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삼성물산 매수가격 더 높게 책정하라”
그런데 ‘이재용 체제’가 막 시작된 삼성이 최근 서울고등법원에서 ‘의문의 1패’를 당했다. 일성신약 등 구 삼성물산 주주들이 낸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반대에 따른 주식매수청구가격 소송에서다. 작은 패배로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결코 의미가 작지 않다.
삼성물산이 구 삼성물산 주주들이 낸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반대에 따른 주식매수청구가격 소송에서 패하면서 이재용 부회장이 타격을 입게 됐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서울고법은 최근 지난 2월 말 합병 직전 삼성물산 주식을 2.11% 보유한 일성신약 오너 일가가 삼성물산을 상대로 제기한 ‘주식매수청구가격 결정’ 재판에서 1심 결정을 뒤집고 매수 가격을 회사 측이 산출한 주당 5만 7234원에서 9368원 높은 6만 6602원으로 정하라고 결정했다.
자본시장법 165조는 상장회사 합병은 이사회 의결(5월 26일) 직전 2개월 치 주식 가격의 평균으로 주식매수청구가격을 산출하도록 하고 있다. 단, 법은 이렇게 산정한 가격에 주주가 반대한다면 법원에 가격 결정을 청구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분쟁이 있을 경우 법원 판결에 따르는 일반적인 사건과 얼핏 비슷하다. 금액 차이도 고작(?) 310억 원이다. 그런데 서울고법의 판결 이유가 의미심장하다.
고법은 “이사회 합병 의결 당시 주가는 삼성 오너 일가의 이익을 위해 조정됐을 수 있다는 의심이 들기 때문에 합병설 자체가 나오기 전인 2014년 12월을 기준으로 주식 가격을 산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재판부는 “합병계획 발표를 앞둔 삼성물산이 주택 공급에 소극적으로 나서거나 해외 사업 수주 사실도 뒤늦게 공개했다. 이런 실적 부진이 누군가의 의도에 따른 것일 수 있다는 의심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 측은 “사실이 아닌 의심만으로 판단했다”며 즉시 항고했다.
2심 재판부는 기업이 합병 등의 주요한 경영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총수 등 특정인을 위해 주주이익에 반하도록 상장사 경영정보를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에서도 같은 판단이 내려진다면 삼성 경영진은 일성신약에 310억 원을 더 주는 것 외에 기존 주주들로부터 배임으로 소송을 당할 수도 있다. 아울러 도덕성에 타격을 입고, 이재용 부회장의 후계구도에서도 먹구름이 낄 수 있다.
이번 소송을 낸 일성신약의 윤병강 회장은 1950년대 알게 된 고 이병철 삼성 선대 회장과 친분을 유지하면서 삼성물산 주식도 오랜 기간 보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이 삼성의 모태기업이니만큼 주주들 가운데는 오랜 기간 삼성과 인연을 맺어온 곳이 많다. 재계 관계자는 “선대 회장 때의 원로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다. 그룹 역사를 잘 아는 이들로부터 평판을 잃을 경우 유리할 게 없다”고 설명했다.
#하필이면 법조계 전관 논란 한창일 때
이번 소송에서 삼성 측 대리인을 맡은 곳은 김앤장이다. 국내 최고 법무법인이란 점에서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김앤장은 최근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에서 옥시 측 변호를 맡고 있다.
올 초부터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고 대기업 사외이사가 된 전직 검찰 고위 간부들이 공개되면서 검찰은 체면을 구겼다. 여기에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로 최유정 전 부장판사와 홍만표 전 검사장 사건으로 인해 법조계 전관들의 활동도 위축된 상황이다. 김앤장은 ‘전관’들의 단골 행선지다.
이번 서울고법 재판의 담당법관은 민사35부 윤종구 부장판사다. 그는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대상인 법관 가운데 가장 재산이 적은 2억 원대의 재산을 신고한 인물이다.
최종 승부처는 결국 대법원이다. 현직 대법관들이 신고한 평균재산은 약 18억 6600만 원으로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인 고위 법관 평균재산 20억 4043만 원보다 약간 적다. 2000년 이후 퇴임한 대법관은 모두 35명. 3분의 2가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9명은 로스쿨 또는 법과대학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또 지난 4월 대한변호사협회는 신영철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신고서를 반려했다. 변협은 “신 전 대법관이 개업하면 다른 전 대법관들이 개업을 자제해 생긴 반사적 이익까지 독점적으로 누리게 돼 매우 부당하다”며 “사익추구 개업을 하지 않도록 돼 가는 전통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말했다.
재판부 배당은 보통 법원장의 권한이다. 현재 양승태 대법원장의 재산은 39억 원이다. 그는 대법관 재직 시절이던 2009년 삼성특검이 기소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사건에서는 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주주 배정 방식이든 제3자 배정 방식이든 발행 조건에서 주주에게 불이익이나 손해가 발생했다고 해도 회사에 대한 임무 위배가 없는 한 이사를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일성신약 측은 제일모직 1주당 삼성물산 0.35주를 합친 합병 비율도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합병 비율도 이사회 결의 시점을 기준으로 정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삼성물산 관계자는 “주식 매수 청구 가격을 올리라고 결정했다는 것이 합병 비율이 잘못됐다는 뜻은 절대로 아니다”라며 “두 건은 별개 문제로, 법에 따라 합병 비율을 산정한 만큼 법원이 합리적 판단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대법원 판례는 “법령이 정한 요건·절차 등에 기해 합병 가액을 산정했다면, 그것이 허위 자료라는 등의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무효가 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합병 비율이 현저히 부당하다는 점을 더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않으면 합병 무효 판결이 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최열희 언론인
통합 1년, 삼성물산 성적 따져보니 지난해 5월 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발표 후 1년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까. 숫자로만 보면 경영 실적이나 기업 가치 모두 크게 나아진 부분은 없다. 지난해 7월 17일 서울 중구 태평로 2가 삼성생명 빌딩에서 제일모직 임시주주총회가 열렸다. 이날 주총에서 삼성물산과의 합병계약서 승인의 건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2015년 1분기(3월 말) 당시 삼성물산 사업부문별 실적을 보면 건설 부문이 3조 1363억 원 매출에 485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상사 부문은 매출 2조 9713억 원, 영업이익 3억 원이다. 2016년 1분기 현재 통합 삼성물산을 보면 건설 부문의 매출은 2조 7929억 원, 영업적자 4145억 원이다. 상사 무문은 매출 2조 6046억 원에 영업이익 16억 원이다. 지난해 1분기 말 당시 삼성물산은 매출 6조 1076억 원, 영업이익 488억 원, 당기순이익 1039억 원의 성과를 냈다. 당시 제일모직은 매출 1조 2728억 원, 영업이익 60억 원, 당기순이익 114억 원을 기록했다. 두 회사를 합치면 매출 7조 3804억원, 영업이익 548억 원, 당기순이익 1153억 원이다. 올 1분기 말 통합 삼성물산 경영실적은 매출 6조 4870억 원에 영업손실 4348억 원, 당기순손실 5166억 원이다. 합병 발표 당시 합병가액으로 계산한 시가총액(보통주)은 삼성물산이 8조 7118억 원, 제일모직이 21조 5047억 원이다. 당시 두 회사의 시총 합계는 30조 2165억 원이다. 지난 5월 26일 종가 기준 통합 삼성물산 시가총액은 22조 1937억 원이다. 한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주식가치 하락 폭은 이보다 조금 덜하다. 구 제일모직 당시인 지난해 5월 26일 기준 이 부회장 지분가치는 4조 9970억 원, 올 5월 26일 기준 통합 삼성물산 지분가치는 3조 8229억 원이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