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집단 해고 위기에 아파트 주민들 투쟁 나섰다
지난 2014년 4월 서울 강서구 D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에서 경비원을 감축하고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2015년부터 경비원들에게 최저임금이 적용돼 입주민의 관리비가 인상될 것이라는 이유였다. 그동안 경비원들은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못했다. 그러나 주민투표 결과 무인경비시스템 도입은 부결됐다.
지난해 3월에도 똑같은 투표가 진행됐으나 부결됐다. 그러나 지난해 8월 동대표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이를 무시하고 무인경비시스템 도입을 확정했다. 또한 입주자대표회의는 D 아파트의 경비원 44명 전원을 해고할 것을 지시했다. 본래 경비원들은 2월에 계약이 끝나 근로계약서를 다시 써야 했다. 그러나 경비원들이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입주자대표협의회가 관리업체에 요구한 것. 이에 D 아파트의 입주민들은 주민모임을 만들어 전면 항의에 들어갔다. 경비원들과 함께 경비실을 지켰고 현수막 등을 걸어 반대했다. 경비원들도 여기에 힘을 얻었다.
D아파트에는 경비원 해고 반대 현수막이 걸려있다.
올해 2월 입주민 200여 명과 경비원들은 소송에 들어갔다. 과반수 입주민들의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동대표들끼리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또한 이들은 “무인경비시스템 도입은 사실상 경비실의 폐쇄를 의미하고 이는 곧 부대시설의 용도폐지에 해당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주택법 시행령이 요구하는 ‘입주자 3분의 2 이상이 찬성’ 요건이 충족돼야 하는데 이 부분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를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들이 힘을 보탰다. 이들은 소송 중에 무인경비시스템이 설치될 것을 우려해 무인시스템 공사 가처분 신청도 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경비원들은 일단 새로운 관리업체에 고용 승계됐다. 그러나 이것은 꼼수였을 뿐 승계받은 관리업체도 무인경비시스템이 들어오면 구조조정을 하기로 약속을 한 상태였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D 아파트의 경비용역업체 선정 입찰공고를 보면 ‘계약기간 중 통합보안시스템사업 추진으로 인력 변동이 있을 경우 수용해야 함’이라는 내용이 있다.
D 아파트의 경비용역업체 선정 입찰공고문에는 보안시스템사업 추진으로 인력 변동이 있으면 수용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그러나 법원은 입주민들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입주민들의 주장은 주택법 시행령 제52조 1항의 ‘공동주택 관리방법의 결정은 입주자대표회의의 의결 또는 전체 입주자 등의 10분의 1 이상이 제안하고 전체 입주자등의 과반수가 찬성하는 방법에 따른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법원 측은 “관리방법 변경의 의미는 주택법 제43조를 토대로 해석해야 하는데 제43조는 입주자가 공동주택을 자치관리하거나 주택관리업자에게 위탁관리한다는 내용”이라며 “무인경비시스템 도입은 자치관리 방식이나 위탁관리 방식 중 하나를 택일하는 사항이 아니며 시행령 제52조 1항에서 말하는 관리방법의 변경에 관한 안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해석했다. 또한 “무인경비시스템 도입에 부대시설의 용도폐지의 취지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입주자대표회의 측도 일부 입주민들을 상대로 소송에 들어갔다. 소송에 참여한 입주민들이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한 것에 대한 비난의 현수막과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동대표 측은 배포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못했고 특정했다 하더라도 충분한 소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이 역시 기각됐다.
그렇다면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면 과연 관리비가 절감될까. 전문가들은 관리비 절감 효과가 크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재룡 선문대학교 교수가 지난 2014년 발표한 논문 ‘아파트 유·무인 경비시스템의 경제성 비교 연구’는 “아파트 경비시스템 체계를 유인시스템에서 무인시스템으로 변경할 경우 경제적으로 큰 효용성을 얻기가 힘들다”며 “오히려 무인경비시스템보다 유인경비시스템의 경제적 효용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주민의 생활 편의성 제고 분야와 사회적 효용 분야를 계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비원들은 방범 업무 외에도 택배, 청소, 분리수거, 주차관리, 제설작업 등 다양한 업무를 한다. 이중 상당수는 무인경비시스템이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무인시스템에 드는 부대비용을 계산하면 오히려 손해라는 것이다. 안성식 노원복지센터 센터장은 “무인경비시스템이 도입돼도 경비원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며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아파트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인데 그건 아파트 주인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지 세입자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관리비를 내는 건 결국 세입자”라고 전했다. 실제로 노원의 한 아파트는 지난 2014년 말에 무인경비시스템을 도입하면서 19명의 경비원을 해고했다. 그러나 입주민들의 불편으로 일부 경비원들이 다시 복귀했다.
또한 경비원들의 업무강도도 문제로 꼽힌다. 상당수의 아파트는 동마다 경비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무인시스템이 들어오면 경비원 한 명이 여러 동을 관리해야 한다. 안성식 센터장은 “어차피 현실적으로 청소, 주차관리 등의 업무는 경비원이 계속 해야 한다. 여기에 더 힘들어지는 건 자동문시스템 때문”이라며 “택배기사나 방문객은 집주인이 없으면 경비실에 호출을 한다. 경비원은 이런 호출을 24시간 받아야 한다. 집주인은 보통 카드키로 자동문을 여는데 잠깐 마실 나온 할머니들은 카드도 잘 안 들고 다닌다. 이런 사람들은 다 경비원들이 문을 열어준다”고 전했다.
D 아파트 내부에서는 무인경비시스템 공사가 시작되는 6월 말부터 경비원들이 해고될 예정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경비원들과 경비원들을 지지하는 입주민들은 항소를 진행하고 있다. 한 주민은 “시장이나 구청장에게 탄원서도 쓰는 등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자본력이 이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안성식 센터장 역시 “정확한 자료가 없어서 몇 군데인지는 모르지만 많은 수의 아파트가 무인경비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투표에서 부결됐는데도 강행하는 경우는 처음 봤다”며 “전국적으로 아파트 경비원이 3만~4만 명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 뻔히 당하고 있으면서 제대로 항의하는 사람은 너무 적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