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구장서 야구 보는 거… 그게 내 꿈이야
▲ 내일모레 70’이라는 김응용 사장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은 뜨겁다 못해 데일 지경이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삼성 라이온즈의 김응용 사장(68). 감독 시절에도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취재원은 아니었지만 정작 인터뷰를 하겠다고 약속을 잡고 만나면 누구보다 솔직하고 어떤 인터뷰이보다 위트 있는 대답들로 기자를 정신 못 차리게 하는 그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점이라면 ‘김응용표 포스’. 비록 ‘현장’에 있을 때보단 그 세기가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해도 김응용만이 갖는 뚜렷한 컬러와 무게감은 여전했다. 겉으론 한없이 강하고 냉정한 면면이 드러나지만 ‘계급장 떼고’ 거리를 좁혀 만나면 적절한 비속어와 농담을 곁들이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색다른 모습으로 여운을 남긴다.
현대 야구단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사의 창단 발표가 있기 전 연일 계속되는 이사회로 정신없이 분주하다는 김응용 사장을 삼성라이온즈 서울 사무소에 만났다.
“뭐물어볼 게 있다고 날 만나자고 했노?”
홍보팀에 인터뷰 요청을 한 지 3주 만에 오케이 사인을 낸 김응용 사장은 기자를 보자마자 “딱히 할 말도 없는데…”하면서 “요즘 야구계 안팎으로 시끄러운 일들이 많아서 일체 인터뷰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괜히 인터뷰를 했다가 이상한 구설수에 휘말릴 것을 염려한 까닭이다. 그래서 처음엔 근황을 묻는 질문으로 가볍게 시작했다.
―이젠 넥타이가 좀 편해지셨어요?
▲(야구단 사장이 된 지) 4년찬데 뭘. 처음보단 많이 나아졌는데 그래도 넥타이는 잘 안하게 돼. 목이 갑갑해서 싫더라구.
―요즘도 소식(小食)하세요? 지난해보단 많이 건강해 보이세요.
▲좋아졌지. 소식하고 술 끊고 산에 다니니까 건강해질 수밖에. (진짜 금주했냐는 물음에) 안 마셔. 와인 정도는 식사할 때 한 잔씩 마셔도 양주, 소주는 입에 안 대.
―와인이요? 오늘 인터뷰를 와인 마시면서 했으면 분위기가 한결 편했을 것 같아요.
▲그래? 그럼 갑시다. 와인 마시러! (4시 30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보고선) 그런데 아직 저녁 시간 되려면 멀었네.
―마해영이 롯데와 5000만 원에 계약을 맺고 선수생활을 하고 있어요. 삼성 시절 제자로 만난 인연도 있는데 어떤 시각으로 보셨는지 궁금해요.
▲그 친구는 소위 ‘먹튀’ 생활을 몇 년 했잖아. 나름 명예회복하고 그만두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바닥의 쓴맛을 봤기 때문에 올해 노력하면 좋은 모습 보여줄 수 있을 거야.
―보통 노장 대열에 들어가면 은퇴 시기를 고민하게 되잖아요. 어떻게 하면 은퇴 시기를 잘 잡을 수 있을까요?
▲아무리 연봉이 높아도 그 연봉만큼 성적을 내지 못하면 미련없이 옷을 벗어야지. 2군으로 쫓겨가고 팀에서 방출되는 수모를 받기 전에 제 발로 나오는 배짱도 있어야 해.
―그래도 선수 생활에 대한 지속 여부를 성적이 안 난다고 해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요.
▲‘먹튀’란 얘기를 들으면서까지 뭐 하러 야구하노? 계약 기간에, 돈에 집착하다가 지금까지 쌓아놓은 자신의 명성을 좀 먹을 수도 있다고.
―이번에 두산과 재계약한 김동주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처음에 일본 간다는 얘길 듣고 기자한테 전화가 와서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물어봤지. 못 가게 됐다고 하더라구. 일본이나 미국은 우리같이 맹탕 주는 데가 아니고 1년 성적을 내야 한꺼번에 두세 배 주는 곳이라 한국에서처럼 60억 이상 받으려면 어렵다는 얘길 들었어. 그뿐이라구!
―그래도 (김동주에게) 관심은 있으셨잖아요.
▲있었지. 만약 일본이랑 계약이 안 되면 그런 좋은 선수를 야구 안 시킬 수는 없잖아. 그런데 워낙 값이 많이 나가니까 손을 못 댄 거지.
▲이번에 (임)창용이가 나갔잖아. 난 좋은 사례라고 봤어. 당장 돈을 많이 받으려고 하기보단 실력을 보인 다음에 제값을 받겠다는 자세잖아. 그런 정신 괜찮아요. 형편이 안 되면 밑바닥부터 해보는 거야.
김응용 사장을 만날 즈음엔 현대 사태가 해결되지 않은 탓에 조심스럽게 현대 문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이사회가 끝나도 기자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다고 말하는 김 사장은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할 줄 아는 배려와 책임의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사회가 7개 구단 사장들이 모이는 자리라 유일한 경기인 출신으로선 벽에 부딪힐 때도 많을 것 같아요.
▲이젠 그런 거 없어. 말 안 하고 가만있으면 되거든(웃음).
―KT가 막판에 현대 인수를 포기한 데 대해 많은 책임론들이 대두했어요.
▲답답했지. 매스컴이 자꾸 앞서가는 바람에 일이 꼬였어. 사실 내가 볼 때 야구단 운영을 하겠다고 발 벗고 나설 기업은 단 한 군데도 없어. 그런데 가입금이 적다, 어쩌다 하면서 줄창 KBO만 공격했잖아.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야.
―그로 인해 한때 신상우 총재 퇴진론이 나오기도 했어요.
▲현대 문제는 2001년부터 불거진 문제를 지금까지 해결 못했던 거야. 8년 전에 해결했어야 할 문제라구. 신 총재가 KBO에 오실 때 중요한 현안이 뭐냐고 물으시길래 내가 이렇게 말했어. 현대 문제 해결하고 돔 구장 건설되면 총재님 몫은 다 하시는 거라고. 안산, 대구, 성남에 돔구장이 세워지잖아. 현대 문제는 곧 좋은 소식이 들릴 것 같고. 이 문제들 해결하면 총재 일은 다 하는 거 아닌가?
―신 총재와는 부산상고 동문 관계라 색안경을 쓴 시각들이 있었어요. 많이 불편하셨을 것 같아요.
▲심히 곤란했지. 난 말이야, 정치의 ‘정’자도 모르는 사람이야. 야구만 해온 사람이라구. 내가 정치판에 잘 보일 필요가 뭐가 있겠어? 다 야구를 위해 그런 거지. 사장이 돼 보니까 현장에서 보는 시각과는 또 달라. 야구계 현안을 해결하는 데 어느 정도 정치력도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신 총재의 역할이 컸어. (주위의 선입견에 대해) 신경 안 써. 오히려 고맙지. 날 PR해줘서. 좋은 기사든, 나쁜 기사든 신문에 내줘. 그래야 김응용이 살아 있다고 생각할 거 아냐. 하하.
―그런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종종 뉴스의 중심으로 떠오르시니까요. 지난해 프로야구 최고의 해프닝 중 하나가 ‘김응용 사장이 롯데 감독으로 간다는 소문’이었어요.
▲내 참 어이가 없어서…. 그때 하도 시끄러워서 내가 롯데 사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어. “어떻게 된 거요?” 하니까 그 분 하시는 말씀이 “내가 김 사장 맘 한번 떠봤어. 하도 팔팔 뛰니까”라며 웃으시더라구.
―만약 지금에라도 현장 복귀를 제의 받는다면 의향은 있으세요?
▲에이 못해. 내가 감독 그만둘 때 힘들고 어려워서 못해먹겠다고 그만둔 건데 어떻게 다시 해?
―조금도 미련이나 아쉬움이 없으세요?
▲(한참 생각하다가) 있지. 누구든 안 그러겠어. 그러나 다 한때야. 난 (감독을) 30년이나 했잖아.
야구 감독 얘기가 나온 즈음에 감독 시절 라이벌로 불린 SK 김성근 감독에 대한 화제로 방향이 옮겨갔다. 김응용 사장은 지난해 SK가 우승한 직후 김성근 감독을 만나 ‘엄청난’ 농담을 건넸다고 한다.
▲김성근 감독에게 그랬어. 나 있을 때 우승 못하다 내가 없으니까 우승한다고. 그래서 내가 다시 야구 감독 해야겠다고 말했어. 김성근의 우승을 저지할 만한 감독은 나밖에 없다고 말이야. 하하.
▲ (왼쪽부터) 김성근, 마해영, 임창용. | ||
▲좋대. 하자고 그러더라구.
―한때 두 분이 라이벌이고 경쟁 관계였잖아요. 꼴찌팀을 한국시리즈 우승팀으로 이끈 김성근 감독을 보는 시각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난 우승을 열 번이나 한 사람이고 그 친군 이제 한 번인데 뭘(웃음). 내가 전에 자네랑 인터뷰할 때 김성근을 뭐라고 평가했어?
―‘야구의 신’이라구요. 그런데 그 ‘야구의 신’을 이긴 사람이 본인이라고 자랑하셨잖아요(2002년 당시 김응용 삼성 감독은 한국시리즈에서 LG와 6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을 거머쥔 후 상대팀 김성근 감독을 향해 ‘야구의 신’이라고 표현했었다).
▲큭큭. 그건 간접적으로 내 자신을 올리려고 말한 거였지(웃음). 지난해 SK가 우승하는 걸 지켜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두산에게 내리 두 번을 질 때는 끝났구나 싶었어. 그런데 김 감독이 심리전을 잘 쓰더구먼. 발 빠른 선수들을 많이 이용하구. 코치들도 제 몫을 잘 해낸 것 같았고 선수들 경쟁심 유발시키고 심리전 이용하는 수가 보였어. 근데 그 방법은 내가 즐겨 썼던 건데 아마도 나한테 배운 게 아닌가 싶어? 하하 농담이야. SK는 올해도 제일 무서운 팀이 될 거야.
―감독으로 한국시리즈에서 10승을 거두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당분간 깨지기 힘든 기록일 것도 같구.
▲왜 안 깨져? 기록은 깨지기 마련이야. 선동열이 마흔 몇 살에 벌써 두 번이나 우승했는데 뭘.
―올시즌 삼성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까요? 당연히 목표는 우승이겠죠?
▲무슨 말이 필요 있겠어(웃음). 당연히 우승이지. 우승 못 할 이유가 하나도 없잖아. 감독도 제일 낫고 선수들도 제일 잘하는 놈들만 모였는데. (사장은 어떠냐고 묻자) 사장? 어휴 사장은 제일 엉터리고. 하하.
―김응용 사장의 다음 행보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만약 구단에서 물러나신다면 KBO 총재에 도전해 볼 의향이 있으신가요?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 오해받기 딱 좋으니까. 난 자격이 없어. 총재 자리는 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맡아야 해. 내가 그런 과는 아니잖아. 난 그저 돔구장에서 계절 탓 하지 않고 선수들은 신나게, 관중들은 재미있게 어울려서 야구하는 걸 보고 싶어. 그런 무대를 만들었는데도 야구장에 사람 안 모이면 때려 치워야지.
김응용 사장은 2008년 소원으로 ‘야구장에 관중이 꽉꽉 들어차는 것’이라고 말해 구단 CEO만의 남다른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 올 시즌은 어느 해보다 박진감 넘치고 흥미있는 게임들로 프로야구의 중흥기가 도래할 것이란 기대도 부풀렸다.
구단 CEO 생활 4년차. 김 사장은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면서 “답답해. 이 속은 다 썩었어. 이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구”하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내일 모레 70’이라는 분의 야구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은 뜨겁다 못해 데일 지경이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