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룰 땐 ‘럭비공’ 의리는 ‘3점 슛’
‘초짜’ 감독 간보기 시험
신세계의 정인교 감독(38)은 젊은 지도자다. 나이는 6개 여자팀 중 두 번째로 어리지만 ‘여탕’ 경력은 6개구단 감독 중 가장 선임이다. 2005년 6월 코치로 와 감독대행을 거쳐 지금까지 3년 3개월째 서울 청운동의 신세계 체육관을 지키고 있다. ‘여탕의 생리’를 알려달라고 주문하니 3년 전 처음 신세계 체육관을 찾았을 때를 먼저 끄집어냈다.
“처음 코치로 왔는데 한 고참선수가 들이댔어요. 거의 싸우다시피 했고, 팀의 주축인 그 선수가 저 때문에 은퇴하니 마니 좀 시끄러웠어요. 하지만 성격상 그냥 져줄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그만둔다는 생각으로 강공책을 택했고, 다행히 잘 넘어갔어요. 그런데 한참이 지난 후 당시 감독님(김윤호)이 제게 ‘너 간도 크다. 여탕에서는 ‘신삥’ 지도자가 오면 한 번씩 간을 보는데 너는 잘 이겨냈다’라고 했어요.”
여자선수단의 남자감독이라는 독특한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처음부터 강하게 확인한 셈이다. 실제로 이는 정 감독뿐 아니라 아주 일반화된 얘기였다. 올해 처음으로 감독이 된 조성원 국민은행 감독도 코치시절 ‘선수와 사이가 나쁘다’는 소문에 시달렸고, 거의 대부분의 초짜들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남자보다 두 배는 힘들다
“남자들은 욕이라도 하죠, 뭐 때로는 꿀밤 한 대 쥐어박기도 하다가 나중에 소주 한 잔 하면서 다 풀 수 있잖아요. 여자들은 욕은커녕 심한 말도 함부로 못해요. 정말 섬세하게 대해야 합니다.”
지난 6월 용인 삼성생명 감독으로 부임한 이호근 감독(43)의 말이다. 이 감독은 동국대 감독, 전자랜드(남자프로팀) 코치 이전에 이미 신세계에서 여탕 코치를 경험한 바 있다.
정인교 감독의 상세한 설명은 더 절절하다. “사회 경험이 짧다보니까 일반인들이 겪는 흔한 문제도 대처능력이 크게 떨어져요. 집안문제나 남친과의 갈등, 뭐 조그만 문제가 있어도 바로 표가 나요. 그럼 어쩝니까? 경기력에 지장 있는데…. 결국에는 감독이나 프런트가 나서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죠. 여자팀 지도자가 품을 들이는 것을 100이라고 하면 남자팀 지도자는 한 50~60쯤 되는 거 같아요.”
▲ 신세계 쿨캣여자농구단의 정인교 감독이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여자는커녕 돌로도 안 보여
박명수 전 우리은행 감독의 성추행 사건, 그리고 한 TV 시사프로그램이 고발한 여고 농구부의 있어서는 안 될 일들. 2008년 들어 여자 선수들의 인권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질문을 했다. “한창 때 젊은 선수들이고, 워낙에 선수는 물론 감독까지도 집보다 숙소가 더 편할 정도로 한 곳에서 함께 먹고, 자고, 운동하는 까닭에 이성적인 감정이 생길 수 있지 않느냐?”고.
정인교 감독은 털털 웃으며 “여기(신세계농구단 체육관)서 생활한 지 3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숙소 2층 구조를 잘 모릅니다(감독, 코치의 숙소는 1층, 선수들은 2층 이상). 1년에 한 서너 번 올라갈까 모르겠어요. 오히려 감독, 코치가 문을 잠그고 잘 정도인 걸요”라고 답했다. 워낙 성적에 민감하고, 또 고된 훈련의 연속인 까닭에 딴 생각을 할 틈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령 그런 일이 있으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 전에 팀워크에 이상이 생겨 정상적으로 팀 운영을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대신 정말 인간적으로 마음에 드는 선수는 좋은 후배나, 조카의 배우자로 소개시켜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정인교 감독은 “자격이 없는 극소수 사람들이 큰 실수를 해서 그렇지 여자팀은 남자선수에 비해 오히려 체벌이나 욕설 등이 더 없어요. 그랬다가는 일단 팀워크가 먼저 깨지고, 지도자가 버티기 힘듭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래도 매력만점인 자리
반나절이 넘도록 여자팀의 남자지도자들이 갖는 특수성에 대해 설명하던 정인교 감독은 끄트머리에 의미 있는 멘트를 더했다.
“앞서 제가 처음 부임했을 때 저를 간봤던 선수가 바로 양정옥 선수예요. 정말이지 심하다 싶을 정도로 혼이 났는데 그 후 감독님이 경질되고 신세계 농구 역사상 팀이 가장 어려운 시기를 겪을 때 저를 가장 많이 도와준 선수도 양정옥이었어요. 올해 우리팀으로 온 고참 김지윤도 ‘감독님 때문에 원형 탈모증이 생겼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음으로 양으로 저를 많이 도와줍니다. 오히려 남자들보다 여고 제자들이 환갑이 넘도록 은사를 챙기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것처럼 고생이 심한 만큼 보람도 많습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