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한류 팬덤에 기대 재기 발판 삼아…현지선 “이미지 세탁 무대 삼지 말라” 반발도

2025년 3월 해당 의혹이 불거진 뒤 김수현은 꾸준히 결백을 호소해 왔으나 악화된 국내 여론을 되돌리지 못했다. 다만 이 의혹을 처음 제기했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의 김세의 대표가 최근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 혐의로 구속 송치되면서 김수현을 둘러싼 사생활 의혹의 진위에도 다시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의혹의 주요 근거로 제시됐던 자료의 신빙성이 흔들리며 그를 향한 대중의 반응도 조금씩 달라지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복귀의 첫 무대가 국내가 아닌 필리핀이라는 점은 눈길을 끈다. 필리핀은 2000년대부터 한국 드라마와 K-팝 소비가 활발했던 대표적인 한류 시장 가운데 하나다. 현지 브랜드와 방송사는 한국 연예인의 인지도와 팬덤을 상업적으로 활용해 왔고, 이에 따라 한국에서 활동이 어려워진 연예인에게도 일정한 수요가 남아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김수현 역시 동남아권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진 톱스타인 만큼 필리핀 브랜드 광고가 활동 재개의 첫 발판으로 선택됐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 배우 지수도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지수는 2021년 학교폭력 논란 이후 자신이 주연을 맡았던 KBS2 드라마 '달이 뜨는 강'에서 하차하고 국내 활동도 중단했다. 당시 소속사였던 키이스트와의 전속계약을 해지한 뒤 지수는 필리핀으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필리핀 지상파 방송사인 GMA의 드라마에 출연한 데 이어 2024년 8월에는 GMA 산하 엔터테이너 매니지먼트 조직인 스파클(Sparkle)과 계약하며 현지 활동을 본격화했다. 지수의 계약 소식은 GMA가 한국 남성 배우를 자사 매니지먼트에 영입한 첫 사례로 현지에서도 주목받았다.

그룹 빅뱅 출신의 승리는 또 다른 형태의 유사 사례다. 2018~2019년 사회 전반을 떠들썩하게 했던 '버닝썬 게이트'의 중심 인물인 그는 성매매 알선 등 9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 6개월 형이 확정됐고, 2023년 2월 만기 출소했다. 이런 논란으로 2019년 3월 국내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던 승리의 출소 후 첫 행보 역시 태국 등 동남아에서 포착됐다. 현지 사업가와 유력 인사들을 만나며 전직 K-팝 스타로서의 인지도와 인맥을 활용하려는 듯한 그의 모습은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퍼지며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특히 2024년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현지 행사에 참여해 "언젠가는 GD를 여기 데려오겠다"고 발언한 영상이 확산돼 또 다른 부정적인 화제를 낳았다. 더욱이 해당 행사 주최 측과 캄보디아 범죄단지 의혹이 제기된 기업의 연관성이 거론되면서 승리의 동남아 행보에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K-팝 팬덤으로부터도 큰 비난이 쏟아졌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승리 개인을 향한 비판은 동남아 시장이 논란 한국 연예인의 우회 활동 무대로 소비되고 있다는 데에 대한 현지 팬덤의 반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 활동이 막힌 K-스타들이 재기의 발판으로 선택한 지역이 모두 동남아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은 한국 콘텐츠와 K-팝이 다른 국가에 비해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자리 잡은 시장이다. 기존에 형성된 소비층이 탄탄한 데다, 과거에는 국내에 비해 한국 연예계 논란이 늦게 알려지거나 전달되더라도 국내 대중만큼 민감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정보의 불균형을 이유로 논란 연예인들이 한국에서만큼은 아니더라도 광고나 팬미팅, 행사, 현지 방송 출연 등으로 수익을 낼 여지가 있었다.

김수현의 필리핀 브랜드 광고 촬영을 두고 해외 팬들 사이에서 엇갈린 반응이 나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먼저 김수현 관련 의혹을 제기해 온 가로세로연구소 측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판단한 경찰 수사 결과를 근거로 복귀를 응원하는 쪽이 있다. 그런 반면, 사생활 논란 전반에 대한 불편함과 브랜드 소비 거부를 여전히 언급하는 반응도 SNS와 한국 관련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는 동남아 시장이 더 이상 국내 연예계 논란의 영향권 밖에 놓인 완전한 별도의 시장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익명을 원한 한 엔터사 홍보 관계자는 "예전에는 동남아 지역 활동이 국내 복귀 전 반응을 살피는 시험대처럼 쓰이기도 했지만, 요즘은 해외 팬들도 실시간으로 논란 정보들을 접하면서 현지 여론이 국내와 비슷한 방향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단순히 해외 팬덤이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재기 발판으로 삼는 일이 반복되는 것을 두고 '왜 우리 시장을 한국 논란 연예인의 이미지 세탁소로 쓰느냐'는 반발도 나오는 만큼 업계도 달라진 현지 분위기를 좀 더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짚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