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쓰러질라’ 실리콘밸리 혁신가들 ‘디지털 디톡스’ 돌입
당신은 어떤 경우인가. 아마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경우라면 십중팔구 후자에 속할 것이다. 하루에도 여러 번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거나 사람을 만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늘 한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스마트폰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 그뿐인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카카오톡으로 채팅을 하거나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SNS의 댓글이나 ‘좋아요’를 확인하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와 관련, 최근 독일 시사주간 <포쿠스>는 스마트폰의 보급에 따른 디지털 중독이 심화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이에 따른 ‘디지털 번아웃’ 증상에 대해 경고했다.
‘디지털 번아웃’은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나타나는 탈진 상태다.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디지털 번아웃’이란 무엇일까. 독일 본의 통계학교수인 알렉산더 마르코베츠는 자신의 저서 <디지털 번아웃>에서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삶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되는 상태”라고 정의내렸다. 그러면서 마르코베츠 교수는 “그리고 결국에는 서서히 건강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워커홀릭들에게서 나타나는 정신적 탈진 상태인 ‘번아웃’ 증상과 유사한 ‘디지털 번아웃’은 스마트폰, 태블릿 PC,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나타나는 탈진 상태다. 비단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아리아나 허핑턴(65)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소셜미디어 기반의 온라인 뉴스업체인 <허핑턴포스트>의 창업자 겸 회장인 그녀는 IT 업계에서는 자수성가한 사업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창간 6년 만인 2011년에는 3억 1500만 달러(약 3700억 원)에 <허핑턴포스트>를 AOL에 매각하면서 일약 백만장자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업적인 성공은 개인적으로는 심각한 위기를 초래했다. 자신의 얼굴이 <포브스>의 표지를 장식하고,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면서 승승장구하던 그때 그만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그녀는 갑자기 과로로 쓰러지면서 눈 주위가 찢어지고 턱뼈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당시의 끔찍했던 순간을 회상하면서 허핑턴은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이렇게 진단내렸다. “나는 과접속 상태였다.” 다시 말해서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을 통해 늘 인터넷에 접속되어 있었다는 뜻이다. 그녀가 이렇게 인터넷에 접속해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이름이 거론된 기사를 읽거나 주가를 점검하거나 트위터 업로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과접속 상태였다”고 스스로 진단한 아리아나 허핑턴은 이후 혹독한 디지털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그는 특히 디지털 기기를 꺼두는 것에서 시작하는 ‘수면 혁명’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인터넷에 접속하는 시간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분명한 것은 많을수록 좋을 것은 없다는 것이다. 비록 허핑턴의 경우처럼 쓰러지는 극단적인 경우는 드물지만 사람들은 스마트폰의 과도한 사용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소매상인인 카리나 랑에는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은 스마트폰 배터리가 방전됐을 때다”라고 말하면서 “때로는 스마트폰이 아예 고장이 나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사진작가인 클라우디오 올리베리오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 그립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스마트폰에 중독되는 걸까. 이에 대해 <포쿠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빌어 두 가지 원초적인 욕구 때문이라고 말했다. 첫째, 소통에 대한 욕망 둘째,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싶은 갈망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바로 SNS라고 말했다.
대학생인 엘레나 쇼어는 “꽤 많은 사진을 SNS에 올리곤 했다. 나를 돋보이게 하고 싶어서 그랬다”라고 인정하면서 “내 사진에 댓글이 달릴 때면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감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뮤직 매니저인 자하 바이어라인은 심각한 인스타그램 중독자였다. 그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인스타그램에 자신이 찍은 근사한 사진을 올리는 데 허비했다. 그는 “얼마 안 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진을 찍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좋아요’를 받았는지가 중요해졌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좋아요’에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 하버드대학의 연구진들은 “댓글이나 ‘좋아요’를 받을 때의 우리의 뇌는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경기에서 이기거나 섹스를 할 때처럼 자극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욕망에는 어두운 면이 존재하게 마련. 랑에는 “스마트폰에 중독된 후로 친구들과 거의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대신 지속적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새로운 소식을 접했다”라고 털어놓았다. 쇼어는 5분마다 스마트폰을 쳐다봤다고 고백하면서 “스마트폰 화면에 새로운 알림이 번쩍이면 곧바로 심장이 두근거렸다”라고 말했다. 급기야 학교 수업에도 영향을 받았던 그녀는 “수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늘 정신은 다른 곳에 팔려 있었다”라고 고백했다.
이처럼 스마트폰 중독의 명확한 위험성 가운데 하나는 바로 집중력 저하에 있다. 브라운슈바이거의 신경생물학자인 마르틴 코르테는 “곧 새로운 소식이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은 주의를 산만하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인간이 기본적으로 멀티태스킹에 능숙하지 않다는 점은 때로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바이에른에서 일어났던 열차 충돌 사고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11명이 사망한 이 대형 사고는 기관사가 열차 운행 중에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비극적인 사고까지는 아니더라도 과도하고 다양한 정보를 동시에 습득하는 행동에는 많은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코르테는 “혈중 스트레스호르몬 농도가 눈에 띄게 높아진다”고 경고했다. 이럴 경우 장기적으로는 심혈관계와 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심지어 ‘번아웃 증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스마트폰 중독의 또 다른 위험은 점차적으로 스스로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본인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과거 매일 5~7시간씩 인스타그램을 사용했던 바이어라인은 “조금씩 사용 시간이 늘어갔다. 급기야는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이미 첫 번째 사진을 업로드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런 스마트폰 중독과 스트레스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고 <포쿠스>는 지적했다. 다시 말해서 스마트폰을 건강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근래 들어 ‘디지털 디톡스’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는 ‘신약’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터넷의 산실인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들부터 이 ‘신약’을 사용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는 점이다.
가령 2년 전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캠프 그라운디드’는 ‘디지털 디톡스’를 체험하기 위해 열리는 캠프다. 캠프 참가자들은 디지털 기기를 일절 소지하지 않은 채 캠프에 참가하며, 대신 자연 속에서 뗏목을 만들거나 낚시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는 잠시나마 디지털 기기에서 해방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다.
허핑턴 역시 과로로 쓰러진 후부터 혹독한 ‘디지털 다이어트’를 실시하고 있다. 이제 그녀는 언제 온라인 상태일지 아니면 언제 오프라인 상태일지를 꼼꼼하게 주의를 기울여 선택한다. 그런가 하면 그녀의 침실은 정보의 홍수를 피해 숨는 은밀한 공간이 됐다. 침실 안에는 그 어떤 스마트폰도, 태블릿 PC도, 컴퓨터도 없다.
이렇게 ‘디지털 금욕 생활’을 시작하자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활력이 넘치는 생활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로부터 해방된 시간을 글을 쓰거나 충분한 잠을 자는 데 사용했던 그녀는 지난 4월 초 <수면 혁명>이라는 신간을 출간해 화제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이 책에서 허핑턴은 잠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고 주장하면서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했다. 그리고 물론 이 ‘수면 혁명’은 디지털 기기를 꺼두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그녀는 말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디지털 디톡스 9가지 방법 “서랍 속 손목시계, 다시 차고 다녀봐” 다음은 <포쿠스>가 전문가들과 함께 소개하는 스마트폰을 건강하게 사용하는 9가지 방법이다. 스마트폰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다음을 따르라. 1. 불필요한 어플은 삭제한다 먼저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라. ‘진짜 필요한 어플은 무엇인가?’ 태블릿 PC나 스마트폰에 어플을 적게 설치해 놓을수록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볼 이유도 적어진다. SNS 계정 역시 마찬가지다. SNS 계정이 적을수록 새 알림도 적어진다. 2. 사람에게 집중한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눌 때는 오로지 그 사람에게만 집중한다. 아주 급한 일을 제외하고는 스마트폰을 가방이나 주머니에서 꺼내지 않는다. 대화에 집중하고, 사람에게 집중하라. 3. 책을 읽는다 스마트폰 화면을 쳐다보는 행동은 대부분의 경우 거의 자동적으로 이뤄진다. 특히 지하철에서 이런 모습은 흔한 풍경이 됐다. 디저털 디톡스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은 넣어두고 대신 책이나 신문을 읽도록 한다. 무언가를 집중해서 읽다 보면 자연히 스마트폰으로 시선이 가지 않는다. 4. 구식으로 산다 시간을 확인한다는 이유로 스마트폰 화면의 시계를 보면 그 다음에는 읽지 않은 이메일을 확인하게 되고, 또 그 다음에는 카톡 등 메신저를 확인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다시 손목시계를 착용한다. 온라인으로 예약한 항공권이나 공연 티켓은 반드시 인쇄를 한다. 이밖에 디카를 갖고 다니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스마트폰을 굳이 가방에서 꺼낼 필요가 없어진다. 5. 알람시계를 사용한다 스마트폰의 알람보다는 알람 시계를 이용해서 기상한다. 밤에 잘 때는 스마트폰을 꺼두는 것이 좋다. 가장 좋은 방법은 스마트폰을 아예 다른 방에 둔 채 잠드는 것이다. 6. 휴식을 취한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플이나 SNS를 사용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면 반드시 휴식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운동을 하거나 친구를 만난 후 집에 돌아와서는 책을 읽거나 TV를 본다. 7. 지루함에 익숙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지루해 하는 것은 오늘날 부정적이거나 또는 죄를 짓는 것처럼 여겨진다.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는 늘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려고 한다. 하지만 건강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는 결코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없다. 8. 친구에게 조언을 구한다 친구들 가운데는 분명히 인터넷을 멀리 하고자 하는 친구가 몇몇은 있을 것이다. 이런 친구들과 함께 경험과 방법을 공유한다. 아마 함께 디지털 해방의 목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9. 오래된 즐거움을 재발견한다 매일 인터넷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을 종이에 적어보라. 그런 다음 예전에는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한 번 생각해본다. 아마도 근래 들어 등한시했던 취미 활동을 했을 것이다. 오래된 열정을 새롭게 재발견하거나 새로운 것에 열광하면 인터넷 중독에서 쉽게 해방될 수 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