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류현진 이전에 ‘소년에이스’ 주형광 있었다
아마추어 선수와 프로 선수의 기량은 당연히 격차가 크다. 그러나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연소 기록 보유자들은 대부분 만 20세도 안 된 나이부터 프로에서 잔뼈가 굵은 대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눈부신 재능과 펄펄 끓는 패기로 무장한 ‘앙팡 테리블’이 더 그리워지는 시대. 과연 과거 프로야구를 뒤흔들었던 ‘무서운 아이들’은 누구였을까.
#주형광, 최연소 승리·완투·완봉·세이브의 사나이
롯데 주형광은 투수 최연소 기록을 여러 개 보유하고 있다. 부산고를 졸업하고 롯데에 입단한 1994년부터 기록 행진이 시작됐다. 그해 4월 15일 사직 LG전 9회 4-3 무사 2·3루에서 당시 김용희 감독이 주형광을 마운드에 올렸다. 주형광은 첫 타자 유지현에게 볼넷을 내줘 무사 만루를 만들었지만, 다음 타자 김재현을 1루수 땅볼로 유도해 홈에서 주자를 잡고 병살타를 만들었다. 무사히 1점 차 리드를 지켰다. 자신의 프로 첫 세이브이자 역대 최연소 세이브 기록. 당시 만 18세 1개월 14일의 나이였다.
고졸 신인 데뷔 첫해에 완봉승 따낸 롯데 주형광. 당시 그의 나이 18세였다.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4일 뒤인 4월 19일 대전 한화전에서는 선발 투수로 나서 상대 에이스 정민철과 팽팽한 투수전을 펼쳤다. 결과는 2-1 완투승. 데뷔 첫 승리를 완투승으로 장식하면서 역대 최연소 승리와 완투승 기록(18세 1개월 18일)을 아로새겼다. 주형광은 그해 6월 8일 대구 삼성전에서도 9이닝 동안 단 2안타만 맞고 무실점으로 막아 첫 완봉승을 올렸다. 18세 3개월 7일. 역대 최연소 완봉승 기록이었다.
고졸 신인이 데뷔 첫 해에 완봉승을 따내는 장면은 갈수록 보기 어렵다. 2006년 류현진(당시 한화)이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이 기록들은 앞으로 더 깨지기 어려워 보인다. 주형광은 한동안 역대 최연소 1000탈삼진과 한 시즌 200이닝-200탈삼진 기록까지 모두 보유했다가 ‘괴물’ 류현진의 등장으로 두 개의 기록을 양보했다.
#세이브는 역시 ‘끝판대장’ 오승환
구원 부문 최연소 기록의 ‘끝판왕’은 역시 세인트루이스 오승환이다. 일단 최연소 100세이브 기록은 KIA 임창용이 삼성 시절에 달성했다. 2000년 4월 14일 대구구장에서 친정팀 해태를 상대로 100세이브 고지를 밟았다. 그때 임창용의 나이는 불과 23세 10개월 10일. 두 번째 최연소 100세이브 선수인 오승환(25세 2개월 3일)보다 1년 4개월 어렸다. 임창용은 고교 졸업 후 곧바로 프로에 왔고, 오승환은 대학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150세이브부터는 오승환이 임창용을 추월했다. 오승환은 프로 통산 254번째 경기였던 2009년 5월 5일 대전 한화전에서 26세 9개월 20일의 나이로 150세이브 고지를 밟아 역대 최연소와 최소경기 150세이브 기록을 동시에 썼다.
역대 최연소와 최소경기 150세이브 기록을 동시에 쓴 오승환. 당시 그의 나이는 26세였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통산 200세이브 투수는 역대 단 네 명밖에 없다. LG 김용수, 한화 구대성, 그리고 오승환과 임창용이다. 오승환은 이 중에서도 최연소이자 유일한 20대였다. 29세 28일이었던 2011년 8월 12일 대구 KIA전에서 200세이브 이정표를 세웠다. 오승환 다음으로 어렸던 한화 구대성이 200세이브를 달성했던 나이는 37세 11개월 12일이었다.
한화 정우람은 역대 최연소 500경기(27세 6일)와 600경기(30세 4개월 1일) 출장 기록을 모두 갖고 있다. 정우람의 600번째 경기는 지난해 10월 2일 문학 NC전. 그가 SK 유니폼을 입고 출장한 마지막 경기였다.
정우람은 또 2011년 5월 18일 문학 롯데전에서 25세 11개월 17일의 나이로 최연소 100홀드 기록을 달성했다. 삼성 권혁이 보유했던 종전 기록을 3년 가까이 단축했다. 이 외에도 롯데 강영식이 700경기(34세 1개월 25일), SK 조웅천이 800경기(37세 5개월 10일) 최연소 출장 기록을 각각 갖고 있다. 정우람이 향후 경신할 수 있는 기록들이다.
#100승은 정민철, 1000탈삼진은 류현진
역대 최연소 통산 100승 투수는 한화 정민철이다. 1999년 6월 30일 대전 해태전에서 프로 입단 8년 만에 100승 고지를 밟았는데, 당시 나이가 27세 3개월 2일이었다. 만 27세에 100승을 달성한 투수는 정민철 외에 해태 선동열(27세 7개월 2일), 현대 김수경(27세 11개월 13일)뿐이다. 정민철은 역대 단 세 명뿐인 통산 150승 투수 가운데서도 최연소였다. 35세 2개월 27일이던 2007년 6월 24일 대구 삼성전에서 프로 통산 150번째 승리를 달성했다.
류현진은 2011년 6월 19일 대전 두산전에서 24세 2개월 25일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1000탈삼진 고지를 밟았다. 종전 기록 보유자였던 주형광의 24세 3개월 14일을 한 달 가까이 앞당겼다. 역대 최소경기(153경기) 기록이기도 했다.
역대 최연소 100승 투수 기록을 가지고 있는 한화 정민철. 사진은 1997년 5월 노히트노런 달성 당시(왼쪽)와 한화 코치 시절 류현진을 지도하는 모습.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쌍방울 김원형은 1993년 4월 30일 전주 OB전에서 9이닝 무피안타 6탈삼진 1볼넷 무실점으로 역투해 역대 최연소(20세 9개월 2일) 노히트노런에 성공했다. 쌍방울이 3-0으로 승리했고, 함께 호흡을 맞춘 포수는 김충민이었다.
#‘명불허전’ 이승엽의 놀라운 위엄
이승엽은 홈런으로 일가를 이뤘지만, 다른 부문에서도 셀 수 없이 많은 최연소 기록을 남겼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8년간 일본에서 뛰지 않았다면, 지금쯤 도루를 제외한 전 부문 기록을 갈아치웠을지도 모른다.
일단 이승엽은 역대 최연소 100타점-100득점 기록 보유자다. 1998년 10월 3일 사직 롯데전에서 22세 1개월 15일의 나이로 달성했다. 역대 두 번째 최연소 기록 역시 이승엽의 차지. 이듬해인 1999년 8월 7일 대구 두산전에서 22세 11개월 20일의 나이로 2년 연속 성공했다.
이뿐만 아니다. 2002년 4월 27일 광주 KIA전(25세 8개월 9일)에서 역대 최연소 1000안타 고지를 밟았다. 또 최연소 1500루타(23세 10개월 6일), 2000루타(25세 8개월 28일), 2500루타(26세 11개월 30일) 기록도 차례로 세웠다. 세 가지 모두 역대 최소경기 기록이기도 했다. 특히 2500루타 달성 선수 가운데서는 이승엽이 유일한 20대였다. 최고령 2500루타 선수인 히어로즈 김동수(40세 8개월 19일)와는 무려 16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200개 2루타(24세 7개월 25일), 250개 2루타(25세 11개월 9일) 기록 역시 최연소와 최소 경기 기록이 모두 이승엽의 손에서 나왔다. 최연소 500득점(23세 10개월 11일), 600득점(24세 10개월 4일), 700득점(25세 10개월 5일), 800득점(26세 9개월 13일) 기록 역시 이승엽이 연이어 갈아 치웠다.
타점 부문에서도 당연히 빼놓을 수 없다. 최연소 500타점(23세 8개월 1일), 600타점(24세 8개월 11일), 700타점(25세 8개월 10일), 800타점(26세 1개월 24일), 900타점(26세 11개월 13일) 기록을 줄줄이 썼다. 600타점부터 900타점까지 모두 최소 경기 기록이었고, 20대에 900타점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였다. 900타점 최연소 2위인 현대 심정수(30세 3개월 28일)와 차이가 많이 난다. 아직 은퇴도 하지 않은 선수가 왜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로 불리는지 실감케 하는 기록들이다.
한화 장종훈은 34세에 역대 최초이자 최연소 3000루타 기록을 세웠다. 일요신문 DB
#장종훈·심정수·장성호도 역사를 남겼다
이승엽이 일본으로 진출한 이후, 다른 타자들도 빛을 보기 시작했다. 한화 장종훈은 2002년 9월 14일 잠실 LG전에서 34세 5개월 14일의 나이로 역대 최초이자 최연소 3000루타를 기록했다. 통산 1000타점-1000득점 역시 34세 6개월 4일(2002년 10월 14일 문학 SK전)에 달성해 최연소 기록으로 남았다. 최연소 1000타점의 주인공은 심정수였다. 2007년 8월 17일 잠실 LG전에서 32세 3개월 12일로 100번째 타점을 올렸다.
장성호도 최연소 기록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최연소 900득점(31세 6개월 14일)과 1000득점(33세 8개월 14일) 기록을 작성했다. KIA 시절이던 2007년 20대 선수로는 유일하게 최연소 1500안타(29세 7개월) 기록을 세웠고, 한화 소속이던 2012년 34세 11개월의 나이로 최연소 2000안타의 대기록을 남겼다. 이 외에 최연소 300 2루타(29세 11개월 7일), 350 2루타(33세 10개월 27일), 1500경기 출장(30세 9개월 4일) 기록도 목록에 추가했다.
해태 홍현우는 1998년 9월 9일 광주 OB전에서 25세 11개월 12일로 역대 최연소 1000경기 출장을 이뤘고, 한화 김민재는 2008년 9월 10일 잠실 LG전에서 35세 8개월 7일의 나이로 통산 2000번째 경기에 출장해 역대 최연소 기록을 다시 썼다. KIA 신종길은 한화 시절이던 2004년 9월 21일 대전 두산전에서 20세 8개월 21일의 나이로 최연소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는 기쁨을 누렸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세계 최연소 300홈런 이승엽 ‘만약 한국에서 계속 뛰었다면?’ ‘이승엽’이라는 이름 석 자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서 ‘홈런’의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경북고를 졸업한 까까머리 고졸 신인이 1995년 삼성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발을 내딛는 순간, 한국 야구의 장타력은 진일보했다. 역대 가장 빠른 속도로 홈런을 생산해내는 청년 거포의 등장에 홈런 관련 최연소 기록의 주인은 하나씩 바뀌어 나갔다. 100홈런부터 시작됐다. 이승엽은 1999년 5월 5일 대구 현대전에서 22세 8개월 17일의 나이로 프로 통산 100번째 홈런을 쳤다. 역대 20번째 기록이자 최연소 기록. 빙그레 장종훈이 1991년 9월 14일 전주 쌍방울 전에서 세웠던 종전 최연소 기록(23세 5개월 4일)을 앞당겼다. 최연소 150홈런 기록도 곧 이승엽의 차지가 됐다. 2000년 4월 19일 인천 SK전에서 23세 8개월 1일의 나이로 고지를 밟았다. 종전 기록 또한 장종훈이 갖고 있었다. 1993년 6월 19일 광주 해태전에서 25세 2개월의 나이로 150호 홈런을 쳤다. 이승엽이 또 그 기록을 10개월 차로 경신했다. 삼성 이승엽이 지난 3일 포항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경기에서 개인통산 400홈런을 달성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의 최연소 200홈런 기록은 24세 10개월 3일이 되던 2001년 6월 21일 대구 한화전에서 나왔다. 이번엔 역대 최소경기(816경기) 기록과 함께였다. 20대에 200홈런을 친 타자는 역대 단 두 명뿐. 나머지 한 명은 현대 심정수(28세 4개월 10일)였다. 심정수는 2000년대 초반 홈런으로 이승엽과 대적했던 유일한 선수다. 이승엽은 심정수가 200홈런을 달성한 시점보다 4년 가까이 어린 나이에 기록을 세웠다. 250홈런 기록도 상황이 비슷했다. 20대에 통산 250호 홈런을 친 타자는 딱 이승엽과 심정수 둘뿐이었다. 이승엽은 2002년 7월 23일 대구 현대전에서 25세 11개월 5일의 나이로 최연소 기록을 달성했다. 심정수가 2004년 4월 30일 문학 SK전에서 28세 11개월 25일로 그 뒤를 이었다. 둘은 역시 유일한 20대였다. 2003년은 이승엽의 홈런 히스토리에서 가장 화려하고 빛나던 시절이다. ‘장종훈의 후계자’나 ‘심정수의 라이벌’이 아닌, 그냥 ‘홈런왕 이승엽’으로 독보적인 자리에 올라섰다. 한 시즌에 56개의 홈런을 때려내고, 그 홈런 공을 잡기 위해 관중석에 잠자리채가 등장했던 바로 그 시즌이었다. 이승엽은 그해 6월 22일 대구 SK전에서 팀이 2-3으로 뒤진 8회 네 번째 타석에서 SK 투수 김원형의 초구 직구를 받아쳤다. 라인드라이브로 총알같이 뻗어간 타구가 대구구장 오른쪽 담장을 넘어갔다. 이승엽의 통산 300번째 홈런. 한·미·일 프로야구를 통틀어 최연소 300홈런 기록이었다. 당시 이승엽의 나이는 26세 10개월 4일. 일본의 오 사다하루가 보유했던 27세 3개월 11일의 종전 최연소 기록을 36년 만에 앞당겼다. 메이저리그 최연소 홈런 기록은 텍사스 알렉스 로드리게스(27세 8개월 6일)가 갖고 있다. 이승엽 이전까지 한국에서 300홈런을 친 선수는 장종훈(32세 5개월 26일)이 유일했다. 이승엽 다음 순서였던 심정수는 32세 17일 되던 날 300번째 아치를 그렸다. 이승엽이 무려 5년 2개월을 앞섰다. 이승엽이 일본에 가지 않고 한국에서 계속 뛰었다면 얼마나 더 많은 홈런 기록이 바뀌었을지 예상하기 어렵다. 2012년 한국에 복귀해 다시 홈런수를 늘려가기 시작한 이승엽은 2013년 6월 14일 마산 NC전에서 삼성 양준혁(40세 1개월 18일)에 이어 역대 두 번째이자 최연소(36세 9개월 27일)로 통산 350홈런 고지를 밟았다. 이어 2015년 6월 3일 포항 롯데전에서 전무후무한 통산 400홈런 고지에 올랐다. 그날은 이승엽이 태어난지 38년 9개월 16일째 되는 날이었다. 일본에서의 8년이 빠지면서 한·미·일 최연소 기록과는 멀어진 지 오래였지만, 베테랑이 된 이승엽의 400번째 홈런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고 아름다웠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