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금 명맥 이을까’ 물음표가 느낌표로…
TV 사극에 있어서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받는 이병훈 PD가 또 한 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4월 30일 방송을 시작한 MBC 주말드라마 <옥중화>를 통해서다. 올해 72세인 고령의 연출자는 새로운 드라마 촬영과 방송을 앞두고 “밤을 지새울 정도로 부담이 크다”고 했다. 준비 기간만 2년이 걸렸다. 이미 시청자는 빠르게 그가 꼼꼼하게 짜 놓은 ‘마술’에 빠져들고 있다.
배우 고수와 진세연이 주연한 <옥중화>가 방송 4회 만에 시청률이 19.5%(닐슨코리아 집계)까지 치솟았다. 토요일과 일요일 밤 10시에 방송하는 지상파 경쟁 프로그램들을 가뿐히 제치고 단숨에 시청률 1위에 올랐다. 제작진과 방송사인 MBC가 올해 기대작으로 꼽아 전폭적인 지원을 했지만 초반 성적은 그 기대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옥중화>의 가파른 시청률 상승은 이병훈 PD가 앞서 연출한 다른 드라마들의 기록과 비교해서도 속도가 가장 빠르다. 첫 방송에서 이미 17.3%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 역시 최근 방송을 시작한 지상파 드라마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이는 이병훈 PD의 앞선 연출 드라마인 2012년 조승우 주연의 <마의>(8.7%), 2010년 <동이>(11.6%) 때보다도 월등히 높다.
MBC 주말드라마 ‘옥중화’ 남자주인공 고수, 여자주인공 아역 정다빈과 성인역 진세연(왼쪽부터).
# 이병훈 PD, ‘전설’로 통하는 ‘사극 미다스의 손’
아직 방송 초반이지만 <옥중화>가 나타내는 지금의 분위기를 고려하면, 또 한 번 다양한 세대의 시청자를 아우를 만한 인기 사극의 탄생이 예고되고 있다. 이병훈 PD의 도전에 반신반의했던 방송가의 시선도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
사실 이병훈 PD는 <옥중화>에 앞서 <대장금2> 제작을 놓고 여러 의견을 나눠왔다. 한때 드라마 제작이 가시화되기도 했고, 주연 배우인 이영애와 이병훈 PD의 만남이 포착되면서 가능성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대장금2>는 이에 참여하는 여러 주체 사이의 의견이 맞지 않아 결국 제작이 무산됐다. 이영애는 그 대신 조선시대 신사임당의 일대기를 그린 SBS 드라마 <사임당 허 스토리> 출연으로 방향을 틀어 현재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이병훈 PD와 이영애는 여전히 서로를 아끼는 사이이지만, 그와 별도로 이 PD는 <대장금2>를 향한 아쉬움을 몇 차례 드러내기도 했다.
<대장금2>에 대한 미련을 딛고 이병훈 PD가 <옥중화>에 다시 도전한다고 했을 때 의견이 엇갈린 것도 사실이다. 이와 함께 <대장금> 이후 이 PD가 연출한 사극들은 일부 시청자들로부터 ‘대장금의 복제’라는 지적도 받아왔다. <옥중화>는 그만큼 드라마를 연출하는 PD로서도, 이를 방송하는 MBC나 출연 배우들 모두 부담을 갖고 시작한 프로젝트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결과적으로 ‘기우’가 됐다. <옥중화>는 역사적 사실에 가상의 인물과 공간을 뒤섞은 ‘팩션 사극’ 장르의 매력까지 더하면서 시청자의 시선을 빠르게 선점하고 있다.
이병훈 감독과 대본을 보며 이야기 나누는 옥녀(아역 정다빈). 사진제공=iMBC 연예스포츠뉴스팀
# <옥중화> 인물과 공간 접목한 시도…빠른 전개로 시청자 흡수
<옥중화>의 극본은 최완규 작가가 맡아 쓰고 있다. 이병훈 PD와 최 작가는 1999년 전광렬 주연의 <허준>과 2011년 이재룡 주연의 <상도>를 함께했던 사이다. 탄탄한 필력을 자랑하는 최 작가는 14년 만에 이병훈 PD와 다시 만나 조선시대의 인권 제도를 TV에 펼쳐내고 있다.
오랜만에 재회인 만큼 PD와 작가는 새로운 도전에도 과감하게 나섰다. 그동안 고집해온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택하지 않고 가상의 캐릭터를 내세웠다. 이병훈 PD로서는 ‘모험’에 가까운 변화다. 실제로 이병훈 PD는 <대장금>의 서장금(이영애)이나 최근 <마의>의 백광현(조승우)에 이르기까지 작게나마 역사 기록에 남아있는 인물을 주연으로 택했다. 그가 주목하는 이런 인물들은 대부분 역사적으로는 덜 알려졌지만 당시 시대의 분위기를 드러내는 동시에 한 발 앞서 나가는 가치관을 가진 능동적인 인물이라는 공통점으로 묶인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옥중화>는 감옥에서 태어나고 자란 천재소녀 옥녀(진세연)가 주인공이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가상의 인물인 옥녀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과정이 드라마의 주요 내용이다. 상대역 고수의 설정도 비슷하다. 조선시대 한 상단을 움직이는 미스터리한 인물 윤태원역을 연기하고 있다.
이병훈 PD의 승부수는 더 있다. ‘사람’에 주목하는 기존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당대 인권제도까지 담는다. 현재의 변호사로 볼 수 있는 ‘외지부’가 주요 소재다. 동시에 죄인을 가두던 지금의 감옥인 ‘전옥서’ 역시 배경으로 그린다. ‘인물’과 ‘공간’을 동시에 담아내는 적극적인 시도로도 풀이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초반부터 몰아치는 듯한 속도감 역시 <옥중화>를 젊은 층 시청자의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병훈 감독은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공간, 주인공의 직업에 대해 늘 강박관념에 가까울 정도로 새로움을 추구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완규 작가와 2년 동안 드라마를 준비하고 고생하는 동안 감옥이라는 공간을 떠올렸다”며 “대신 굉장히 어두운 감독이라는 공간에서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여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런 이병훈은 이제 사극을 대표하는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실력 있는 배우들이 <옥중화>에 모인 이유도 이병훈 PD를 향한 신뢰에서 나온다. 주인공 고수는 “개인적으로 이병훈 PD의 팬”이라며 “어린 시절 <조선왕조 500년> <허준>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반겼다. 이어 “배우로서 꼭 한 번 작업하고 싶어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믿고 참여하겠다”며 “개인적으로 <옥중화>는 내게 큰 산이지만 그 큰 산을 잘 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