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끝낸 대통령’ 서사 자찬…정작 이란 정권교체 못 이루고, 핵 프로그램도 여전히 협상 테이블에
[일요신문] “세계의 선박들이여, 시동을 걸어라. 석유가 흐르게 하라!”
지난 6월 14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80)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특유의 과장된 문구가 하나 올라왔다. 미국과 이란이 15주간 이어진 전쟁을 끝내기 위한 기본 합의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한동안 세계를 불안에 떨게 했던 전쟁이 마침내 끝나고, 봉쇄됐던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리고, 국제 유가는 안정을 찾게 될 것이라는 신호였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이 합의가 자신이 만들어낸 ‘진정한 평화’라고 묘사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다수의 해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이 합의는 ‘승리’라기보다는 오히려 ‘탈출’에 가까워 보였다. 과연 트럼프는 이번 전쟁을 통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종전을 통해 ‘진정한 평화’를 이뤘다고 자찬했지만 다수의 해외 언론들은 ‘승리’라기보다는 오히려 ‘탈출’에 가깝다고 분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108일간 이어졌던 이번 전쟁은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으로 시작됐다. 트럼프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고, 탄도미사일 능력을 약화시키며, 중동 내 이란의 대리세력 네트워크를 끊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초반 군사작전만 놓고 본다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전력은 분명 압도적이었다. 이란의 방공망과 해군 전력, 미사일 시설 일부가 타격을 입었고, 알리 하메네이 등 지도부 인사들도 다수 제거됐다. 하지만 전쟁은 단순히 군사 목표물을 얼마나 많이 파괴했느냐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국제정치에서 전쟁의 승패는 결국 마지막에 원하는 정치적 결과를 얼마나 얻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트럼프의 계산은 복잡해졌고, 어긋나기 시작했다. 막대한 화력을 쏟아부었지만 이란은 무너지지 않았으며, 정권교체도 일어나지 않았다. 핵 프로그램 역시 완전히 폐기되지 않았고, 탄도미사일 문제도 최종 합의 의제에서 밀려났다.
그리고 급기야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최대 변수가 등장했다. 오만과 이란 사이에 위치한 폭 40km 남짓의 좁은 바닷길인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경제의 대동맥으로 불리는 주요 거점이다. 전 세계 석유와 액화천연가스 물동량의 약 20%가 이곳을 통과한다. 중동 산유국들이 생산한 원유가 아시아와 유럽으로 향하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누구보다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던 이란이 내세운 카드는 다름 아닌 ‘호르무즈 해협 봉쇄’였다. ‘로이터’는 이를 두고 “이란은 하룻밤 사이 세계 석유와 LNG 공급량의 5분의 1을 위협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실제 국제유가는 즉각 반응했다. 전쟁 전 배럴당 70달러(약 10만 원) 수준이던 브렌트유 가격은 3월 말 118달러(약 17만 원)까지 치솟았다. 세계 각국은 전략비축유 방출을 검토했고 에너지 기업들은 공급망 재편에 나섰다.
문제는 그 충격이 미국 국내 정치로 직결됐다는 점이다. 실제 대선 때마다 미국의 중산층 유권자들은 외교정책보다 주유소 기름값에 더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특히 중간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났다.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자 미국 경제는 예상보다 큰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2%에 달했고, 이는 전쟁 이전 2%대였던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상승폭이었다. 이와 관련, ‘로이터’는 미국인의 약 70%가 물가에 대한 트럼프의 대응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에서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결국 경제위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한발 물러설 것이라고 점쳤다. 실제 브렌트유는 종전 합의 소식이 나온 후 현재 70달러 대로 다시 내려온 상태다.
트럼프가 두 번째로 얻은 것은 ‘전쟁을 끝낸 대통령’이라는 서사다. 트럼프는 언제나 자신을 ‘거래의 달인’으로 묘사해 왔다. 먼저 상대에게 강하게 타격을 입혀 협상 테이블로 나오게 한 뒤, 자신이 주도하는 쪽으로 협상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이번에도 트럼프는 유사한 판을 깔아 놓고 이렇게 자찬했다. “중동 지역의 지도자들이 처음으로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게 도와줄 대통령을 찾았다.”
하지만 외신들의 평가는 달랐다. ‘로이터’는 이번 합의가 트럼프에게 ‘인기 없는 전쟁에서 빠져나갈 기회’를 주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공화당 내부의 비판과 동맹국의 불신, 합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스트레이츠타임스’는 “평화는 아직 아라비아 사막의 신기루처럼 흔들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핵 문제는 더 복잡하다. 트럼프는 전쟁의 명분으로 이란 핵 프로그램 제거를 내세웠다. 미국 측은 이번 합의가 결국 이란의 핵 프로그램 해체와 고농축 우라늄 제거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란의 입장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국영방송에서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자는 이란”이라고 주장했다.
고농축 우라늄에 대해서는 “테헤란이 선호하는 유일한 해법은 물질을 희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파괴하거나 해외로 반출하는 게 아니라, 농도를 낮춰 국내에 보관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은 “없애겠다”고 말하고 있는 반면, 이란은 “낮추겠다”고 말하고 있어 사실상 평화 합의의 첫 문장부터 양측의 해석이 다른 셈이다.
트럼프 얼굴과 호르무즈 해협이 그려진 대형 반미 광고판이 이란 테헤란의 건물에 걸려 있다. 사진=EPA/연합뉴스아락치 외무장관은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강력한 무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우리의 칼은 언제나 호르무즈 해협 위에 매달려 있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로이터’의 석유시장 분석가는 이를 가리켜 ‘트럼프 풋’이라고 표현했다.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중앙은행이나 정부가 위기 때 시장을 받쳐줄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원유시장도 트럼프가 미국 휘발유 가격 폭등을 방치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이 합의를 가장 불편하게 바라보는 동맹국이다. 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동작전으로 시작됐지만, 합의는 사실상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이뤄졌다. 이에 대해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이스라엘 정치권과 안보 엘리트, 언론 사이에서 “미국이 단독으로 이란과 합의해 이스라엘을 옆으로 밀어냈다”는 불안과 불만이 가득하다고 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전쟁을 가리켜 ‘이란 핵 위협을 제거하고 헤즈볼라를 약화시킬 기회’라고 홍보했지만, 평화 합의문에는 이란 탄도미사일 문제도, 대리세력 문제도 명확히 다뤄지지 않았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안보 목표가 미뤄지거나 빠진 셈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균열은 레바논에서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베이루트 남부 교외를 공습하면서 헤즈볼라 지휘부를 겨냥한 작전이라고 설명했지만,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이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오늘 아침 베이루트 공격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특히 우리가 이란과의 평화 합의에 매우 가까워진 특별한 날에는 더욱 그렇다”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어 “레바논을 포함한 역내 평화를 가져올 합의에 매우 가까워졌으며, 모든 당사자는 물러서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요컨대 트럼프에게 레바논 전선은 합의를 저해할 위험 요소였고, 네타냐후에게는 이스라엘 안보의 핵심이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런 갈등을 가리켜 ‘애틀랜틱카운실’은 “틈에서 협곡으로 벌어진 미-이스라엘의 이해관계”라고 묘사했다.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과 유가, 중간선거, 대중국 전략까지 계산하고 있는 반면, 이스라엘은 이란 핵과 미사일, 헤즈볼라 위협을 계산하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은 전쟁을 멈춰야 할 이유가 커졌고, 이스라엘은 계속 압박해야 할 이유가 남아 있는 셈이다.
전쟁을 통해 각국이 치러야 했던 비용도 트럼프에게는 오점으로 남았다. ‘가디언’은 이번 전쟁의 비용을 집계하면서 “지구상에서 이 전쟁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쟁의 비용에는 군사비만이 아니라 식료품 가격, 주유비, 보험료, 투자 지연, 불확실성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트럼프에게 가장 난처한 질문은 이것이다. 과연 이 전쟁으로 그는 무엇을 얻었는가. 이란의 정권교체는 이루지 못했고, 이란 핵 프로그램은 아직 협상 테이블에 남아 있다. 미국 내 물가는 올랐으며, 공화당 내부의 이란 강경파들은 “트럼프가 이란에 항복했다”며 비판하기 시작했다. 친트럼프 성향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이란 측 설명과 백악관 설명이 다르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현재 트럼프는 ‘모든 전쟁을 멈추고 60일 내 이란과 비핵화 협상을 벌인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14개 조항의 종전 양해각서(MOU)를 통해 시간을 벌어놓은 상태다. 이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소득이 아닐 수 없다. 반면, 60일이라는 시간은 폭탄의 뇌관처럼 작동할 수도 있다. 이 기간 동안 핵 문제를 풀지 못하면 전쟁은 다시 불붙을 수 있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이나 이란을 다시 공격할 경우에도 합의는 흔들릴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 호르무즈 해협은 다시 닫힐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어쩌면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란 전쟁 뒤에 숨겨진 중국이라는 변수
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표면적으로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호르무즈 해협, 그리고 중동 안보 질서를 둘러싼 충돌이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을 분석한 여러 전문가들은 그 배경에 중국이라는 더 큰 변수가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미국이 이란 문제를 바라볼 때 이미 중국을 함께 고려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이번 전쟁을 가리켜 ‘중동판 미중 패권 경쟁’의 일부로 해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5월 14일 중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의 환영을 받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실제 워싱턴 전략가들이 이란을 바라보는 시선은 10년 전과 크게 달라졌다. 과거 미국에게 이란은 중동의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 정도였다. 핵 개발을 일삼고, 반미 구호를 외치며, 헤즈볼라와 후티 반군 같은 무장세력을 지원하는 문제 국가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이제는 이란을 중국이라는 더 큰 경쟁국과 연결된 전략적 거점으로 여기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다.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우회 경로를 통해 꾸준히 이란산 원유를 수입해 왔다. 국제에너지 업계에서는 이란 원유 수출량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중국으로 향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역시 이란을 포기할 수 없다. 중국 경제는 세계 최대 수준의 에너지 수입국이라는 구조적 약점을 안고 있다. 중국이 사용하는 석유의 상당 부분은 중동에서 온다. 그리고 그 석유 대부분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따라서 중국 입장에서 이란은 단순한 원유 공급국이 아니라 자국 에너지 안보의 핵심 파트너다.
워싱턴이 특히 우려하는 점은 이란과 중국의 관계가 단순한 석유 거래를 넘어 전략적 동맹 수준으로 발전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실제로 양국은 2021년 25년 장기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중국은 이란의 에너지와 인프라, 통신망, 교통시설에 투자하고, 이란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약속해주는 구조다. 미국 전략가들은 이를 가리켜 ‘중동판 일대일로’의 핵심축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여기에 지정학적 요소까지 더해진다면 문제가 더 커진다. 만약 중국과 전략적으로 밀착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강화한다면 미국은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 실제 이번 전쟁에서 이란이 보여준 가장 강력한 무기는 미사일도, 드론도 아니었다. 바로 호르무즈 해협이었다.
이와 관련, 미국 싱크탱크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중 병목’ 시나리오를 연구해 왔다. 하나는 남중국해와 대만해협, 다른 하나는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다. 세계 무역과 에너지 흐름이 집중된 이 지역들이 동시에 불안정해질 경우 미국 주도의 글로벌 공급망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특히 중국은 최근 수년 동안 이란뿐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해 왔다. 2023년에는 중국이 나서서 사우디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를 중재하면서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이는 오랫동안 미국이 독점해 온 중동 외교 무대에 중국이 본격적으로 등장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워싱턴이 우려하는 점도 바로 이런 변화다. 과거 중동 국가들은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균형 전략을 취했다. 하지만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중국의 경제력이 더욱 커질 경우 이 균형은 중국 쪽으로 기울 수 있다. 특히 이란처럼 미국과 적대적인 국가가 중국의 지원을 받게 되면 미국의 중동 전략은 훨씬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 일부 미국 전략가들은 이번 전쟁이 단순히 이란 핵 프로그램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을 향한 경고의 성격도 갖고 있었다고 본다. 미국이 여전히 중동의 질서를 좌우할 수 있으며, 호르무즈 해협 같은 전략적 요충지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번 전쟁은 미국의 고민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군사적으로는 이란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지만, 이란 정권은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중국 역시 이란과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카드를 통해 여전히 세계 경제를 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입증했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의 진짜 승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미국과 이란의 휴전 협상이 마무리되더라도 그 배후에 있는 미국과 중국의 중동 지역에서의 경쟁은 앞으로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