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전문가 4인에게 들어보는 한국문학 이야기
맨부커상을 수상한 한강 씨(오른쪽)와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 사진출처=맨부커상 공식 트위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윤철호 사회평론 대표 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윤) : 한강 작가가 수상했다는 건 젊은 주역들이 세계시장에서 통하고 있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세계시장에서 바로 호흡할 수 있는 젊은 문인들이 나타났다는 측면에서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김영하 작가 같은 분들도 한강 작가처럼 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곽효환 시인 겸 대산문화재단 상무(곽) : 이런 큰 이벤트가 있었으니 다른 작품들의 해외소개에 대한 긍정적인 후속효과가 올 거라고 본다. 한국 문학이 지난해 신경숙 사건 이후로 긴 침묵에 빠져있었는데 이걸 통해 다시 본래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채식주의자>만 팔리다 끝나버리는 경우는 오지 않았으면 한다.
정과리 문학평론가 겸 연세대 교수(정) : 프랑스에 ‘드크레센조’라고 한국 문학만 전문으로 번역 출판하는 출판사가 있는데 거기서 연락이 왔다. <채식주의자>는 이 출판사에서 출판한 게 아닌데 프랑스 언론에서 자기들한테 연락이 왔다고 한다. 한강 작가가 수상한 걸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한국 문학 자체를 인정한 의미가 아니겠는가.
―한국문학이 중국, 일본과 비교하면 세계적으로 덜 주목받고 있다. 한국문학의 수준이 떨어져서 그런 걸까.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이) : 내 주관적인 생각으로 한국 문학의 예술적 완성도는 세계 유명 문학 수준과 견줘봤을 때 대등한 위치에 있다고 본다. 국내 작가들은 이미 긴 습작 과정을 거쳐서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해왔다.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이 이를 확인한 셈이다.
윤 : 내가 봐도 한국 문학의 수준은 높다. 한국 문학이 세계에서 호흡하고 경쟁하는 자극제가 없어서 국내용으로 되니까 오히려 의욕이 줄어서 발전이 더 될 수 있는데 정체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곽 : 나 역시 90년대 들어와서 세계 문학과 한국 문학의 격차는 없어졌다고 본다. 이문열, 이청준 등의 작가가 세계적으로도 크게 주목 받았고 황석영, 신경숙, 김영하, 한강에 이르기까지 문학 콘텐츠로서의 격차는 거의 없다고 본다. 다만 국가의 위상에 관한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우리가 태국 문학이나 라오스 문학에 별로 관심을 안가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태국 문학이 떨어진다고 보진 않는다.
정 :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내가 보기엔 한국 문학이 가능성은 있지만 생산된 작품으로 보자면 아직은 부족한 것 같다. 90년대 이후 한국문학은 배출하는 아이디어가 엄청 확산된 것만 사실이다. 전체적인 서사구조가 완결성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지 않다. 90년대 이후 한국 문학이 성공적으로 진화하기보다는 상업화에 휘말리면서 자체적으로 강화되지 못하고 대중적 취향 쪽으로 빠져간 면이 있다.
좌측부터 윤철호 사회평론 대표 겸 한국출판인회의 회장, 정과리 문학평론가 겸 연세대 교수, 곽효환 시인 겸 대산문화재단 상무, 이구용 KL매니지먼트 대표.
―그렇다면 한국문학이 세계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이 있을까.
윤 : 우선 국내 출판시장을 제대로 살려야 한다. 한강 작가는 창작과비평(창비)에서 키운 작가다. 창비는 정부 지원을 제일 안 받는 곳이다. 제대로 된 출판 진흥 정책을 세워야 작가들도 클 수 있다. 작가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출판사가 돼야 한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이 생기기 이전 출판, 문학 등이 발전했고 정치가 바뀌고 기업이 달라지는 과정을 밟았다. 새로운 단계로 넘어가는 길에 투자를 해야 한다.
이 : 해외로 나가기 위해서는 문학 에이전시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본은 이미 20~30년 전부터 나 같은 에이전시가 활동했고 다양한 작가들이 해외에 소개됐다. 국내 문학은 해외에 본격적으로 나가기 시작한 게 불과 10여 년 정도다. 그러다보니 확률적으로도 일본 문학, 중국 문학이 해외에 소개된 경우가 한국 문학보다 많은 거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많이 써왔기에 잘 준비한다면 더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정 : 그런 부분도 중요하지만 좋은 콘텐츠는 좋은 콘텐츠를 요구하는 사람이 있어야 나온다. 한국 문학에서 비평기능이 완전히 사라졌다. 비평가가 작가에게 지적할 수 있는 풍토가 사라졌다. 독자들의 수준도 높일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한국 문학에는 독자들을 끌어올리는 제도가 없다. 외국은 초등학생들에게 시를 외우게끔 하는데 한국은 창의성 교육이라고 해서 작품을 읽지도 않은 아이에게 작품 쓰는 걸 요구한다.
―한국인들의 독서량이 날이 갈수록 줄고 있다. 한국인 독자가 많아야 한국문학의 세계화도 가능할 것 같다.
이 : 국내에서 소설은 일부 마니아층만 읽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작가들이 많이 나오기 위해서는 그들이 경제적으로 생존이 가능한 전업작가가 나와야 한다.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돼야 몰두해서 작품도 쓰고 그럴 때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거다. 사람들이 소설에 좀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윤 : 그런데 한국인이 한국 문학을 안 읽고 해외 문학을 읽는 이유는 한국 문학작품의 경쟁력이 부족하니까 그렇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읽고 국내 작가 작품을 안 읽는 건 국내 독자들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보다 국내 작가가 경쟁력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걸 정부가 지원해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한국 문학의 수준은 높기 때문에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 문학 수준을 느꼈으면 좋겠다.
정 : 무라카미 하루키를 예로 들었는데 세계화는 국내 독자가 외국 작품 읽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의미도 된다. 요즘 젊은이들이 영어를 진짜 잘한다. 영어책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그러니 독자들이 한국 문학을 존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한국 문학에 대한 교육을 시켜야 한다. 한국 문학에 대해 독자들이 익숙해지면 요구하는 것도 높아진다. 그게 다 교육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 거다. 쉽지 않지만 언론도 그렇고 문학인들도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
곽 : 이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 자체가 좀 더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한 환경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 제도적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은 매월 마지막 수요일 문화의 날만 하고 끝난다. 대통령이 문화의 날에 영화 한 편 보고 애국심 이야기하지 말고 차라리 학생들과 책을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초등학생 초대해서 책 한 권 읽고 책 이야기를 하면 상징성이 굉장히 크다.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따로 진열돼 있는 소설 ‘채식주의자’.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정 : 한글은 굉장히 투명한 언어다. 중국어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고전에서 온 이야기들과 겹쳐져 있다. 한마디에서 울리는 여러 의미들이 있다. 그러나 한글은 즉각적으로 내용이 전달된다. 그러다보니 서양인들 가슴에 팍팍 꽂히는 게 있다. 한국 문학 번역은 보통 팀을 짜서 하는데 한국인 1명, 해당 언어권 1명으로 이루어진다. 재밌는 건 파트너가 한국어를 모를 경우에 번역이 더 잘되는 경우가 많다. 리얼리티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고 박경리 작가의 <토지>는 한국인이 주도한 번역인데 외국에서 실패했다. ‘아지랑이 하늘하늘 올라간다’를 ‘스카이 스카이’ 이렇게 번역했다(웃음).
곽 : 80년대까지 1세대 번역가들은 외국 문학에 밝은 한국인과 이를 도와주는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다. 90년대 들어가면 2세대 번역가가 등장한다. 한국 문화에 대해 약간의 이해가 있는 외국인과 한국인이 공동 번역을 하면서 이승우, 황석영 등의 작가가 홍보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요즘 나타난 3세대 번역가들은 외국인이 한국어를 스스로 공부해서 번역한다. 데버러 스미스 씨가 그 좋은 예다. 덕분에 언어 간 갭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한강 작가의 수상은 대한민국 문학 세계화에 있어 굉장히 좋은 신호다.
윤 : 나는 번역도 중요하지만 콘텐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정부에서 데버러 스미스를 직접 지원하지는 않았을 거다. 출판사들이 훌륭한 작가와 작품, 번역을 만든 것이다. 번역이 중요하지만 정부가 괜히 번역에 투자하지 말고 그 시간에 작가를 더 키웠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언제쯤 나올까.
이 : 일단은 노벨문학상의 가능성과 잠재력은 확인됐다. 받을 수 있는 지점에는 도달했다고 본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사람 중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사람이 여러 명 있다. 즉 맨부커상을 받은 작가들은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문학적 예술적 능력을 다 갖췄다는 이야기다. 독자들이 좀 더 관심을 가지면 한강 같은 훌륭한 작가가 더 나오고 어느 날 갑자기 노벨문학상의 영예가 뚝 떨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물론 무조건 기다리고 고대하는 게 아니라 그런 상황을 만들어 놓고 기대해야 한다.
곽 : 나는 한국 문학이 어느 때보다 노벨문학상에 가까이 가고 있다고 본다. 2007년, 2008년 고은 작가가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현재는 한강이나 이승우 같은 작가들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세계 문학의 메이저 작가들도 고은 선생을 추천한 데서 볼 수 있듯이 한국 문학은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준이 됐다.
윤 : 말씀하신 것처럼 언젠가는 탈 수 있지 않겠나. 이번 수상을 계기로 한국 문화가 한국 산업보다 앞서갈 수 있다. 문학도 더더욱 발전할 거고.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수상도 할 것 같다.
정 : 노벨이 죽을 때 노벨문학상을 인류의 고귀한 정신을 드높인 작가에게 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래서 최근 대부분의 노벨문학상은 자유, 평등을 위해 투쟁한 작품들이 받아왔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최근 사회적인 발언을 많이 하는 것도 이걸 노린 게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국내 작가들은 좀 더 유리할 수 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