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경영권 다툼 중반전 관전 포인트 셋
# 일본 롯데 임직원, 1조 6000억 원 돈 벼락
호텔롯데는 지난 19일 기업공개를 위한 신주발행 및 구주매출 계획을 확정했다. 일반공모로 3420만 주(기존 발행주식 수의 33.41%)를 발행하고, 일본 주주사인 L2, L4, L5, L6 투자회사가 1365만 5000주를 구주매출(유상증자 수 발행주식 수의 36.32%)한다. 이렇게 되면 일본롯데 등 계열사들의 지분율은 94%에서 60.9%(신동주 전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광윤사 보유분 4.1% 제외)로 떨어진다. 호텔롯데 공모가는 최고 12만 원이다. 금액으로 따지면 신주발행 규모는 약 4조 1040억 원, 구주매출 규모는 1조 6386억 원이다.
호텔롯데의 일본 주주사들을 지배하는 회사는 일본 롯데홀딩스다. 주주 구성은 △광윤사(28.1%) △종업원지주회(27.8%) △관계사(20.1%) △투자회사 LSI(10.7%) △임원지주회(6.0%) △신동주 전 부회장(1.6%)·신동빈 회장(1.4%)·신 총괄회장(0.4%)을 포함한 가족(7.1%) △롯데재단(0.2%) 등이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이 중반전으로 돌입하면서 신동빈 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강화될 전망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L투자회사들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페이퍼컴퍼니다. 구주매출로 생긴 현금은 결국 일본롯데로 귀속된다. 롯데홀딩스 임원 및 종업원지주 회원들은 1인당 25억 원을 주겠다는 신동주 전 부회장의 제안도 거절했다. 신 회장으로서는 이들에게 충분한 포상을 할 수밖에 없다. 일본 사정에 정통한 한 재계 관계자는 “롯데홀딩스 임직원들은 경영권을 신 회장에 위임하는 대가로 상장 과정에서 엄청난 현금을 손에 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이번 상장은 롯데의 새로운 지배구조가 갖춰지는 시발점이 될 전망이다. 오랜 기간 신격호 회장은 ‘광윤사→일본 롯데홀딩스(→L투자회사)→호텔롯데’의 지배구조로 그룹을 경영해왔다. 일단 지난해 7월 신 회장이 광윤사에서 축출되면서 이 고리가 끊어졌다. 이후 롯데홀딩스를 지배하는 종업원지주와 그 지지를 받는 신동빈 회장이 호텔롯데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일본 계열사 지분율이 40% 미만으로 떨어지면서 이제 신 회장이 직접 호텔롯데를 지배할 여지가 생겼다.
# 새로운 제국의 서막
롯데그룹은 호텔롯데 상장의 명분을 △한국기업화 △순환출자 등 지배구조 개선 △경영투명성 제고 등으로 꼽았다. 하지만 롯데홀딩스 최대주주가 일본인 임직원인 한 당분간 호텔롯데의 지배자는 ‘일본인’이 된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공개 과정에서 롯데홀딩스, 즉 일본회사의 보유지분을 대거 매출해 지분율을 낮췄다. 현재 실제 경영을 책임진 신동빈 회장 입장에서도 일본인 주주들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진다는 점에서 유리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호텔롯데는 신주발행 대금 가운데 약 3조 원의 사용처를 투자와 차입금 상환 등으로 이미 정해둔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공모가 하단을 기준으로 한 금액이다. 공모가가 상단, 즉 주당 12만 원에 달할 경우 1조 4000억 원의 돈이 더 들어온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호텔롯데 상장에서 확보한 실탄 가운데 상당 부분은 순환출자를 해소하면서 동시에 신 회장에 유리한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데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신 회장은 롯데제과(8.78%)와 롯데칠성(5.71%), 롯데쇼핑(13.46%) 등 핵심 3사의 단일 최대주주다. 하지만 정작 그룹 지주사 격인 호텔롯데 지분은 없다. 증권가에서는 호텔롯데가 주요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면 신 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호텔롯데 지분으로 바꾸는 작업을 통해 그룹을 장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각 계열사 지분을 갖는 것보다 각 계열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호텔롯데 한 곳만 확실히 손에 쥐면 되기 때문이다. 신 회장 입장에서는 돈 안 들이고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 신격호 정신감정, 최대 분수령
호텔롯데 상장으로 일본인 주주들은 돈을 챙기고, 신동빈 회장은 새로운 지배구조를 얻을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롯데홀딩스의 단일 최대주주인 광윤사와 롯데 주요 계열사의 대주주로 남아 있어서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정신감정을 거부하면서 신동주 전 부회장의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건강한 시절의 신격호 총괄회장. 일요신문DB
재계 관계자는 “일단 신 총괄회장의 정신감정 결과 이상이 인정된다면 그룹 창업자로서의 영향력을 제거할 수 있고, 그동안 신동주 전 부회장 측이 주장해온 ‘후계자 지명’의 명분도 깨뜨릴 수 있다. 호텔롯데 상장이 어차피 지난해부터 예정됐던 재료라면, 신 총괄회장의 정신감정 결과는 중반전 판세를 결정짓는 한방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신건강 이상을 점검받기 위해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던 신 총괄회장은 3일 후인 19일 돌연 퇴원했다. 신 총괄회장은 성년후견인 지정 여부를 따지기 위해 당초 약 1~2주가량 검진을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정보다 빨리 퇴원함에 따라 신 총괄회장의 정신건강 여부가 또 다시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