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선 ‘F’ 맞았다는데…한국지사 “같은 성분 아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그런데 가습기 살균제뿐만 아니라 다른 제품에서도 유해성 논란이 제기됐다. 탈취제와 방향제, 각종 세정제와 세제 등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생활 화학용품에도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쓰인 유해물질이나 호흡곤란 원인 물질이 포함됐다는 얘기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는 섬유 탈취제 ‘페브리즈’가 있다. 옥시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피해 사례(300여 명)를 낸 애경 ‘가습기 메이트’에 들어있는 유해성분과 같은 화학 계열의 성분이 ‘페브리즈’에도 들어 있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 것이다.
애경 제품에 들어있는 유해성분은 CMIT(클로로메틸이소치아졸리논)와 MIT(메칠소치라졸리논)다. 옥시 제품에 포함된 PHMG, PGH와 함께 그동안 정부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대표적인 폐 손상 원인으로 지목된 물질이다. PGH와 PHMG는 고분자물질, CMIT와 MIT는 혼합물질 형태다. 해당 유해성분들은 가습기살균제 외에도 포장재, 화장품 등에 항균·방부제 기능으로 사용된다.
CMIT/MIT는 ‘아이소싸이아졸론(Isothiazolinone)’이란 합성 화합물 계열에 속해있다. 1997년 5월, 미국 질병통제센터(CDC)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1987년 처음 도입된 아이소싸이아졸론을 원료로 한 살충제를 사용한 농부들에게서 피부염, 발진, 호흡 과민 등이 보고됐다. 미국 노동부가 유해물질의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역시 “아이소싸이아졸론은 피부 자극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이 계열에 속하는 물질에는 CMIT/MIT 외에도 BIT(벤즈아이소씨아졸리온) OIT(옥타이리소씨아콜론) 등이 있다. 박 박사가 페브리즈 전성분 분석을 통해 찾은 유해물질은 바로 BIT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원인 물질인 CMIT/MIT 방부제와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페브리즈 섬유 탈취제에 포함된 BIT는 같은 ‘아이소싸이아졸론’ 계열의 물질이다. 출처=Williams, TM, The mechanism of action of isothiazolone biocides, NACE International, 2006
BIT는 보존제 역할을 하는 물질로,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2005년 9월 BIT에 대해 “피부 자극과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밝혔다. 유럽과학자문위원회(SCCS)도 비슷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BIT를 화장품에 쓰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미국 환경연구단체인 EWG의 경우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으며, 생식계에 유독하다”는 이유로 페브리즈의 안전성에 대해 가장 낮은 등급인 ‘F‘ 등급을 매기기도 했다.
앞서의 박 박사는 BIT 등의 물질이 인체에 누적될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옥시 제품의 유해물질과 CMIT/MIT, BIT 등 계열의 물질 등이 고농도로 폐에 노출되면 첫 번째로 감기나 폐렴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후 간질성 폐렴으로 진전돼 폐가 딱딱해져 호흡곤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때 폐 손상은 회복되지 못하고 고착성 폐 기능 저하로 폐를 이식하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CMIT 방부제의 작용 기전. 단백질, 또는 효소와 결합해 기능을 손상시키고 결국 세포를 파괴한다. 그림에서는 단백질의 씨올기(thiol group; R-SH)와 결합됨을 설명하고 있다. 출처=Williams, TM, The mechanism of action of isothiazolone biocides, NACE International, 2006
폐 세포는 수축과 팽창을 하면서 공기를 혈관에 전달하는데, 폐 손상으로 인해 섬유화가 발생하면 폐가 딱딱해져 공기를 혈관에 전달하지 못하고 숨을 쉬지 못하게 된다. 실제로 최근 옥시를 대상으로 한 조사 과정에서 폐 손상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의 미세한 입자가 폐를 통해 혈관으로 들어가 퍼진 것으로 드러났다. 박 박사는 “항생제가 박테리아 등 정확한 ‘타깃’만 파괴한다면, BIT 등 유해물질은 미생물을 죽이는 항균제로, 각각 차이가 있다”며 “미생물을 죽일 수 있다면 인체의 세포도 파괴할 수 있다. 항균제가 인체에 축적되면 폐를 전방위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미국 P&G 홈페이지에서 페브리즈에 포함된 전성분을 확인할 수 있지만, 국내 P&G 홈페이지에는 해당 정보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P&G는 모든 제품에 대해 물질보건안전자료(MSDS)를 기재해 제품의 성분 비율과 목적, 성분별 유해성과 부작용까지 공개하고 있다. 페브리즈의 경우 화학물질명과 살포에 쓰이는 물질, 마셨을 때의 유독성과 대처방안 등까지 A4용지 4장에 이르는 분량으로 띄워 놓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다르다. 2012년부터 시민단체들이 한국P&G에 페브리즈의 전성분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지만, 한국P&G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 소비자들은 페브리즈에도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포함돼 떳떳하게 공개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P&G 관계자는 “한국에서 판매 중인 페브리즈는 BIT 성분
페브리즈 제품 뒷면에 부착 된 제품 정보
한국P&G가 해명에 나서며 페브리즈의 안전성을 확신하고 있지만, 생활 화학용품에 대한 불안감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생활 화학용품의 구체적인 성분 구성이나 유해성 유무를 표기할 의무가 없어, 전문가조차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처럼 특정 제품의 유해성 논란이 불거지면, 해당 제품의 성분분석과 유해성검사·독성검사를 처음부터 해야 한다.
실제로 기자가 직접 국내에 시판되는 국내외 생활용품 업체들의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구체적으로 성분을 공개한 곳은 없었다. 각 제품을 찾아 뒷면 성분 정보를 확인했지만 구체적으로 성분과 부작용, 독성 표시를 한 제품은 없었다. 페브리즈의 경우 ‘제4급 암모늄염계 5%미만’이라고 기재돼 있었지만 ‘미생물억제제’라는 성분도 함께 포기돼 있었다. 정확히 어떤 물질인지는 한국P&G가 공개하지 않으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박 박사는 “이번 옥시 사태를 비추어 볼 때, 문제가 된 유해물질들은 신체에 사용하는 제품이 아니라 유해성 연구나 안정성 검증이 대부분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옥시 사태를 비추어 볼 때, 항균, 살균물질이 포함된 모든 제품에 대한 안전성 검증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성분 공개 역시 의무화돼 있지 않더라도, 기업들은 소비자와의 신뢰 구축을 위해 전성분을 스스로 공개해야 한다. 전성분 공개는 소비자가 그 제품의 안전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이목이 집중된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함께 관련 유해성 의혹이 제기됐다는 이유만으로 페브리즈에 대해 전성분 공개를 강제할 근거는 현재까지는 없다”며 “한국에 유통되는 페브리즈 제품들에서는 아직까지 유해성이 입증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번 논란에 대해서는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