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명퇴’ 당할 줄 예전엔 몰랐죠
▲ 현주엽.(왼쪽 사진) 양희승.(가운데 사진) 전희철.(오른쪽 사진) | ||
#부상, 과연 그게 전부였을까
참 공교롭다. 나란히 은퇴의 길을 가게 된 현주엽과 양희승은 두 달 전 같은 날 같은 부위에 칼을 댔다. 5월 7일, 현주엽과 양희승은 왼쪽 무릎수술을 받았다. 현주엽은 지난 시즌 내내 무릎 통증으로 고생했고 결국 수술을 택했다. 지난달 말 은퇴 기자회견에도 현주엽은 목발을 짚고 나타났다. 양희승도 현재 목발을 짚고 생활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까지는 다리에 깁스까지 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직 계약기간이 남은(현주엽 1년, 양희승 2년) 이들이 부상이라는 이유만으로 은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구단 입장에서도 이들의 잔여연봉까지 지급해 가며 은퇴라는 마지막 선택을 하게 해야 했을까.
구단 입장에서는 30대 중반의 이들이 합동훈련을 시작하는 6월에도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다니는 것을 침착하게 기다려주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LG는 혼혈선수 드래프트에서 그렉 스티븐슨을 영입하고 오리온스에서 장신 포워드 백인선을 데려왔다. 현주엽과 포지션이 겹치는 선수들이었다. 사실상 현주엽 없이 시즌을 치르겠다는 포석이었다.
이런 선택에는 지난해부터 LG 사령탑을 잡은 강을준 감독의 스타일이 크게 작용했다. 강 감독은 명지대 시절 선수 전원을 하나로 뭉쳐 탄탄한 팀워크 중심의 스피드 농구를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강 감독에게 현주엽이라는 존재는 성공적인 프로 감독으로 성장하기 위해 맞닥뜨린 첫 번째 관문이나 다름없었다.
강 감독은 LG 감독 부임과 동시에 현주엽 끌어안기에 돌입했다. 함께 목욕을 하는 모습까지 언론에 공개하며 현주엽을 팀의 리더로 추켜세웠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론이 뻔히 보이는 노력이었다. 시즌 중에도 두 사람의 갈등설이 심심찮게 흘러 나왔다. 현주엽이 벤치를 지키는 경우가 점점 잦아졌다.
강 감독과 구단 관계자들은 지난 시즌을 마치고 팀 리빌딩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결론은 ‘덩어리가 너무 큰’ 노장들의 처분이었다. LG가 현주엽의 트레이드를 물색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러나 현주엽을 떠안을 팀은 없었다. 결국 새 감독과 융합하지 못한 현주엽을 기다리는 것은 은퇴밖에 없었던 것이다.
양희승의 경우는 더욱 아쉽다. 그동안 끊이지 않는 부상으로 고액 연봉에 걸맞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양희승은 지난 시즌부터 구단과 일부 동료 선수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희승의 은퇴를 사실상 결정한 구단에서는 수술을 말렸는데 본인이 고집을 부려 수술을 받았다는 소문, 시즌 직후 휴대전화 전원을 끈 채 구단과 연락을 끊었다는 소문이 꼬리를 이었다.
그러나 양희승은 이런 소문들에 대해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양희승은 기자와의 최근 통화에서 “정작 나는 수술을 받고 싶지 않았다. 지난 시즌에도 참고 뛰었는데 버틸 만했다. 그런데 구단에서 수술을 권했다. 어깨 부상은 완전히 회복됐기 때문에 재활만 제대로 하면 시즌 개막(10월말)까지 충분히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양희승은 4월말 전창진 신임 감독의 취임식에도 아무 연락도 없이 불참하며 구단과의 갈등을 그대로 드러냈다. 양희승은 “(웨이버 공시 전에) 하루 이틀이라도 생각할 시간을 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올시즌 연봉에 대해 절반까지 삭감당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KT에서 생각이 없었다면 혹시라도 나를 원하는 다른 팀이 있는지 알아볼 수라도 있게 미리 귀띔을 해줬어야 하는 거였다”라고 울분에 가까운 불만을 터뜨렸다.
현역 생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양희승은 일본리그 진출까지 알아볼 생각을 하고 있다. 실제로 모 구단에서는 양희승이 웨이버 공시되자 감독이 직접 전화를 해 “같이 뛸 생각이 있냐. 몸을 만들고 있어라. 1군 잔여연봉이 3500만 원밖에 되지 않는데 이 금액에 계약을 하고 뛸 수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은
2008~2009시즌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해 11월 2일. 잠실학생체육관은 눈물바다를 이뤘다. 25년간 정들었던 코트를 떠나는 전희철에 대한 성대한 은퇴식이 치러진 것. 전희철의 등번호 13번은 영구결번으로 잠실학생체육관에 대형 유니폼으로 걸렸고, 전희철은 은퇴 소감을 말하는 마이크를 잡고 눈물을 흘리며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체육관을 찾은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떠나는 전희철의 마지막 길을 빛내주었다.
전희철의 영구결번 결정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SK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전희철에 대한 영구결번은 한마디로 ‘오버’라는 것이다. 그러나 “SK에서의 활약보다도 농구대잔치의 주역으로서 한국 농구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했다”는 SK 관계자의 말처럼 전희철은 결코 섭섭치않은 의미있는 기억을 남기며 지도자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현주엽 역시 이름값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 것으로 보인다. 모 농구관계자에 따르면 “계약기간이 1년 남은 현주엽이 LG로부터 남은 1년 연봉과 해외연수비용까지 모두 합쳐 4억 원 가깝게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1년간의 해외연수비용을 약 1억 원으로 계산한다면 현주엽은 남은 1년 연봉을 지난 시즌 연봉 3억 2000만 원과 거의 비슷한 금액으로 받는 셈이 된다. 한국농구연맹(KBL)은 웨이버 선수나 임의 탈퇴 선수, 은퇴 선수에 대한 연봉을 전적으로 구단과 선수 간 합의에 맡기고 있다. 은퇴 선수의 잔여연봉의 경우 최저 연봉(3000만 원)만 지급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양희승은 KT로부터 2억 원에 채 못 미치는 금액을 받고 선수 생활을 정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단 측에서는 이 금액을 2년간의 해외연수비용 조로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희승은 사실상 남은 2년의 잔여연봉을 이 금액으로 대신하는 셈이다. 그러나 프로농구의 한 노장 선수는 “양희승은 그동안 활약에 비해 줄곧 고액 연봉을 받아왔다. 크게 불만을 표할 입장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허재원 한국일보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