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이 마지막’ 한 번 더 다짐합니다
민훈기(민): 은퇴식까지 치른 다음에 다시 선수로 복귀한 이력이 특이하다.
김정민(김): 1년간 코치 연수 프로그램과 스카우트팀이랑 전력분석팀 세 파트 일을 했다. 현장에서는 떠나있었지만 관중석 위에선 계속 야구를 지켜봤다.
민: 은퇴는 본인이 결정했나.
김: 구단에서 2년간 코치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유익한 내용물이었고 여러 가지 면에서 경험도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미련을 거두고 결정을 내렸다. 어느 선수나 후회 없이 유니폼을 벗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미련, 아쉬움 등이 남기 마련이다.
민: 다시 복귀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김: 작년 시즌 중반에 백업 포수인 최승환 선수가 다쳐서 수술을 받았다. 조인성 포수가 계속 혼자 뛴 데다 작년 시즌을 끝으로 FA가 돼서 거취가 확실치 않아 김(재박)감독님께서 다시 뛸 수 있겠냐는 의사를 물어 오셔서 돌아왔다.
민: 올해 타율이 은퇴 전보다 더 좋다(통산 타율 2할5푼9리인데 올 해는 3할1푼2리).
김: 원래 나는 타격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서고 팀 타율을 깎아먹지 않는다는 각오로 한다. 그리고 기회가 오면 득점을 올릴 수 있게 집중해서 하고 있다.
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김: 우선 타격 코치님의 조언이 큰 힘이다. 그 정보를 밑바탕으로 나름대로 작전을 세우고 들어간다. 초년병 시절에는 무조건 안타를 치겠다는 생각만으로 들어섰다면, 이제는 작전을 세워서 이 상황이면 투수가 어떤 식으로 나를 공략할 것이라는 밑그림을 가지고 타석에 들어가니까 확률적으로 높아지는 것 같다.
민: 1년간 밖에서 야구를 본 것이 많은 도움이 되나보다.
김: 유니폼 벗기 전에는 시야가 좁았다. 상대팀 타자, 우리 팀 투수 유형 정도를 감안해서 볼 배합을 했는데 스탠드 위에 올라가서 보니까 양쪽 감독님의 스타일이나 투수 교체 타이밍, 작전 유형 같은 것들이 보이더라. 그 1년이 굉장히 큰 도움이 됐고, 그것 때문에 예상보다 기록도 좋게 나오고 그러는 것 같다.
민: 만 38세에 포수라는 자리가 힘겹지 않나.
김: 더워지면서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경기는 솔직히 하나도 힘들지 않다. 팀이 연패로 간다든가 대량 실점으로 진다든가 하면 정신적으로 힘들지만 체력적으로는 전혀 아니다. 다시 못 입을 줄 알았던 유니폼을 입게 됐으니 운동장 나가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민: 보약 같은 것도 잘 챙겨 먹는 편인가.
김: 보약도 잘 챙겨먹고 비타민, 아미노, 홍삼, 오가피, 좋은 것은 다 먹는다(웃음). 집에서도 예전보다 더 잘 챙겨준다. 은퇴식 할 때 집사람이 많이 울었다, 잘 해주지 못했다고. 그래서인지 요즘은 더욱 잘 챙겨주고 큰 힘이 된다.
▲ 투수가 사인을 정확히 볼 수 있게 항상 손톱에 흰색 매니큐어를 칠하고 다니다 보니 종종 오해어린 시선을 받기도 한다는 김정민.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김: 동료들이 놀린다, 두 배로 뛰었다고(웃음).
민: 사실 늘 2인자였는데 올 해는 입장이 좀 바뀐 것 같다.
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김동수 선배가 있었고, 또 뛰어난 후배 조인성이 들어왔다. 그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다. 누구나 프로에 들어오면서 꿈꾸는 것은 주전이 되고 스타플레이어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주전은 아니지만 주전 같은 몸 관리를 계속 해왔고, 그것이 아직까지 선수 생활을 하는데, 그리고 나아가서는 나중에 지도자가 될 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 다른 팀에 가서 주전으로 뛰고 싶은 생각도 많이 했을 것 같다.
김: 엄청나게 많이 했다. 다른 팀에 가면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구단에 지겨울 정도로 계속 트레이드 요청을 했지만 이뤄지지는 않았다.
민: LG가 계속 하위권에 머물고 있는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93년부터 함께했는데.
김: 우리의 치부가 될 수도 있으니 참 조심스런 이야기다. (잠시 고민하더니) 세대교체라는 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이 컸다. 기둥 선수들이 있고 신인급 선수들이 그 밑에서 성장하는 과정이 이상적인데, LG의 주전급 선수들이 트레이드나 은퇴 등의 방법으로 쑥 빠져나갔다. 기대했던 신인급 선수들의 성장이 더딘 부분도 한몫한다. 현재 전력적으로 보면 구성원 자체가 다른 팀과 비교하면 상위권으로 가기가 쉽지 않다.
민: 밖에서는 결집력도 약하고 스타 의식만 높다는 말도 한다.
김: 성적이 안 나니까 ‘모래알 팀이다, 서울내기들이라 그렇다’ 뭐 그런 말도 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함께 운동을 해보면 알지만 정말 그렇지 않다. 훈련도 너무 열심히 하고 술도 거의 안 마신다. 어린 선수들이 많아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떨어지고, 경험이 부족하다. 작년 가을부터 많은 훈련을 하고도 꼴찌를 한다는 것이 납득이 안 간다. 흘린 땀이 아깝기도 하고. 결국은 선수하기 나름인 것 같다.
민: 앞으로 몇 년은 더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김: 주위에선 그런 이야기들도 하는데 나는 그런 생각해본 적이 없다. 작년에 유니폼 벗기 전에도 늘 1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주전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고 팀이 하위권일 때는 세대교체의 명분 하에 뒷전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후회 없이 올 시즌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뛰고 있다.
조용했지만 할 말은 했다. LG에 대한 충심과 애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그는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는 LG의 보이지 않는 영웅이었다. 승자만이 대우받는 우리 사회에서 그런 ‘작은 영웅들’이 제 몫을 해주고 인정을 받는 풍토가 그립다.
메이저리그 야구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