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 장자승계 집착…분쟁 방지 비결?
구인회 LG그룹 창업주.
지난 7일 별세한 구태회 명예회장은 맏형 고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를 도와 재계 4위 LG그룹의 초석을 다졌다고 평가받는다. 2003년 LG그룹에서 분가한 LS그룹을 자산 20조 원이 넘는 재계 15위 그룹으로 성장시킨 주인공도 구 명예회장이다.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딴 이른바 ‘태평두’ 형제(구태회‧구평회‧구두회)의 후손들이 LS그룹을 이끌었다.
고 구태회 회장의 아들들로는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 구자엽 LS전선 회장, 구자철 예스코 회장이 있다. 고 구평회 E1 명예회장의 아들들은 구자열 LS그룹 회장, 구자용 E1 및 LS네트웍스 회장, 구자균 LS산전 회장이다. 고 구두회 예스코 명예회장의 아들 구자은 씨는 LS엠트론 부회장을 맡고 있다. 태평두 형제의 협업이 2세들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고 구인회 창업주의 첫째 동생 고 구철회 전 LIG그룹 회장의 후손들은 LIG그룹을 맡고 있다. 장남 구자원 LIG 명예회장을 중심으로 국내외에 17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차남 고 구자성 전 LG건설 사장의 아들 구본욱 LK투자파트너스 대표는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의 사위다.
LG그룹은 철저히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고 구인회 창업주에서 장남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으로, 다시 구 명예회장의 장남 구본무 LG그룹 회장으로 이어졌다. 1994년 불의의 사고로 구본무 회장의 장남 구원모 씨가 사망하며 장자승계에 빨간불이 켜졌지만 구본무 회장이 첫째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 구광모 LG 상무를 양자로 입적시키면서 장자 승계 원칙을 이어나가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장자 승계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승계 과정에서 분쟁을 방지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오너 일가 중 여성을 경영에 참여시키지 않는 것도 LG그룹의 특징이다. 그러나 식자재 유통 전문기업 아워홈에서 이 원칙에 금이 가기도 했다.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막내딸 구지은 아워홈 부사장이 경영에 참여했던 것. 구 부사장은 지난해 7월 구매식재사업본부장에서 보직해임됐으나 올 초 다시 구매식재사업본부장으로 복귀하면서 아워홈의 승계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지난 4월 다시 외식브랜드를 운영하는 아워홈 관계사 캘리스코 대표로 자리를 옮기면서 결국 장남에게 경영권이 승계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구 회장의 장남 본성 씨가 아워홈 지분 38.56%를 보유해 최대주주인 데다 구지은 부사장이 등기이사에 재선임되지 않은 대신 본성 씨가 등기이사직에 새로 임명된 사실이 이런 관측에 힘이 실리게 한다. 다른 재벌과 달리 집안의 큰 불화가 없었다는 점은 범LG가의 최대 강점으로 꼽힌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창업주의 경영권을 승계한 사람은 삼남 이건희 회장이다. 장남은 지난해 별세한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지만 그는 이미 1970년대에 후계구도에서 밀려났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그룹을 재계 1위에 올려놓았을 뿐 아니라 삼성을 세계적인 브랜드로 도약시켰다고 평가받는다. 2014년 이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후 현재는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실상 그룹을 총괄하고 있는 모양새다.
고 이맹희 회장의 장남이자 삼성그룹 장손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구속돼 재판 중인 데다 건강 악화로 부재 상태다. CJ그룹 경영을 함께 해오던 이 회장의 동생 이미경 CJ그룹 부회장 역시 최근 건강상 문제로 경영에서 물러난 상태다. 고 이맹희 회장은 2012년 아버지 고 이병철 창업주가 생전에 제3자 명의로 신탁한 재산이 있다며 동생인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7000억 원대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병철 창업주의 장녀 이인희 고문은 1993년 한솔그룹으로, 막내딸 이명희 회장은 1997년 신세계그룹으로 각각 분리해나갔다. 한솔그룹은 현재 이 고문의 아들 조동길 회장이 이끌고 있으며 이명희 회장은 여전히 신세계그룹 회장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명희 회장의 아들 정용진 부회장과 딸 정유경 백화점부문 총괄사장도 각각 경영 일선에서 활약 중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범삼성, 범현대, 범LG로 분류되는 기업들은 현재 우리나라 재계를 호령하고 있다. 대기업집단에 지정된 기업만 해도 삼성, 현대차, LG, 현대중공업, 신세계, CJ, LS, 현대백화점, 현대그룹, KCC, 한라, 현대산업개발, 한솔 등 여러 개다. 허 씨가 오너인 GS그룹을 빼도 이들 기업이 현재 우리나라 재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는 이름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다.
이밖에 우리나라 재계에서는 후대로 내려가면서 계열분리된 기업이 적지 않다. 한진그룹은 고 조중훈 창업주의 장남 조양호 회장의 한진그룹, 차남 조남호 회장의 한진중공업, 삼남 고 조수호 회장의 한진해운, 사남 조정호 회장의 메리츠금융지주로 각각 분리됐다. 효성그룹도 조석래 회장의 효성과 조양래 회장의 한국타이어로 분리됐으며 금호그룹 역시 박삼구 회장의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으로 분리됐다.
정재훈 기자 julia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