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팔아먹으려고? 그거 아임미더~”
▲ 약물 복용 폭로 파문으로 야구판을 한바탕 뒤집어 놓은 마해영 해설위원은 기자를 보자마자 ‘무슨 일로 왔냐’며 은근 경계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사진은 삼성의 이영욱 선수와 인터뷰 하는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 경기 중계가 끝나고 마 위원은 팬들에게 사인을 해준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
대만리그라도 가고 싶었다
“야구할 때보다 해설할 때가 더 인기가 많은 것 같다”며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 마해영은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정중히 거절하다가 ‘그냥 밥이나 먹자’며 정지원 캐스터와 함께 청주 시내로 방향을 잡았다. 명목상 ‘밥’은 ‘소주’로 대치됐다. 인터뷰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마 위원에게 초보 해설위원이 겪은 에피소드를 묻는 걸로 대화를 시도해 나갔다.
“제가 말하는 거에 좀 재주가 있었거든요. 처음에 해설 제의를 받고 별로 걱정하지 않았던 것도 말재주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평상시 말하는 것과 방송 해설과는 천양지차더라고요. 화면을 보고 얘길 해야하는데 무조건 내가 하고 싶은 말만 계속 하질 않나, 카메라가 꺼진 줄 알고 방송 스태프에게 ‘여기 물 좀 줘요’ 하는 게 그대로 생방송되질 않나, 캐스터가 ‘홈런’이라고 귀청이 떨어지도록 크게 외치는데도 난 가라앉은 목소리로 ‘공이 넘어갔네요’ 했다가 그 팀 팬들로부터 엄청난 항의도 받았어요. 매일 매일이 실수의 연발이었죠.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해설위원의 신분으로 경기장을 찾는 자신의 모습이 한동안 낯설기도 했다고 한다. 더욱이 그라운드로 내려가 선수들을 인터뷰할 때는 그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이 너무 부러웠고 가끔은 넥타이 대신 유니폼을 다시 입게 될 수 있다면 무지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좋은 마무리를 못했다는 게 계속 아쉬움이 남아요. 지난 시즌 시작 전에 로이스터 감독을 찾아가 딱 두 달만 주전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었거든요. 구질구질하게 야구 하고 싶지 않으니까 딱 두 달만 시간을 준다면 열심히 해보겠다고요. 만약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다면 미련없이 야구판을 떠나겠다고 부탁을 했는데 결국 안 주시더라고요. 나이가 있는 선수들은 출장 기회가 꾸준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어요. 결국엔 방출되는 걸로 야구 인생을 마무리한 거죠.”
마해영은 개인적으로 내세웠던 통산 타율 3할과 300홈런, 2000안타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며 회한에 잠긴다. 당시 대만 등 다른 리그에서 자신을 불러만 준다면 계속 야구를 하겠다고 고집했지만 ‘불러주는 데가 없어서’ 차선책으로 야구 해설을 하게 됐다며 허탈한 웃음을 터트린다.
한창 잘나갈 때 소주는 5분 만에 4병(냉면 그릇으로), 생맥주 500cc는 20잔, 폭탄주는 무제한의 주량을 자랑한다는 마 위원과 ‘감히’ 대작하려고 앞에서 ‘소폭’을 만들고 있는 기자. 고려대 시절 선배였던 임수혁과 함께 술을 마시다 후배의 엄청난 주량 앞에 ‘돈 떨어졌으니까 그만 마셔’라고 한소리 들었다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술을 말아’ 주다 보니 인터뷰하랴, 술 제조하랴,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마 위원은 “옛날엔 술 좀 마신다는 소릴 들었지만 요즘은 고통스럽고 힘든 걸 술이나 담배로 해결하지 않는다”며 가볍게 술잔을 털어 넣고 본격적인 얘기를 시작했다.
약물 내용은 책의 극히 일부
“책에 대해 물어보고 싶으시죠? 어차피 그 얘기 꺼내실 거잖아요?”라면서 한숨을 내쉬는 마 위원은 처음으로 공개하는 거라면서 이런 내용을 밝힌다.
▲ 아내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며 안타까워하는 마해영. 가볍게 한잔하며 시작한 인터뷰가 새벽 3시를 넘겨서야 끝났다. | ||
책에 들어갈 내용과 목차는 마 위원과 출판사 측에서 함께 잡았다고 한다. 그 토대를 바탕으로 마 위원이 구술한 부분을 아내 방 씨가 정리하며 진행했는데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보다 ‘약물 복용 폭로’가 더 화제를 모으다 보니 마 위원 입장에선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지도 못했던 것.
“이번 일을 통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다른 건 다 참겠는데 책 팔아 먹으려고 약물 복용 사실을 폭로했다느니, 내 행동이 야구판을 흐린다느니 하는 비난은 너무 심했어요. 프로야구 선수로 14년을 산 선수가, 그것도 야구 현장에서 해설을 하는 사람이 일부러 야구판을 흐려놓으려고 안 해도 되는 말을 하겠어요?”
격앙된 마 위원의 목소리를 통해 그간 그의 심적 고통과 갈등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책 한 권 팔면 나한테 800원이 떨어집니다. 그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 줄까요? 내 책은 자서전도, 회고록도 아니에요. 그저 선수 생활을 하며 느꼈던 문제점이나 고쳐야 할 부분들을 가감없이 쓴 겁니다. 사실 평범한 선수가 구단의 사장이나 단장을 향해 스포츠마케팅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고 쓴소리를 할 수는 없잖아요. 나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히려 용기와 배짱을 칭찬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어요. 물론 언론에서는 안 좋은 반응들을 주로 내보냈지만 말예요.”
<마해영의 야구본색>에서 약물 복용과 관련된 내용은 200여 페이지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마해영은 ‘팀의 리더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나, 왜 1등 선수 출신은 좋은 감독이 되기 힘든가, 코치들의 저연봉 문제, 선수협 문제, KBO 조직에 대한 비판, 해외 전지훈련 에피소드와 선수들의 놀이 문화, 헤어스타일’ 등 자신의 현장 경험과 날선 시각을 통한 비판들, 그리고 ‘윗분’들을 향한 가시 돋힌 지적 등을 담아 먹음직스러운 ‘요리’를 완성해냈다. 즉 자신의 책이 약물 복용 폭로로만 매도되는 게 적잖이 서운할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책을 쓰면서 어느 정도의 파문은 예상했어요. 그런데 솔직히 이 정도로 엄청날 줄은 몰랐습니다. 어떤 분은 자신의 책이 아닌 인터뷰를 통해서 프로야구의 문제점을 고발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수년간 인터뷰를 해봤지만 말은 수시로 바뀌게 돼요. 내가 한 말이 기사화됐을 땐 완전 다른 의미로 전달되기도 했었고요. 그래서 대필도 싫었던 거죠. 말의 어감이 달라질까봐.”
마 위원은 약물을 복용했다는 선수들의 실명을 공개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도 강경한 태도를 나타냈다.
“내가 그 선수들 이름을 밝히는 게 프로야구를 위하는 건가요? 그걸 왜 밝혀야 하나요. 선수들이 상습적으로 복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호기심 차원에서, 또는 슬럼프를 이겨보려고 약을 복용하는데 그게 한두 번이 아니라 계속 지속된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것 같아 경고 차원에서 메시지를 전한 겁니다. 책 내용이 알려진 후 현장에서 내가 직접 만난 감독님들, 선수들은 오히려 격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특히 김성근, 김인식 감독님은 한 번쯤은 터트려야 할 얘기들이었다고, 기운내라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고마웠습니다.”
마 위원은 책에서 ‘KBO는 프로야구에 기여한 게 없다. KBO 직원들은 프로야구 선수들보다 평균 연봉이 훨씬 높다’라고 주장한 것과 관련해서도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어느 기사를 보니까 KBO 한 관계자의 말을 빌려 ‘KBO에 선수들 평균 연봉(8417만 원)보다 높은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라고 썼더라고요. 프로야구 선수들 평균 연봉이 8000만 원이라고요? 아니죠. 왜 2군 선수들은 빼요? 2군은 선수가 아닌가요? 연봉 1000만 원에서 3000만 원 받는 2군 선수들이 대부분입니다. 난 그걸 말하고 싶었어요. 2군 선수들의 빈곤한 생활과 그들의 생활 환경을 개선시켜주기 위해 과연 KBO 관계자들은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묻고 싶었던 겁니다.”
한 야구 관계자는 마 위원을 향해 ‘은퇴한 지 얼마나 됐다고 책을 쓰느냐’면서 비난의 강도를 낮추지 않았다. 마 위원도 그런 얘길 들었는지 ‘소폭’을 벌컥벌컥 들이마신 뒤 다시 자신의 속을 꺼내보였다.
“마음만은 다치지 말자 약속했죠”
“지금도 전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팬들이 마해영 선수라며 반가워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인정해줄 때,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라 마해영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을 때 책을 내야 사람들이 봐 주는 거잖아요. 이게 야구팬들을 위해 쓴 거지 일반인을 상대로 쓴 책은 아니잖아요. 아무도 안 읽어주는 책을 뭐 하러 쓰겠어요. 단순히 자서전이 아닌 것도 팬들 입장에서 정말 궁금한 부분들을 말해주고 싶었던 이유에서였어요.”
작정하고 쓴 책이라 책을 준비하는 6개월 동안 또 탈고를 마치고 모든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면서 마 위원과 아내는 작은 결심을 해야 했다. 야구계의 파장을 예상한 상황이라 앞으로 벌어질 크고 작은 일들로 인해 마음만은 다치지 말자는 부부간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직접 부딪히다보니 숨기지 못한 상처는 생길 수밖에 없었단다.
“내가 코치나 감독 자리에 욕심이나 희망을 갖고 있었다면 이런 일을 벌일 수 없었겠죠. 지도자 하고 싶은 사람이 구단이나 KBO를 상대로 쓴소리를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솔직히 얘기해서 이 책 때문에 해설하다가 잘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용기를 주는 기사도 많이 나오고 계속 방송할 수 있도록 배려도 해주고,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많았어요. 설령 잃은 게 더 많았다고 해도 책을 쓴 건 후회하지 않았을 겁니다.”
인터뷰를 겸한 술자리가 새벽 3시를 넘겨서야 끝났다. 선수시절부터 은퇴 후 지금까지도 평범한 삶을 거부하는 마해영의 남다른 인생 철학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관계와 관계들로 이뤄진 야구판에서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가 새삼 신선한 느낌표를 선사했다. 마 위원은 이런 난리법석을 통해 KBO가 선수들의 반도핑 검사를 강화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며 마침표를 찍었다.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