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소년’ 4천만 가슴에 금물살 새겨라
▲ 박태환(왼쪽), 왕기춘. 연합뉴스 | ||
이(一) - 110m 허들, 13억과 달리는 류샹
육상 남자 110m허들의 ‘황색탄환’ 류샹(25·중국)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중국 인민의 영웅’이다. 중국인들의 류샹에 대한 사랑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인 것은 류샹이 세계 육상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류샹은 육상 단거리에서 동양인은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없다는 속설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4년 전 아테네올림픽에선 12초91의 세계타이기록으로 금메달을 땄다. 2006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슈퍼 그랑프리대회에서는 12초88의 세계신기록을 작성했고 이어 2007오사카세계육상선수권을 제패했다. ‘올림픽금메달-세계기록-세계선수권 제패’라는 트리플크라운을 달성, ‘걸어 다니는 만리장성’ 야오밍을 제치고 중국 스포츠의 간판스타로 우뚝 섰다.
문제는 금메달 획득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쿠바의 다이론 로블레스(21)가 지난 6월 IAAF 그랑프리 골든 스파이크 대회에서 12초87로 류샹이 보유하던 세계신기록을 0.01초 앞당겼기 때문이다. 류샹이 허벅지 근육부상에 시달려온 것에 반해 신성 로블레스는 절정의 컨디션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류샹이 우승하면 8월 21일 밤은 중국인들에게 최고의 스포츠 국경일이 되겠지만 거꾸로 로블레스가 먼저 피니시라인을 통과하면 이날은 13억 중국인이 모두 눈물을 흘리는 ‘애도일’이 될지도 모른다.
얼(二) - 수영, 펠프스 8관왕 도전
현대 골프의 개념을 바꿨다는 타이거 우즈에 견주어 펠프스는 현대 수영의 개념을 바꿨다는 극찬을 받는 선수다. ‘세계 1인자’를 넘어 ‘역대 최고의 수영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선수권 금메달 17개(역대 최고), 아테네올림픽 6관왕(동메달은 2개), 6개 종목 세계기록 보유 등 현재 진행형인 펠프스의 업적은 경이적이다.
펠프스는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 8관왕에 도전한다. 접영 100m와 200m, 개인혼영 200m와 400m, 자유형 200m, 그리고 3개의 계주에 차례로 나선다. 가능성도 비교적 높다. 펠프스는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7개의 금메달(그중 5개는 세계신기록)을 따냈다. 펠프스가 8관왕에 오르면 중국의 류샹이 2연패에 성공한다고 해도 이를 넘어서는 대업이 될 것이다. 펠프스는 8월 10일(개인혼영 400m)부터 17일(400m혼계영)까지 14일 제외하곤 날마다 금빛 물살에 도전한다(13일은 두 종목).
싼(三) - 남자 농구, 미 ‘리딤팀’의 설욕
마이클 조던, 찰스 바클리 등 NBA 선수들이 처음으로 올림픽무대에 등장한 1992년부터 미국의 드림팀은 올림픽 최대 흥행카드 중 하나였다. NBA 올스타전을 제외하면 슈퍼스타들이 한 팀을 이룬 것 자체가 올림픽이 아니면 보기 힘든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드림팀은 NBA 최고스타들이 하나 둘씩 빠지면서 그 신화에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에 2008년 베이징에서는 원조 드림팀에 가까운 슈퍼스타들이 다시 드림팀을 구성했다. 아예 명칭 자체를 예전의 영광을 되찾자는 뜻에서 리딤팀(Redeem Team)으로 정했다. 더 이상 농구 종주국으로 드림팀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고, 또 중국과의 치열한 종합 1위 다툼에서 농구 금메달이 꼭 필요했던 것이다.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런 제임스, 드웨인 웨이드, 제이슨 키드 등이 자존심 회복의 전사로 합류했다.
미국의 리딤팀은 8월 10일 중국(오후 11시15분)과의 시합을 시작으로 앙골라(12일 오후 9시), 그리스(14일 오후 9시), 스페인(16일 오후 11시15분), 독일(18일 오후 9시)과 각각 조별 예선을 치른다. 이어 20일 8강, 22일 준결승, 그리고 올림픽 폐막일인 24일 오후 3시 30분에 결승전을 치른다.
쓰(四) - 남자 축구, 칼 가는 ‘삼바 축구’
축구하면 떠오르는 나라인 브라질은 유독 올림픽 우승이 없다. 월드컵 5회, 20세 이하 세계선수권 4회, 17세 이하 세계선수권 3회 등 세계 정상에 오른 경험이 어느 나라보다 많지만 이상하리만큼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1984년 LA올림픽과 1988년 서울올림픽 준우승이 역대 최고성적이다.
이런 브라질이 이번 베이징에서는 칼을 아주 독하게 갈고 있다. 둥가 감독은 소속 구단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스트라이커 호나우지뉴(28·AC밀란)를 결국 올림픽에 출전시켰고, ‘떠오르는 샛별’ 알렉산드르 파투(AC밀란),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 동료 안데르손, 리버풀의 미드필더 루카스 라이바 등 쟁쟁한 영건들을 발탁했다.
하지만 그래도 삼바축구의 첫 우승은 장담할 수 없다. 디펜딩챔피언 아르헨티나, 유럽예선 우승팀 네덜란드, 그리고 1996년과 2000년 올림픽을 거푸 제패한 아프리카의 다크호스들이 진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 (왼쪽부터) 박성현, 장미란, 이봉주.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한국은 8월 7일 오후 8시 45분 카메룬, 10일 같은 시간 이탈리아, 그리고 13일 오후 6시 온두라스와 예선전을 치른다. 8강전은 16일, 준결승은 19일, 그리고 결승은 23일 오후 1시에 각각 열린다.
우(五) - 남자 마라톤, 달려라, 봉달이
올림픽의 꽃은 뭐니뭐니해도 남자 마라톤이다. 기록단축이 중요한 A급 국제대회와는 달리 올림픽은 순위싸움이 치열하다. 생애 네 번째이자 마지막 풀코스 도전을 노리는 ‘국민마라토너’ 이봉주(38)가 선수로서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것도 올림픽 마라톤의 특수성 때문이다.
8월에 열리는 까닭에 선수들은 무더위와 싸워야 한다. 그렇다면 세계 톱랭커로 스피드는 좀 부족하지만 지구력의 화신으로 불리는 이봉주가 한번 노려볼 만한 레이스가 되는 것이다. 이봉주와는 실과 바늘의 관계인 오인환 삼성전자 감독은 “베이징 마라톤은 평탄하지만 무더위로 인해 2시간 10분 안팎에서 우승자가 결정될 것이다. 이봉주에게도 승산이 있다”라고 밝혔다.
재미있는 것은 마라톤 무대를 휩쓸고 있는 케냐가 정작 올림픽 우승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케냐는 이번 베이징올림픽에 드림팀을 출전시켰다. 로버트 체루이요트(2시간7분46초), 마틴 렐(2시간5분15초), 사무엘 완지루(2시간5분24초 이상 올해 기록)로 구성된 신흥 3인방이다. 남자 마라톤은 폐막일인 24일 오전 8시 30분에 시작한다.
리우(六) - 수영·역도, 국민동생 시선집중
4년 전 아테네올림픽에서 박태환(19)과 장미란(25)은 불운했다. 박태환은 남자 자유형 400m 예선 첫 경기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부정출발을 해 제대로 물에 몸도 담그지 못하고 짐을 싸야 했다. 장미란은 판정시비 끝에 너무도 아쉬운 은메달에 그쳤다.
하지만 4년 만에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수영 남자 자유형 200m, 400m, 1500m 등 세 종목에 출전하는 박태환은 400m에서 펠프스가 출전을 포기할 정도로 독보적인 존재로 우뚝 섰다.
장미란은 거의 무혈입성이 예상된다. 최근 세계무대를 석권하고 있는 장미란의 기세에 놀란 중국이 여자 75kg급 출전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최대 라이벌인 무솽솽(중국)이 빠진 탓에 장미란은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금메달은 떼논 당상이다. 장미란은 8월 16일 오후 8시부터 경기에 나서고, 박태환은 10일 오전 11시부터 400m 결승, 17일 같은 시간에는 1500m 결승에서 물살을 가른다.
치(七) - 남자 유도·양궁, 샛별과 최강 궁사들
남자 유도 73kg급의 왕기춘(20)은 이원희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 국내 올림픽국가대표선발전 과정에서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를 꺾고 태극마크를 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담은 크지만 이미 세계선수권 우승 경험이 있는 등 객관적인 실력에서 금메달에 바짝 다가 서 있다. 왕기춘은 8월 11일 오전 예선을 치르고, 오후 7시부터 결승 토너먼트에 나선다.
양궁은 한국이 20년 넘도록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고 있는 종목이다. 주요국가의 대표팀 코치가 한국인일 정도로 양궁에서 한국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한국은 남녀 개인과 단체 등 전종목 석권에 도전한다. 아무리 못해도 두 개는 딸 수 있다는 평가다. 특히 여자대표팀의 박성현은 아테네 2관왕 재현에 도전한다. 이는 ‘신궁’ 김수녕과 윤미진도 달성하지 못한 업적이다. 여자와 남자 단체전 결승은 각각 10일과 11일 오후 5시부터 열리고, 개인전 결승은 14(여), 15일(남)에 벌어진다.
빠(八) - 남자 육상 100m, 총알탄 사나이 누구
8월 16일 밤 11시 30분 전 세계는 10초의 미학을 보기 위해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에 집중한다. 우사인 볼트(22·자메이카), 아사파 파월(26·자메이카), 타이슨 게이(26·미국)가 펼치는 육상 남자 100m ‘총알탄 사나이 3국지’를 보기 위해서다.
볼트는 9초72의 세계기록보유자다. 파월의 종전 세계기록 9초74를 지난 6월 1일에 0.02초 단축했다. 파월은 최근 3개 대회 연속 정상을 밟으며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하고 있다. 게이는 큰 대회에 강하다. 지난해 오사카세계선수권대회에서 100m는 물론이고 200m까지 석권했다. 6월 30일에는 강한 뒷바람 탓에 공인받지는 못했지만 9초68의 비공인 세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m 미국대표선발전에서 허벅지 통증으로 기권했기에 100m에 대한 애착이 더욱 크다(최고기록 9초77).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