에 대해 민사소송법 제422조 제1항 제1호의 ‘법률에 의해 판결법원을 구성하지 아니한 때’에 의거해 재심 사유가 충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은 ‘무효인 채권 압류와 유효인 채권 압류는 경합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결을 번복하지 않기 위함’, 또는 ‘조희팔과 관련된 의혹이나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에 대해 원고는 전원합의체에 의해 판단해야 할 사항을 소부에서 결정했다고 주장한다. 원고 김 씨는 “대법관 12명이 여러 번 토의를 거쳐 결정했다면 그 이유를 상세히 적었을 것”이라며 “조희팔 사기 사건은 피해자가 3만여 명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사기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심리불속행 기각을 결정하면서 대법원은 기각의 이유를 단 한 줄도 달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덧붙여 “대한민국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대법관들이 국민들의 혈세로 높은 급여를 받고 있음에도 피해자, 아니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며 “당시 이석기 전 국회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 판결을 검토하느라 조희팔 사기 사건에 대해 소홀했던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원고의 준재심에 대해 심리불속행 기각이 결정된 건 지난해 1월 19일, 이석기 전 의원의 항소심(2015년 1월 22일)을 4일 앞둔 날이었다. 이석기 전 의원은 항소심에서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무죄, 내란선동 혐의를 인정받아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3만여 명의 피해자들로부터 4조 8000억 원의 사기 행각을 벌인 조희팔은 지난 2008년 12월 중국으로 밀항 도주한 이후 생사가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익명의 요구한 한 원고는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법원이 소송에서 진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그동안 조희팔로부터 돈을 받은 검경 인사들이 상당 부분 밝혀졌지만, 아직도 엉터리 재판이 이뤄진 걸로 보아 조희팔의 그림자가 대법원을 삼키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한편 조희팔 일당이 피해자들로부터 끌어들인 돈은 4조 8000억 원에 달한다. 2008년 12월 중국으로 밀항 도주한 조희팔은 아직까지 생사가 불분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시혁 기자 evernur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