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부터 연예계까지 친분…‘불똥’ 어디로 튈지 모른다
‘정운호 게이트’의 핵심 관련자인 브로커 이 씨는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인사들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관리했다.
이 씨는 1심에서 징역 1년(상습도박)을 선고받은 정 대표 구명을 위해 지난해 12월 담당 판사와 접촉해 논란을 일으켰다. ‘판사 로비’의 시작 지점이다. 이 사실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자 이 씨는 종적을 감췄다. 이 씨는 지난 2007년에도 한 건설사 자금 횡령 사건으로 수사망에 오르자 도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30시간 만에 검거된 이 씨는 2심에서 징역 2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서초동 주변에서 이 씨는 제법 ‘잘나가는’ 법조 브로커로 통했다고 한다. 수사팀이 주목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이 씨가 정 대표 구명 로비 외에도 불법을 저질렀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이 씨는 2012년 네이처리퍼블릭의 서울메트로 상가 임대사업권을 받아주겠다며 정 대표로부터 로비자금으로 9억 원을 받아간 혐의도 받고 있다. 이 씨와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의 한 고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 씨는 브로커 중에서도 베테랑이라고 들었다. 정 대표가 돈을 주고 이 씨를 고용했겠지만, 이 씨 정도의 브로커가 정 대표를 이용하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정 대표가 이 씨에게 당했다는 얘기까지 있다. 정 대표보다 이 씨가 법조 비리의 몸통일 수 있다는 얘기다. 수배 중인 지금도 아마 지인들에게 연락해 구명을 시도하고 있지 않겠느냐. 자신의 수사 상황을 수시로 전달받고 있다는 첩보가 있다. 검찰로서는 뼈아프겠지만 이번 기회에 브로커와 결탁된 판·검사들을 뿌리 뽑아야 국민들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일요신문>이 이 씨 주변을 추적하게 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 씨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회장님”또는 “대표님”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이 씨는 통신장비업체 P 사의 대표이사직을 맡은 바 있다. P 사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이 씨는 2010년 1월 취임해 2014년 7월 물러났다. 이 씨와 알고 지내는 한 언론인은 “P 사 대표로 적혀 있는 명함을 아직 가지고 있다. 브로커인 줄 몰랐다”고 귀띔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사업가는 이 씨의 생활 ‘패턴’에 대해 들려주기도 했다. 그는 이 씨와 한때 가깝게 지냈지만 지금은 연락을 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그는 “이 씨는 점심과 저녁 거의 일정이 있다. 점심을 마친 뒤 골프를 치거나 강남 소재 D 사우나에서 마사지를 하곤 했다. D 사우나엔 이 씨와 같은 브로커들이 적지 않다. 이곳에서 정보를 주고받을 때도 있다”고 했다.
이 씨의 동선은 거의 대부분 강남 일대다. 이 씨가 목격된 곳 역시 강남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이 씨는 논현동과 청담동 주변 일식집과 중식집 등으로 손님을 불러 접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2차’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클럽과 카페 등을 즐겨 찾았다. 대부분 이 씨가 계산을 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거의 매일 식사와 술자리를 통해 인맥을 유지하고 관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씨가 가끔 찾았던 한 카페 종업원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랐지만 그냥 돈 많은 사업가인 줄 알았다. 일행들이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검찰이나 청와대 얘기도 자주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참 많구나’ 싶었다. 말도 재미있게 하고 술자리 매너도 좋아서 아가씨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다. 같이 왔던 사람 중에 유명인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연예기획사 쪽 사람들이랑 가끔 왔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브로커 이 씨는 잠실 한강변에 위치한 S 레스토랑을 즐겨 찾았다. 이 씨는 이곳으로 손님들을 불러 접대를 했는데 특히 법조계 인사들과 자주 왔다고 전해진다. 임준선 기자
잠실 한강변에 위치한 S 레스토랑도 이 씨가 즐겨 찾았던 음식점이다. 이 씨는 이곳으로 손님들을 불러 접대를 했다고 한다. 특히 법조계 인사들과 자주 왔었다는 전언이다. 서초동과 가까우면서도 주변의 눈길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씨와 S 레스토랑을 가봤다는 한 검찰 관계자는 “가격이 그렇게 비싸진 않았는데 경관이 정말 좋았다. 이 씨 자리가 따로 있는 것 같더라. 종업원이 한강이 보이는 구석자리로 자연스럽게 안내해 줬다”고 귀띔했다. 이 씨는 S 레스토랑에서 본인이 속한 모임의 만찬도 가끔 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이 씨는 어떤 사람들과 어울렸을까. 이 씨 지인들과 검찰 등의 말을 종합해보면 법조계 인사가 주를 이뤘지만 재계는 물론 정치권, 금융권, 연예계 인사들과도 가깝게 지냈다고 한다. 연예계에선 주로 기획사 관계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여성 가수와 한류로 큰 인기를 끌었던 남자 배우도 이 씨와 알고 지냈다. 유명 방송인 남편으로 이름을 알렸던 한 금융권 관계자도 이 씨와 자주 어울렸다. 그야말로 ‘마당발’ 인맥을 구축했던 셈이다. 이 씨가 비교적 늦게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브로커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 씨 인맥 중 하나는 본인이 졸업한 것으로 알려진 D 고등학교 라인이다. 법조 비리 수사망에 오른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도 여기에 속한다. 이 씨는 홍 변호사 외에도 D 고등학교를 졸업한 유력 인사들과 친분을 유지해왔다고 한다. 전직 청와대 관계자와 지방자치단체장들, 중앙 언론사 고위 간부 등도 이 씨 관리 대상이었다. 특히 전직 지방자치단체장은 이 씨와 함께 S 레스토랑에도 여러 번 왔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이 씨는 본인이 거주했던 강남구 소재의 주상복합 아파트 주민들과도 남다른 관계를 가졌다고 한다. 이곳은 법조계와 재계의 유력 인사들이 많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선 이 씨가 인맥 관리를 위해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앞서의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이 씨는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인사들은 철저하게 관리를 했다. 분야를 가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앞으로 이 씨 수사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귀띔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