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다저스 마이너 못 갔다면 멕시코서 뛰고 있었을 것
지난 3일 경기를 마치고 뉴올리언스 시내의 한 호텔로 돌아온 최향남과의 전화통화는 현지시간으로 밤 11시에 이뤄졌다. 최향남이 아예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아 호텔로 전화를 걸어 연결한 것이다. 왜 휴대폰이 없느냐는 질문에 ‘딱히 필요하지도 않고 전화를 걸어야 할 때는 공중전화를 이용하면 된다’는 간단명료한 대답이 나온다. ‘향남스런’ 반응이다. 최향남과 연락을 취하려는 사람만 답답할 따름이다.
나이에 놀라고… 공에 놀라고…
빅리그를 꿈꾸며 세인트루이스의 스프링캠프에 합류했던 최향남. 캠프동안 몇 차례 빅리그 마운드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는 게 최향남의 자체 평가다. 그로 인해 결국 방출 통보를 받고 졸지에 오갈 데 없어진 그의 다음 행보는 애리조나의 LA 다저스 루키리그였다. 루키리그라도 못 갔다면 최향남은 지금쯤 멕시코나 독립리그에서 뛰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열아홉, 스무살된 선수들과 함께 기본기부터 다시 배워갈 때는 헛웃음만 나왔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싶기도 했다. 루키리그에서 2주에 한 번씩 계약을 맺었다. 2주 후에 계약 불가 방침이 정해지면 두말 말고 짐을 싸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2주씩 3번, 즉 6주를 지켜본 뒤 ‘미안하다’며 팀을 떠나라고 하더라.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나이 때문에 더 이상 데리고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멍한 심정으로 호텔로 돌아갔는데 팀 관계자가 ‘럭키가이’라면서 트리플A에 빈자리가 생겼다며 당장 트리플A로 가보라고 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루키군에서 선수들과 코치들에게 인정받았던 부분이 크게 어필했던 모양이다.”
최향남은 말도 안 통하는 상황에서 남미 출신의 나이 어린 선수들과 부대끼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다. 한 번은 열아홉 살 먹은 선수가 최향남한테 다가와선 “너, 나이가 몇 살이니?”하고 묻더란다. 서른아홉 살이라고 말했더니 “와, 우리 아버지 나이랑 똑같네”하며 놀라워했다고. 순간 웃음으로 그 자리를 모면했지만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가끔은 루키리그에 있는 코치들이 이런 얘길 했다. ‘나이도 많이 먹은 사람이 여기서 고생한다’고.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눈길이 심히 부담스러웠는데 나중에 내가 던지는 공을 보고 나선 ‘그 나이에 정말 대단하다’며 인정을 해주더라.”
나이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은 또 있다. 한 번은 샌디에이고 루키팀과의 경기를 위해 원정을 떠났었다. 경기 전 몸을 풀다가 상대팀 더그아웃을 쳐다본 최향남. 상당히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조금씩 그쪽을 향해 걸어가면서 ‘누구지? 어디서 봤더라’하는데 가까이서 그 얼굴을 확인한 순간, 최향남은 깜짝 놀라며 ‘어? 당신이 여기 웬일이야?’했다는 것. 그는 이전 클리블랜드 트리플A 시절 함께 뛰었던 동료 선수 플로렌스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짧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데 플로렌스가 최향남에게 이렇게 물었단다. ‘근데 너는 여기 코치로 왔니?’라고. 최향남이 LA 다저스 루키팀에서 선수로 뛰고 있다고 말하자, ‘와우, 난 이 팀 감독인데’라며 최향남의 오랜(?) 선수 생활에 대해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만약 LA에서 잘리면 나한테 와 봐”라고 말했다는 것.
“그 사람은 날 도와주겠다는 의미였지만 그 말을 들은 난 복잡한 심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 나이가 선수로 뛰기엔 정말 많은 나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그래도 그 플로렌스란 친구가 우리 팀 감독한테 내 얘길 잘 해줘서 그 후론 선수들과 기본기부터 배우는 훈련은 제외시켜 주더라.”
6경기 등판 ‘12와 2/3이닝 21K’
LA 다저스 트리플A팀에서 보낸 시간이 보름여 정도. 그동안 첫 승도 올렸고 중간계투로 나가 1이닝동안 공 12개로 세 타자를 모두 삼진 처리하는 괴력을 보이기도 했다. 방어율이 3.55로 다소 높지만 올시즌 6경기를 치르면서 12와 2/3이닝 동안 21개의 삼진을 솎아내는 등 ‘닥터K’의 위용을 뽐내고 있다.
“멕시코 출신의 보닐리아란 선수가 나랑 경쟁 상대다. 그 선수 아니면 내가 빅리그로 올라갈 가능성이 가장 많다. 언젠가 LA 다저스 마운드에 서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빅리그 마운드를 밟아보는 게 중요하지 않다. 다시 마이너리그로 떨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빅리그에 머물러야 한다. 요즘은 등판할 때마다 마치 빅 테스트를 치르는 심정이다.”
아침에는 호텔에서 15달러짜리 조식을 먹고 점심은 햄버거나 파스타로 때운다는 최향남. 마이너리그는 2인1실이라 어제 도미니카 선수와 한 방을 썼다가 밤새 틀어놓은 에어컨으로 감기가 걸렸다는 그. 1인실을 쓰려면 80달러를 따로 내야 해서 고민을 했는데 우연히 사람이 한 명 모자라 기자랑 통화할 때 처음으로 혼자 방을 쓰게 됐다며 좋아하는 서른아홉 살 야구선수의 삶이 조금은 팍팍하고 많이 대단하고 엄청 존경스러웠다.
그렇게 고생하지 말고 한국으로 돌아올 의향이 없는지를 묻자, “그동안 고생은 했지만 얻은 게 너무 많다. 좋은 기술을 많이 습득했는데 그걸 좀 써 먹고 가야 후회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종종 사직구장을 꽉 채우는 부산 팬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더 이상 돌아보지 않게 될 때, 더 이상 미련이 없을 것 같을 때 (한국으로) 돌아가겠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