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심 걷어내고 ‘킬러’ 본능 키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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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프로 데뷔를 했지만 아테네올림픽 대표팀 탈락 등의 시련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낸 정조국. 최근 다시 실력을 인정 받으며 폭발적인 득점력을 보여주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청소년대표 시절 촉망받는 차세대 스트라이커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2003년 프로 데뷔 후엔 신인왕까지 거머쥐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선 최성국과 함께 훈련생 신분으로 월드컵에 참가하며 히딩크 감독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바 있다. 그런 그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최종엔트리 탈락 이후 질풍노도의 시간들을 거쳐 왔다. 그 후 대표팀을 오락가락했고 소속팀에선 박주영의 존재감이 그의 위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 절치부심 끝에 드디어 이전의 모습을 되찾은 정조국은 최근 ‘패트리어트’란 자신의 별명처럼 폭발적인 득점력과 어시스트 능력으로 팀의 승리를 이끄는 주역으로 거듭났다.
지난 25일, 구리에 있는 FC서울 훈련장에서 정조국을 만나 그의 남다른 축구인생을 들춰봤다.
박주영의 부재
촬영을 위해 유니폼 대신 평상복을 입고 와 달라는 부탁에 정조국은 가벼운 티셔츠에 굉장히 패셔너블해 보이는 비니 모자를 하고 기자 앞에 나타났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반갑기도 했지만 이전의 ‘우울모드’를 걷고 한층 밝고 환한 얼굴을 보여줘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먼저 요즘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 1년 후배, 박주영의 공백이 정조국한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물었다.
“주영이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별로 없어요. 단지 주영이의 부재가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나 자극이 된 것은 사실이에요. 저 또한 마찬가지구요. 어떻게 해서든 주영이 자리를 완전히 ‘찜’해 두려고 노력 중이니까요. 지난해까지 감독님과 선수들이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었다면 올해는 제대로 된 만남을 이룬 것 같아요. 감독님이 추구하는 스타일이 선수들을 통해 조금씩 드러나고 있으니까요. 선수들도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구요. 요즘 같으면 정말 축구할 맛이 나요.”
착각과 자만심
정조국은 짧지 않은 프로 생활을 통해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치른 기분이라고 말했다. 프로 데뷔 초반만 해도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라도 되는 양 우쭐한 기운이 그를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조국 스스로 “난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인 줄 알았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축구인생이 실크로드만 내달릴 줄 알았다. 그런데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2004아테네올림픽대표팀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때만 해도 제가 대표팀에 들어가는 건 당연하다고 자만했었어요. 의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그런데 탈락한 거예요. 제 실력은 생각지도 않고 김호곤 감독님을 원망하기도 했었죠. 그 일 이후로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어요. 제가 그동안 갖고 있는 실력에 비해 과대 포장됐다는 것도 깨달았고 제가 잘난 놈인 줄 착각하며 살았다는 사실도 절감했어요. 한마디로 꿈에서 깨어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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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C서울의 정조국이 부산아이파크와의 경기에서 골을 넣은 후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FC서울 | ||
후배의 해외 진출
정조국은 청소년대표팀 시절만 해도 박주영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더욱이 히딩크 감독의 훈련생으로 뽑히며 월드컵 대표팀과 함께 시간을 보냈던 부분은 그의 존재 가치와 실력을 인정받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박주영이 프로 데뷔 후 매스컴의 엄청난 취재 공세를 받을 때 정조국은 한 발 물러나 후배의 스타 탄생을 지켜봐야 했다. 더욱이 박주영의 입단으로 정조국의 자리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런 가운데 박주영이 ‘어느날 갑자기’ 해외 진출에 성공한 것이다.
“주영이가 AS모나코에 입단하는 걸 보니까 정말 부럽더라구요. 진심으로 축하를 하면서도 저 또한 외국에 나가고 싶은 열망이 있기 때문에 부러운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죠. 주영이는 가진 게 많은 선수예요. 축구에 대한 센스나 스피드, 기술적인 부분들까지 두루 갖추고 있어요. 분명 성공하리라 믿어요. 이전같이 철없을 때는 마냥 질투만 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제 실력을 쌓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 해외 진출 운운할 수 있지 않겠어요.”
히딩크 감독의 러브콜
정조국도 2002년 월드컵 이후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은 적이 있었다. 고3 때였고 당시 안양LG(FC서울)로의 입단이 가시권에 있던 상태라 정조국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의 한국 내 매니지먼트사로부터 처음 얘기를 전해 들었고 나중에 히딩크 감독과 직접 만나 PSV에인트호번 입단 문제를 상의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감독님이 제 입장을 정확히 얘기해 달라고 하셨는데 제가 순간 고민을 했어요. 외국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까요? 낯선 곳에서 혼자 생활하는 데 대한 막연한 걱정들이 선택을 망설이게 했죠. 특히 한국에서 1~2년 뛰다가 충분히 외국에 나갈 수 있을 거란 자신도 있었어요. 결국 그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그땐 정말 어렸던 것 같아요. 하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정조국은 안양LG 입단이 후회되는 게 아니라 당시 외국 진출의 기회를 스스로 놓친 데 대한 자책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제 정조국의 나이 겨우 스물네 살이다. 축구인생의 전반전을 뛰고 있을 뿐이다. 기회는 또 올지도 모른다.
대표팀과의 악연
정조국은 아테네올림픽 이후 대표팀을 들락거렸다. 베어벡 감독의 황태자란 소리를 들을 만큼 두터운 신임을 받았지만 부상으로 나왔다가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고 심기일전해 뛰었던 경기가 올 1월에 있었던 칠레와의 평가전. 그러나 정조국은 경기 시작 30분 만에 허리를 다쳐 들것에 실려나와야만 했다.
“너무 아쉬웠어요. 좀 해볼만 하면 부상으로 뛰질 못하니까. 뭐 제대로 보여준 것도 없이 퇴장했을 때는 정말 한심하더라구요. 이상하게 대표팀과는 사연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미련을 갖는 것도 같구요. 다시 태극마크를 달 수 있다면 정말 죽기 살기로 뛰고 싶어요. 물론 그 전에 허정무 감독님한테 신뢰를 받아야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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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일화에서 활약 중인 이동국은 얼마 전 “대표팀의 득점력 빈곤은 모든 공격수들이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 바 있었다. 이에 대해 정조국은 어느 정도 공감한다며 말을 이어갔다.
“공격수라고 해서 매번 골을 넣을 수는 없어요. 그리고 그 골은 혼자 잘한다고 해서 들어가는 것도 아니구요. 선수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다른 선수의 도움도 중요합니다. 사실 공격수란 자리가 부담이 많은 포지션이에요. 골 안 넣고 싶은 공격수가 누가 있겠습니까. 공격수 입장에서 득점력 빈곤을 반성하기보단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또 그 노력만이 공격수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축구장에 물 채우라고?
정조국은 베이징올림픽 이후 감소되고 있는 K-리그 관중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축구팬들이 올림픽대표팀의 실망스런 성적에 항의하며 ‘축구장에 물 채우라’고 했던 부분에 대해선 축구선수로서 창피함을 느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오죽했으면 그런 말이 나왔겠어요. 우리들 잘못이죠 뭐. 우리가 재밌고 신나는 축구를 해야 경기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거잖아요. 관중이 없는 경기장에서 축구하는 기분은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예요. 프로야구 롯데 경기에 관중들이 꽉꽉 들어차는 걸 TV로 보면서 우리 FC서울 경기에도 그렇게 많은 관중이 오실 수 있게끔 멋진 경기를 펼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롯데…, 부럽긴 부럽더라구요.”
정조국은 개인적으로 수원과의 경기를 앞둘 때가 가장 긴장되고 흥분된다고 말한다. 워낙 K-리그의 유명한 라이벌 팀인데다 서포터스의 충성도나 관심이 뜨겁다보니까 경기를 앞둔 상태에선 선수는 물론 코칭스태프까지 긴장하기 마련이다.
경기하기에 가장 재미있는 팀이 수원이라면 경기 중 정조국을 가장 힘들게 하는 선수는 전남의 곽태휘라고. 워낙 빡빡한 수비를 펼치기 때문에 그 틈을 뚫고 가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동국과 조재진
정조국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유난히 이동국, 조재진과 정조국에 대한 비교 글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래서 정조국에게 직접 앞의 두 선수와 자신을 비교해 달라고 부탁했다.
“먼저 제가 두 선배들과 비교된다는 게 너무 황송할 따름이죠. 아직은 제가 그 선배들을 쫓아가는 입장이잖아요. 동국이 형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스트라이커예요. 현역 선수들 중 최고의 스트라이커라고 생각해요. 슈팅력, 헤딩력, 키핑력 등을 모두 갖추고 있어요. 재진 형은 헤딩력이나 제공권 장악력이 뛰어나구요, 주위 선수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움직임이 좋아요. 그리고 제가 제 얘길 하기가 무척 쑥스럽지만 골대 앞에서의 움직임은 조금 나은 것 같아요. 요즘엔 득점보다 어시스트가 더 좋아요.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 역할이 더 편하더라구요.”
정조국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로 2003년 프로 데뷔 첫 해를 꼽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설명이 뒤따른다.
“만약 제가 지금과 같은 마인드로 그 당시 축구를 했더라면 굉장히 뛰어난 선수로 성장했을 것 같아요. 그때는 제가 무지 축구를 잘하는 줄 알았고 그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확대돼 걷잡을 수가 없었어요. 만약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더욱 겸손한 자세로, 겉멋만 들지 않고 속이 꽉 찬 선수가 돼 축구를 할 것 같아요. 이제야 제가 조금 철이 든 건가요(웃음)?”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