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수익보다 우회지원’ 쑤군…제 코가 석자인데…
박 사장은 적자 전환하며 어려움에 빠진 한화투자증권 사옥 매입을 결정하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이 대주주인 한화S&C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문제는 한화손보의 사정이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장 제 코가 석자인 박 사장이 그룹 계열사 지원에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박윤식 사장은 지난 3월 열린 한화손보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박 사장은 적자 상태였던 한화손보를 흑자로 돌려놓은 일등공신이다. 2013년 6월, 500억 원이 넘는 적자를 내고 있던 한화손보에 구원투수로 투입된 박 사장은 취임 1년여 만에 163억 원의 순이익을 내며 한화손보의 턴어라운드를 이끌었다. 지난해에는 1000억 원에 달하는 이익을 내며 한화손보를 알짜기업으로 변신시키는 저력을 과시했다.
그러나 박 사장이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된 지 2개월여 만에 금융권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화손보의 수익과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일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손보의 한화증권 여의도 사옥 매입은 어려움에 빠진 한화증권을 도와주려는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한화손보가 사들인 ‘한화증권 여의도 사옥’은 지하 1·7층, 지상 1~8층, 지상 11층 등 한화증권이 사용 중인 11개 층이고, 한화증권은 사옥을 매각한 뒤 다시 임차하는 세일즈앤리스백(Sales & Lease Back) 방식으로 계속 이 건물에 입주한다. 임차료 계약조건은 오는 2021년 5월까지 연간 58억 5800만 원이다.
한화손보는 이번 사옥 매입이 수익률 제고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임대 수익을 통해 자산운용수익률을 일부 보전하겠다는 것. 한화손보 관계자는 “계속되는 저금리로 자산운용 부문 수익률이 다소 주춤한 상황”이라며 “이번 사옥 매입을 통해 임대수익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부동산 가치 상승도 기대할 수 있다는 판단”이라고 전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한화손보의 사옥 매입은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금융권은 한화손보의 이런 행보가 ‘무리수’라며 우려를 내놓고 있다.
우선 한화손보의 사옥 매입이 자산운용 측면보다 적자에 빠진 한화증권을 우회지원하려는 ‘꼼수’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지난해 166억 원의 영업손실(연결기준)과 123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지난해 발행했던 주가연계증권(ELS)에서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의 경우 장기간 침체했던 주식시장이 활황세를 보이면서 증권사들도 오랜만에 ‘돈맛’을 봤던 해였다는 점에서 한화증권의 적자는 더욱 눈에 띄었다. 실제로 국내 증권사 가운데 지난해 적자를 낸 회사는 한화증권이 유일했다.
올해 들어서는 상황이 더 나쁘다. 한화증권은 이미 1분기에만 900억 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냈다. 지난해 1년간 기록했던 영업손실의 5배에 달하는 액수다. 한화증권의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화손보의 사옥 매입이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화손보가 한화증권 구하기에 나설 정도로 여유가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1분기 기준 한화손보의 단기 유동성 자금은 3000억 원 규모로 1327억 원의 빌딩 매입 자금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보험사의 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RBC)이 낮다는 점이 복병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화손보의 RBC비율은 165.0%로 금융당국 권고치인 150%를 간신히 넘기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선두인 삼성화재(350.4%)보다 낮은 것은 물론 31개 손해보험사 평균치인 244.4%에도 한참 못 미친다. 게다가 이번 빌딩 매입 자금이 빠져 나가면 RBC비율은 더 떨어질 전망이다. 여기에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4) 시행을 앞두고 금융당국이 자본 확충을 독려하고 있고, 다른 보험사들은 추가로 자본 늘리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오는 6월 초로 예정된 한화손보의 후순위채 발행에도 시장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한화손보는 오는 6월 7일 최대 2000억 원 규모의 7년 만기 후순위채 발행을 앞두고 있는데, 한화증권 사옥 매입 자금을 대려는 목적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한화손보는 이에 대해 “이번 후순위채 발행은 새로운 국제회계기준 도입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선제적으로 자금을 확충하기 위해 후순위채 발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사장을 둘러싼 또 다른 구설수는 ‘일감 몰아주기’다. 박 사장은 김승연 회장의 세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한화S&C를 지원하기 위해 총대를 멨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한화S&C는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삼남 김동선 한화건설 팀장이 전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한화그룹 계열사의 전산시스템 개발 및 통합 업무를 독점하고 계열사에서 배당금을 받는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한화손보와 한화S&C의 지난해 거래액은 196억 원이다. 한화손보의 지난해 순이익의 5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한화손보와 다른 계열사의 내부거래액은 ㈜한화 78억 원(15.95%), 한화에스테이트 64억 원(13.09%), 한화생명 55억 원(11.25%) 등으로 한화S&C에 한참 못 미친다. 더구나 한화손보는 한화생명, 한화증권 등 한화그룹 금융계열사 가운데 유일하게 한화S&C와의 거래액이 매년 늘고 있다.
한화S&C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한화손보와 거래 매출액은 2013년 174억 원에서 박 사장 취임 이후인 2014년 192억 원, 2015년 196억 원으로 매년 증가했다. 반면 한화증권과의 매출액은 382억 원에서 141억 원, 79억 원으로 3년 전에 비해 5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금융계열사 중 가장 규모가 큰 한화생명과의 매출액 역시 577억 원에서 518억 원, 454억 원으로 해마다 감소했다.
금융권 한 고위 관계자는 “한화손보가 박 사장 취임 이후 실적이 개선되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최근 일련의 행보는 그룹의 자금줄 역할을 맡은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을 소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