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표나 날리러 오진 않았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은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인 김병현(30)이었다. 취재진은 물론 팬들까지 기자회견장을 찾아와 김병현에게 사인을 받으려고 줄지어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병현은 지난해 피츠버그에서 방출된 뒤 1년여간 무적 신세로 보낸 생활과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설명해나갔다. 출정식이 끝난 후 김병현과 개별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몰려드는 팬들로 인해 정상적인 인터뷰가 불가능했다. 결국 김병현에게 휴대폰 번호를 받아 이후에 따로 전화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김병현은 출정식에선 몸 상태에 대해 자신감을 표명했지만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며 운을 떼었다. 오랜만에 이뤄진 인터뷰라 그런지 김병현은 시종 유쾌한 목소리로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 나섰다.
김병현에게 대표팀 참가를 결정하기 전 갈등이 없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누구보다 자신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고 오랫동안 마운드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대표팀의 에이스 역할을 제대로 할 자신감이 있는지가 궁금했다. 김병현은 그 부분에 대해 지금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출정식 때 기자분들 질문을 받고 말씀드렸지만 아직 내 몸 상태가 공을 제대로 던질 수 있는지 없는지를 잘 모르겠다. 두 달 전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면서 몸을 만들고 있는데 너무나 오랫동안 피칭을 해보지 않아 지금 ‘내 몸이 어떻다’라고 말하기가 곤란하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갈등 중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코칭스태프의 걱정이 커지겠지만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서 일단 미국에 들어가 몸을 만든 후 공을 던져본 후에 최종적으로 대표팀에 참가할지를 결정하고 싶다.”
김병현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대표팀 코칭스태프에선 김병현이 WBC 대표팀과 함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병현이 출정식을 앞두고 코치들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밝혔지만 “우린 네가 함께 가는 걸로 알고 있으니까 다른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
김병현은 “나도 대표팀에서 뛰고 싶다. 그러나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하면서 대표팀에 욕심을 낸다면 민폐 아니겠냐”면서 “민폐보단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밝혔다.
피츠버그에서 방출된 뒤 두문불출했던 김병현을 놓고 한 언론에선 김병현의 은퇴를 거론하며 그가 더 이상 야구공을 잡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김병현은 “야구를 포기하겠다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서 “말이 와전된 것으로 보이는데 난 은퇴를 마음에 두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소속팀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구를 할 수 없었을 뿐이다. 처음에는 뭘 해야 할까? 뭐부터 시작해야 할까? 재미있는 건 뭐 없을까? 이런 고민들이 많았다. 중간에 끼어들어갈 수 있는 팀도 없었고 시즌 끝날 때까지 무조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 현실을 받아들이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했다. 아주 오랜만에 여름을 서울에서 보냈다. 내 존재가 언론에 잘 드러나질 않아서 그런지 어딜 가도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한국도 참 살기 좋은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미국 진출 후 처음으로 한국이 편하다는 걸 실감했다.”
▲ 1년 만의 외출 무적 상태였던 김병현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대표팀에 합류할지 갈등이 많지만 팀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사진=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지금도 일본이나 다른 데서 만나자는 연락을 해온다. 그러나 일단 공을 던져봐야 하지 않겠나. 내 몸 상태를 제대로 체크도 하지 않고 아무 팀이나 들어갈 수는 없다. 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래 쉬었기 때문에 공수표를 날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 김병현에게 야구인생의 ‘화두’처럼 작용했던 선발 투수의 자리에 대해 여전히 애착을 갖고 있는지를 물었다.
“지금은 선발이나 마무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 공을 제대로 던지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내 보직을 뭘로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다. 지금 상황에서 선발 운운한다는 게 우습지 않겠나.”
김병현은 출정식을 통해 대표팀 선수들과 처음으로 대면했다. 이전 WBC 1기 멤버들과는 친분이 있지만 이번에 WBC 대표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후배들과는 첫 만남이나 다름없다. 소감을 물었더니 “소감이야 그냥 덤덤하죠”라며 ‘김병현식’ 대답이 들려온다.
“김현수, 김광현, 류현진 선수 등 말로만 듣던 쟁쟁한 후배들을 오늘 처음 봤다. 그런데 젊은 선수들의 몸이 장난이 아니더라. 다들 잘 먹고 잘 살아서 그런지 체형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농담삼아 ‘고기 좀 그만 먹으라’고 말해줬다(웃음).”
김병현의 팬들은 지금도 김병현이 마운드에 서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김병현이 대표팀 유니폼 입은 모습만 보고도 감격에 겨워하며 김병현의 복귀를 강하게 염원하는 글을 올리는 팬들이 엄청나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이런 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인사를 건넸다.
“난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팬들에게 고맙다는 표현도 잘 못하고 제대로 된 만남도 갖지 못하는데 어떻게 팬들에게 인사를 하겠나. 단, 그분들이 원하는 건 내가 마운드에서 공 던지는 모습이다. 그래서 따로 인사는 못하지만 야구선수 김병현으로 다시 서겠다는 약속을 하고 싶다. 많이 모자라고 함량미달인 나를 끊임없이 응원하고 사랑을 보내준 그분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김병현은 일단 LA로 출국해서 훈련을 하다가 2월 중순에 하와이 전지훈련에 합류할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