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임신…가족도, 학교도 몰랐다
지난해 11월 22일 밤 10시쯤 대전 용운동 대학가의 원룸촌 쓰레기장에서 의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계속되는 울음소리에 한 행인이 다가갔다. 고양이 울음소리인 줄 알았으나 종이박스에 담긴 신생아가 울고 있었다. 박스에는 수건 2장에 쌓인 여자아이, 그리고 출생일시와 이름 등이 적힌 메모지가 담겨 있었다. 겨울밤이라 조금만 늦었어도 아이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경찰은 CCTV 분석을 통해 영아를 유기한 용의자로 A 씨를 특정했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A 씨는 인터넷 채팅으로 만나 알게 된 지 열흘 쯤 된 남성 B 씨(24·사회복지사)의 집에서 아이를 분만하고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 당시 B 씨는 두 차례 A 씨를 만났지만 뚱뚱한 체형이라 만삭임에도 임신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했다. B 씨는 갑자기 애가 나올 것 같다며 도움을 청하는 A 씨를 자신의 원룸으로 데려가 출산을 도왔고, 공모해 아이를 유기했다. 충격적인 부분은 영아유기 혐의로 A 씨를 조사하던 경찰이 그가 앞서 두 차례나 더 영아를 유기했음을 알게 됐다는 점이다.
2011년 3월 대전 동구의 한 상가 화장실에서 갓 태어난 영아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과 2012년 대전 동구의 한 목욕탕 화단에 영아가 유기된 사건이 있었다. 경찰이 DNA를 감식한 결과 이 두 사건의 영아 유전자가 A 씨의 유전자와 일치했다.
2012년 5월 A 씨가 영아를 유기했던 대전의 한 목욕탕 전경.
이듬해인 2012년 A 씨는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남성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출산했다. 그녀는 영아와 탯줄, 태반을 종이가방에 넣어 집 근처 목욕탕 화단에 유기했다. 당시 폐점 중이던 목욕탕 화단에 갓난아이가 버려져 있던 것을 주민이 발견해 아이는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당시 사건을 기억하는 주민들은 “애가 우는데 가보니까 완전 핏덩이야. 낳고 20분이 뭐야 막 낳은 것 같았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검찰 조사 결과 A 씨는 학생으로 양육할 능력이 없고, 가족들이 출산 사실을 알게 될 것이 두려워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A 씨는 조부모, 어머니, 오빠, 동생 등과 함께 살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의 첫 임신을 알고 있던 어머니는 지적장애 3급이다. 경찰은 수사 당시를 회상하며 “어머니가 힘드셔서 구체적으로 조사하는 것도 조금 힘들었다”고 말했다.
세 차례나 아이를 유기한 A 씨는 언론을 통해 ‘비정한 엄마’로 지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범행 과정과 성장 과정을 통해 여러 의문점이 남았다. 우선 A 씨는 친구 소개로 만난 남성 사이에서 출산까지 했지만 상대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또 임신 사실을 알았음에도 출산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출산 후에도 적절한 방법을 찾지 않았다. 경찰은 상대 남성들의 이름조차 몰라 아이 아빠를 특정하지 못하는 것으로 A 씨의 상태를 주목했다. 또한 검찰은 A 씨가 문제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 의사결정능력이 저하돼 극단적으로 행동할 위험이 있다고도 봤다.
대전 동부경찰서 관계자는 “경찰이 범죄 예방을 강화하고 있고, ‘학교 밖 청소년’을 계도할 의무가 있지만 이런 게 구체적으로 확립된 지 얼마 안돼서 그 당시엔…”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물론 영아 유기에 대한 직접적인 수사 외에 심리 상담이나 정신감정 혹은 이름 모를 남성과 그를 소개시킨 친구 등에 대한 추가 조사는 진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경찰은 “수사는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팩트 위주로 진행한다. 사생활이나 학교생활 등 개인에 대한 상황은 다루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후 검찰에서 관련 조사가 이뤄졌다. 재범 위험성은 중간 단계지만 다소 높은 수치가 나왔고 정신병질 성향 역시 중간수준으로 나왔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A 씨에게 사회복지사와 정신과 상담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한 정신과 의사는 “A 씨의 성의식, 생활태도 등은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임신 책임의 절반에 해당하는 남성, 이름 모를 남자를 소개해 준 친구 등 정황에 대해 깊은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며 우려감을 드러냈다. 또 다른 정신과 의사 역시 “A 씨의 경우 모성애가 결핍된 부분과 영아 유기의 반복, 성장환경을 고려해 정신과적 상담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금재은 인턴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