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향기 담은 낱말들 머리 속에 ‘꼭꼭’
차웅타로 가면서 주마등처럼 지난 시간들이 차창밖 풍경처럼 지나갑니다. ‘머나먼 차웅타’. 저를 감회에 젖게 하는 이름입니다. 처음 빈민아동들이 공동으로 사는 양곤의 공동체에 파견되었을 때였습니다. 모든 학생들의 가족상황과 학교성적 등을 조사하면서 몇 가지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미얀마에서 가보고 싶은 곳이 있습니까. 그런데 모두 차웅타로 썼습니다.
미얀마 국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차웅타 비치. 공동체의 초중고 학생들이 일제히 처음 본 차웅타 바다에 옷을 입은 채 뛰어들었다.
차웅타 비치라고 쓴 학생이 있어 바다란 걸 알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이긴 해도 긴 해안을 가진 이 나라에서 바다에 가보지 못했을까. 좀 살다보니 이웃의 서민들도 여름에 차웅타를 가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때부터 아이들과 이곳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지금은 여름의 끝. 6월부터는 우기에 접어듭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생각해온 ‘여름학교’ 여행을 지금 떠나는 것입니다. 이 여름을 지나면 이제 하이스쿨 졸업반 학생들은 우리 고3처럼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추억 만들기를 기대하면서 차웅타를 향해 길을 나섭니다.
미얀마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바닷가에 도착했습니다. 아이들은 물론 38세의 우리 스태프도 생애 처음 경험하는 순간입니다. 모두들 옷을 입고 그냥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철썩이는 해변을 따라 11학년 졸업반 여학생들이 깔깔대며 저만치 걸어갑니다. 공동체에 있을 때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던 학생들. 정이 많이 든 이 학생들이 어느새 졸업반이 되었습니다. 4명은 대학을 가기 위해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4명은 졸업하고 취업할 계획입니다. 하데 니앙이란 학생은 지금으로선 의대에 들어갈 실력입니다. 이제 꿈 많은 하이스쿨 마지막 여름, 이 학생들이 해변을 걷고 있습니다.
처음 여기 와서 한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가르치며 어느 정도 공부하면 그후엔 중국어를 하라고 권합니다. 인도차이나는 공항이나 상가가 거의 중국계로 북적이고 중국계가 상권을 잡고 있으니 앞으로는 중국어가 이 나라에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도통 배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한국이 좋으니 한국어를 열심히 합니다. 졸업반 학생들은 한국어 자음과 모음을 공부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젠 한국인에게 말을 붙입니다. 이제 올 한 해가 지나면 이 학생들은 우리들 곁을 떠나겠지요.
학생들은 올봄에 졸업한 형 팔피를 위해 강가에 대나무집 숙소를 지어주기도 했다.
차웅타로 오기 전에 학생들은 양곤에서 2시간 거리의 강가로 가서 대나무로 집을 지었습니다. 올봄에 졸업한 팔피라는 학생의 일터이자 숙소입니다. 에야와디강 지류에는 한국의 기술로 키우는 물고기 양식시험장이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일하도록 주선해주고 우리 학생들과 함께 대나무집을 지어주었습니다. 급여를 받으며 양식기술을 배우고 있습니다.
비록 대학 진학은 못하지만 팔피는 한국의 새로운 양식기술을 배워 이 시장에서 꿈을 키우고 싶어 합니다. 강가에는 안개가 피어나고, 팔피는 아침이면 삔우린산 커피를 마시고, 자전거를 몰고 야자수 숲길을 따라 강 선착장으로 달릴 것입니다.
어제는 험준한 길로 6시간 오느라 다들 피곤했습니다. 그래서 바닷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지만 오늘은 나무로 불을 지펴서 밥을 짓고 차웅타 재래시장에서 큰 생선을 사서 숯불에 굽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 후에는 한국어 공부가 이어집니다. 바다와 파도와 수평선과 일출과 생선이름들. 넓고 깊고 맑고 끝없는, 바다의 냄새가 담긴 단어들을 영어와 함께 배우고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학생들은 지금 그토록 그립던 차웅타 해변을 뛰어다닙니다. 마치 작고 정결한 조약돌처럼.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