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 “한 배 탈 가능성 낮아…연대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그러나 여전히 여권 일각에선 비박계 차기 주자들이 주도하는 정계개편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계파 갈등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긴 했지만 친박과는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비박 내부 기류가 그 배경이다. 특히 지난 총선 과정에서 전국구로 발돋움한 유승민 의원의 행보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유승민 의원과 안철수 대표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 5월 19일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렸다. 이날 언론의 눈길을 끌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유승민 무소속 의원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자리를 찾아가 인사를 하는 장면이었다. 유 의원은 안 대표와 잠시 대화를 나눈 데 이어 천정배 공동대표, 박지원 원내대표, 장병완 의원 등 국민의당 의원들과 악수를 했다. 유 의원이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과는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던 것과 대조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이를 지켜본 국민의당의 한 의원은 “대구에 머물던 유 의원이 국회로 들어와 안철수 등 국민의당 주요 인사들과 화기애애한 그림을 연출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불을 뿜었다. 유 의원 정도 되는 정치인이 아무런 의미 없이 이러한 행동을 했을 리는 없지 않겠느냐. 친박을 제외하고, 안철수를 포함한 새로운 정치세력과 언제든 함께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의 이러한 스탠스에 국민의당은 반색하는 분위기다. 새누리당을 탈당한 유 의원 합류를 총선 전부터 내심 원했던 까닭에서다. ‘호남당’이라는 뼈아픈 한계를 체감하고 있는 국민의당으로선 대구경북(TK) 출신의 유 의원이 가세할 경우 전국정당으로 외연을 확대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또 ‘안철수당’이라는 약점 역시 차기 주자 유 의원 가세로 상쇄할 수도 있다.
이러한 기류는 당 지도부 발언에 그대로 묻어난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5월 21일 ‘유 의원과 함께할 수 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아직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답했다. 안철수 공동대표도 18일 광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새누리당에서 합리적 보수 성향 인사가 온다면 받겠다”고 말했는데, 사실상 유 의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안 대표와 유 의원 측은 총선 전부터 여러 번 물밑 접촉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향후 여의도 정계개편의 핵심 변수라고 할 수 있는 유 의원이 일찌감치 안 대표와의 연대를 모색했다는 얘기다. 앞서의 국민의당 의원은 “유 의원이 장고 끝에 새누리당을 탈당했던 것은 보다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여기엔 신당창당, 국민의당 입당 등이 포함돼 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는 유 의원과 안 대표 간에 라인이 개통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안 대표 측 핵심 관계자와 유 의원과 가까운 한 새누리당 의원은 총선 전부터 여러 번 만났다고 한다. 특히 총선이 끝난 후엔 그 횟수가 부쩍 늘어났다는 전언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알려지고 있지 않지만 안 대표와 유 의원의 정치적 입지와 현 시기 등을 감안하면 정계개편과 관련된 논의가 이뤄졌을 것이란 추측이다. 일각에선 ‘유승민 당권, 안철수 대권’과 같은 밀약설까지 나돌고 있다. 앞서의 국민의당 의원 설명이다.
“유 의원과 안 대표가 각각 대리인을 내세워 여러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결국 본심은 다른 데 있지 않겠느냐. 누가 정계개편 주도권을 잡을지를 놓고 기싸움을 하고 있을 것이다. 총선 전엔 유 의원 주가가 더 높았지만 끝난 후에는 안 대표가 더 올라갔다. 총선에서 선전한 국민의당이 전처럼 유 의원에게 목을 맬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어찌됐건 양측은 중도·개혁 성향의 보수 세력과 호남에 기반을 둔 정치 집단이 합칠 경우 엄청난 시너지가 날 것이란 데엔 이견이 없는 상태다.”
정치권에선 유 의원이 ‘키’를 쥐고 있다고 본다. 정치 행보를 두고 주판알을 두드리고 있는 유 의원이 과연 어떤 결론을 내릴지가 향후 ‘유승민-안철수 연대’의 관건이라는 얘기다. 아직까진 국민의당 쪽에서 유 의원을 더욱 원하고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유 의원은 새누리당 입당, 신당 창당, 국민의당 입당 등 다양한 진로를 열어두고 장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유 의원이 안 대표와 함께할지에 대해 정치권에선 일단 부정적 반응이 주를 이룬다. 유 의원 입장에선 득이 될 게 없다는 계산에서다. 이재광 정치평론가는 “지금 국민의당은 안철수 대표 측과 호남 의원들 간 파워게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TK 출신인 유 의원이 혈혈단신으로 들어가 얻을 것은 없다. 오히려 양측으로부터 협공을 당할 수 있다. 차라리 새누리당으로 들어가 친박과 싸우는 게 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의원 측 기류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다. 이는 유 의원 스스로가 새누리당 입당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의 유 의원계 의원은 “유 의원은 새누리당에 복당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탈당하긴 했지만 새누리당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국민의당과의 연대설은 적어도 지금 시점에선 소설 같은 얘기”라면서 “정치는 생물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유 의원이 ‘큰 꿈’을 꾸고자 한다면 유력 후보(안철수)가 버티고 있는 제3당(국민의당)보다는 별다른 후보군이 형성돼 있지 않은 집권 여당에서 도전하는 게 훨씬 낫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가에서 유 의원과 안 대표 간 연대설이 수그러들지 않고, 또 양측이 접촉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에 대해 정치권은 또 다른 노림수가 담겨 있을 것으로 관측한다. 우선 유 의원은 대선 후보로 발돋움하긴 했지만 아직은 인지도나 조직 등에서 다른 잠룡들에 비해 한 수 아래라는 평가다. 그러나 국민의당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는다면 본인 스스로의 ‘급’을 올릴 수 있다. 향후 정치 행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안 대표나 국민의당도 마찬가지다. 유 의원 영입을 포함한 정계개편설이 나돌 때마다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국민의당 몸값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덤’으로 따라온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유 의원과 안 대표가 한 배를 탈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비현실적인 측면이 많다. 다만, 둘이 이러한 가능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