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정규직 꿈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지난해엔 유독 ‘호모인턴스’, ‘부장인턴’(인턴을 여러 번 겪으며 부장급 경험을 습득), ‘티슈인턴’(뽑아 쓰고 버려지는 인턴) 등 인턴 관련 신조어가 쏟아졌다. 그만큼 인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크다. 지금의 20대에게 인턴은 대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그들은 왜 끊임없이 인턴이 되고자 하는 것일까.
청년실업률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취업박람회에 취업준비생들이 몰리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
한 공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김도 씨(27)는 이미 3번의 인턴 경험이 있다. 그가 계속 인턴 생활을 하는 이유는 원하는 회사에 취직할 때까지 막연히 기다리기엔 불안하기 때문이다. 인턴이라도 하면 경력도 쌓고 용돈 정도는 벌 수 있다는 점도 한 이유다.
김 씨가 해온 인턴십은 공교롭게도 모두 다른 직무다. 그는 “폭넓은 경험을 해봤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한 직무에 계속 경험을 쌓았다면 특정 업무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취업에 대한 조급증과 불안함 때문에 이곳저곳 인턴생활을 해왔다는 것이다.
임 아무개 씨(여·26)에게 인턴은 취업준비생으로서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요즘 뭐 하니?’라는 지인들의 질문에 ‘인턴하고 있다’라고 답해도 훨씬 덜 민망하기 때문이다.
‘취준생’들은 한결같이 인턴십을 수행하고 있으면 취업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말한다. 취준생 신분에서 오는 불안감을 연이은 인턴활동이 다소 누그러뜨려줬다. 그러나 정직원이 되지 못한 채 계약이 끝나고 나면 ‘취준생’들은 다시 불안과 싸워야 한다. 임 씨는 “극심한 취업난에서 오는 불안감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호모인턴스’를 자청할 수밖에 없다”며 한숨을 내쉰다.
지난 11일 통계청이 밝힌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 4월 청년실업률(15~29세)은 10.9%로 역대 4월 청년실업률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이런 상황에서 취준생들은 원하는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마냥 준비하기보다 인턴십이라도 수행하는 것이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고 용돈이라도 번다는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호모인턴스를 양산하는 데는 구직자들의 실무 능력을 중시하는 취업시장의 분위기 변화도 한몫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지난 1월 인사담당자 17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인사담당자의 절반가량이 ‘지원자에게 인턴 경험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인사담당자들이 지원자의 서류 중 가장 비중 있게 보는 것으로 인턴경험(32.1%)을 꼽았다. 한 기업 채용 담당자는 “동종업계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은 업무 이해도가 높기 때문에 선호하는 편”이라며 “인턴십을 여러 차례 했다는 건 그만큼 여러 회사에서 선택됐다는 의미기에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고 귀띔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호모인턴스였다는 직장인 장환희 씨(30)는 “미디어 콘텐츠 업계는 촬영과 편집이 능숙하고 바로 실전 투입이 가능한 사람을 원하기 때문에 실무능력과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인턴십을 네 차례나 했다”며 “마지막 인턴십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됐다”고 말했다.
인턴직만 여러 차례 겪은 ‘호모인턴스’들의 꿈은 정규직 전환이다. 사진은 드라마 ‘미생’의 한 장면.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턴십의 본질이 취업 전 해당 직무를 경험해보는 준비 과정이라고 했을 때 이를 반복하는 지금의 현상은 그만큼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는 의미”라며 “처음부터 정규직 전환 계획이 없으면서 인턴 자리를 과다하게 만드는 일부 기업의 행태도 큰 문제”라고 우려를 표했다. 백 교수는 또 “최근 각 기업과 관공서 등에서 채용 연계형 인턴이 증가하는 현상은 긍정적이지만 중요한 것은 비율”이라며 “구직자들에게 희망을 심어준 뒤 극소수만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부 취준생들은 호모인턴스마저 아무나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미디어, 유통 등 10여 곳의 인턴십에 지원했지만 합격하지 못했다는 김명진 씨(여·25)는 “인턴십을 수련 과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면접에서 실무 경험을 물어봐 놀랐다”며 “1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보니 왜 인턴을 ‘금턴’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호모인턴스와 달리 한 번의 인턴 경험 후 더는 인턴십에 지원하지 않겠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원 아무개 씨(29)는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고 나자 정규 입사가 확실하지 않은 인턴을 하느니 차라리 공채에 집중하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기업들이 채용을 우선하기보다 탈락 후 ‘좋은 경험 했다 생각하라’는 식으로 나오니 불신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6개월 간 인턴 경험을 한 조주혁 씨(31)는 “정규직 업무와 달리 잡무가 많아 경험을 쌓는 측면에서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박혜리 인턴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