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땐 비둘기 죽이기 경기도 있었다
▲ 체조 종목 중 하나였던 밧줄 오르기(왼쪽), 한 선수당 세 번의 기회가 주어졌던 한 손 역도, 1900년 파리 올림픽 정식 종목이었던 말 타고 멀리뛰기(아래) 경기 모습이다. | ||
▲밧줄 오르기(1896년 아테네 올림픽,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1924년 파리 올림픽, 1932년 LA 올림픽)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을 시작으로 그 후 36년 동안 띄엄띄엄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던 종목이다. 당시에는 체조 종목 중 하나였으며, 밧줄을 잡고 누가 더 빨리 꼭대기까지 도달하는가를 겨루는 경기였다. 단순히 빨리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는 자세도 점수에 반영되었다. 밧줄의 길이는 총 14m였다.
▲한 손으로 역기 들기(1896년 아테네 올림픽)
오늘날의 역도 경기와 방식은 비슷하지만 양손이 아닌 한 손으로 역기를 들어 올린다는 점이 달랐다. 한 선수당 세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금메달은 영국의 선수가 차지했으며, 기록은 71㎏이었다.
▲줄다리기(1900년 파리 올림픽~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
학교 운동회에서나 할 법한 줄다리기도 한때는 당당하게 올림픽 종목이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한 팀당 여덟 명의 선수가 출전했으며, 줄의 길이는 1.8m, 경기 시간은 5분이었다. 5분 이내에 일정 표시된 부분까지 줄을 당길 경우 승리했으며, 만일 5분이 지나도 승패가 가려지지 않으면 종료 후 더 많이 끌어당긴 쪽이 승리했다.
국가별 대항이 아니라 클럽별 대항이었기 때문에 한 나라가 금은동 세 개를 모두 휩쓰는 경우가 빈번했다. 가령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에서는 미국의 클럽팀이 메달 세 개를 싹쓸이 했는가 하면,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영국이 금은동을 모두 차지했다.
▲제자리 높이뛰기(1900년 파리 올림픽~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오늘날의 높이뛰기와 비슷하지만 도움닫기를 하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뛴다는 점이 달랐다. 세계최고기록은 1900년 파리 올림픽 때 미국의 레이 유리 선수가 세운 1.65m다.
▲제자리 멀리뛰기(1900년 파리 올림픽~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역시 도움닫기를 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멀리 뛰어야 한다는 점이 오늘날의 경기와 달랐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 때 레이 유리 선수가 세운 3.47m가 세계최고기록이다.
▲잠수한 채 수영하기(1900년 파리 올림픽)
물속에서 잠수한 채 얼마나 멀리, 또 얼마나 오래 수영하는가를 겨루는 경기였다. 파리 올림픽 때 단 한 차례 시행되었다가 곧바로 폐지되었다. 이유는 경기 모습이 관중들에게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수중 카메라가 보편화된 현대라면 모를까, 물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다면 흥미가 떨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장애물 수영(1900년 파리 올림픽)
물속에 설치된 그물을 헤치면서 수영하거나 혹은 장대를 넘으면서 수영을 하는 경기였다. 심지어 여러 대의 보트 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등 다소 엉뚱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살아있는 비둘기 쏘기(1900년 파리 올림픽)
올림픽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동물을 죽이는 경기였다. 수백 마리의 비둘기를 풀어 놓고 제한된 시간에 누가 얼마나 많이 쏘아 죽이는지를 겨루었다. 당시 300마리의 비둘기가 죽었으며, 시합이 끝난 후 경기장 바닥은 비둘기의 피와 깃털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너무 잔인한 데다 동물보호운동가들의 반발로 결국 단 한 차례만 실시된 후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 살아있는 비둘기 쏘기(왼쪽), 높이 던지는 선수가 승리하는 56파운드 던지기, 국가대항이 아닌 클럽대항 줄다리기(아래) 경기 모습이다. | ||
말을 탄 채로 장애물을 높이 뛰는 경기였다. 당시 대회에서는 프랑스 선수와 이탈리아 선수가 1.85m의 타이 기록을 세워서 공동금메달을 획득했다.
▲말 타고 멀리뛰기(1900년 파리 올림픽)
말을 탄 채로 누가 멀리 뛰는가를 겨루는 시합이었다. 당시 금메달은 벨기에의 선수가 차지했으며, 기록은 6.10m였다.
▲56파운드 던지기(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
손잡이가 달린 25㎏ 무게의 포환을 장대 너머로 던지는 경기. 육상 종목 중 하나인 투포환 던지기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멀리 던지는 것이 아니라 높이 던지는 사람이 이기는 종목이었다. 당시 투포환 던지기와 비슷한 종목으로는 ‘56파운드 멀리 던지기’가 있었다.
▲다양한 덤벨 들기(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이틀에 걸쳐 10가지의 다양한 모양의 덤벨을 들어올리는 경기였다. 당시 미국 선수들 세 명만 출전해서 나란히 금은동 메달을 획득했다.
▲클럽 돌리기(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오늘날의 리듬체조와 비슷한 종목으로 볼링핀처럼 생긴 클럽을 몸 주위에서 이리저리 돌리는 경기였다. 단,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클럽을 돌려야 했다.
▲멀리 다이빙하기(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다이빙한 후 누가 더 멀리 떠서 가는가를 겨루었다. 절대로 발장구를 치거나 손을 사용해서 헤엄을 치면 안 되었으며, 가만히 물 위에 떠서 흘러가야 했다. 입수한 후 60초가 지날 때까지 누가 더 멀리 갔나를 측정했다.
▲모터보트 경주(1908년 런던 올림픽)
올림픽 역사상 최악의 종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균 속도가 시속 30㎞에 불과해서 박진감도 떨어지는 데다, 멀리 바다 위에서 레이스가 펼쳐진 까닭에 아무도 경기를 볼 수 없었다. 또한 비가 오는 날에는 아예 경기가 취소되는 등 이런저런 이유로 런던대회를 끝으로 퇴출당했다.
▲주 드 폼(1908년 런던 올림픽)
스쿼시나 테니스와 비슷한 형식의 구기 종목이었다. 하지만 라켓 대신 손으로 공을 치는 다소 우스꽝스런 경기였다.
▲달리는 사슴 쏘기(1908년 런던 올림픽)
진짜 사슴이 아니라 움직이는 사슴 모형을 쏘는 사격 종목이었다. 사슴 모형의 몸통에는 각각 4점, 3점, 2점의 과녁이 그려져 있었으며, 만일 과녁을 벗어나서 사슴의 몸을 맞출 경우에는 1점이 주어졌다. 선수들은 100m 떨어진 거리에서 단 한 발만 쏠 수 있었으며, 모두 10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텀블링(1932년 LA 올림픽)
사각형 널빤지 위에서 몸을 비틀면서 뛰어 묘기를 부리는 시합. 오늘날의 체조 경기 중 마루종목과 비슷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