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아 미안하다~ 상대팀 에이스 잡는 기분 최고야!
▲ 난 진정한 에이스! 시즌 초반 에이스다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하던 송승준이 최근 세 경기 연속 완봉승을 거두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출근하기가 무서웠다!
“한때 팬들 만나기가 두려웠어요. 2군으로 내려가라고 소리 지르는 분들도 있었고 투수시키지 말라고 대놓고 뭐라 하는 분들도 있었죠. 어떤 팬은 왜 절 롯데로 데리고 왔느냐며 비난을 서슴지 않았어요. 로이스터 감독님 아니었으면 버티기 힘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팀의 기둥을 자처했던 조성환의 부상과 분위기 메이커 송승준의 부진도 송승준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그러나 송승준이 움츠러들수록 로이스터 감독은 “우린 6월부터 올라갈 수밖에 없다. 걱정하지 말라”며 용기를 북돋워줬다고 한다.
“감독님의 위로가 고맙기도 했지만 워낙 팀 사정이 안 좋으니까 ‘설마’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데 정말 그 분 말씀대로 팀이 조금씩 달라지는 거예요. ‘역시 예리하시구나’ 싶었죠.”
야구장으로의 출근도 부담스러웠지만 집으로 퇴근하는 건 더더욱 괴로웠다고 한다. 아들의 성적에 일희일비하시는 부모님의 걱정을 담은 한마디 한마디가 송승준의 가슴에 모래주머니를 얹는 것마냥 부담스러웠던 것.
“부모님 입장도 이해가 돼요. 주위 분들이 제 경기를 보고 좋은 얘길 안 하시니까 속으로 쌓아 두셨다가 한두 마디씩 던지신 건데, 제가 여유롭지 못해서 그런지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재미있는 건 요즘 성적이 좋아서인지 어머님 얼굴이 활짝 피셨어요. 제가 등판할 때마다 친구 분들 모시고 단체로 경기장에 오시는 것 같아요. 이상하게 어머님 얼굴은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눈에 확 띄더라고요.”
손민한의 도움, 그리고 아픔
송승준은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바람에 병역혜택을 받았다. 미국 마이너리그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병역 문제였는데 뜻밖의 대표팀 합류로 야구인생의 최대 고민이 말끔히 해결된 것.
“저랑 룸메이트인 (손)민한이 형이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김경문 감독님을 찾아가 절 꼭 뽑아달라고 부탁하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대표팀 명단에 올라가니까 여기저기서 말들이 많았잖아요. 특히 KIA 윤석민이 처음엔 제외돼 있어 그 불씨가 저한테 튀었죠. 정말 마음 고생 심했습니다. 그때 민한이 형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누가 부탁을 했든, 사정을 했든, 선수를 선발하는 최종 권한은 감독님한테 있는 거라고요. 사사로운 감정으로 선발하시는 분이 아니라고요. 그러면서 전 실력으로 뽑힌 거라고 말했는데 윤석민이 합류하지 않았으면 마음이 많이 안 좋았을 거예요.”
WBC 대회 이후 송승준은 손민한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복잡한 심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회 기간 동안 언론을 통해 ‘손민한 실종 사건’이 회자되면서 당사자인 손민한은 표현 못할 상실감으로 괴로워했다는 것.
“더그아웃에 있었는데도 등판하지 않았다고 해서 실종 사건 운운하는 건 너무 했다고 생각해요. 형이 많이 힘들어 하셨어요. 기자들과는 거의 얘기도 안 하시려고 했었죠. 게임도 못 하고 팀을 이끌어 가면서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겠어요. 더구나 자신의 존재가 ‘실종’으로 표현되는 부분은 형네 가족들한테도 굉장히 큰 상처가 되었죠. 어려움을 딛고 다시 재기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롯데 에이스는 손민한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괴물’을 이기고 싶었다!
▲ 바로 이 맛이야! 지난 7월 4일 SK와의 대전에서 완봉승을 거두고 포효하고 있는 송승준.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 ||
“당시 강병철 감독님이 2군을 지도하고 계셨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1군으로 올라가라는 말씀을 안 하시는 거예요. 한 달을 그렇게 보내니까 미치겠더라고요. 사실 군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귀국했던 것이고 상무나 경찰청 입단을 알아보던 차에 롯데로부터 제의를 받은 거잖아요. 순간 제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닌가 싶어서 우울한 기분으로 지내기도 했어요. 그때도 저한테 실망한 팬들은 ‘군대나 보내라’ ‘두산으로 간 이승학이랑 바꿔오라’며 집중 성토를 하셨죠. 돌이켜보면 사람 사는 게 참 재밌어요. 그 당시엔 저한테 이런 행복한 날들이 오리라곤 상상조차 못했거든요.”
워낙 오락가락하는 삶에 익숙하다보니 지금 좋은 성적을 올린다고 해서 엄청 기쁘거나 들뜨진 않는다고 한다. 오늘 맑았다가 내일 흐릴 수 있는 게 야구이기 때문에 지금의 기록에 마음을 놓진 않는다는 것.
6월 28일, 한화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뒀을 때 송승준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류현진을 꼭 이기고 싶었다”고 말한다. 당시 한화 선발은 ‘괴물’ 류현진. 류현진은 9이닝을 2실점으로 잘 막았지만 타선의 침묵으로 패전의 멍에를 안았다.
“다른 팀의 선발 투수들도 모두 경쟁 상대이지만 류현진, 김광현(SK), 봉중근(LG) 선수들이랑 선발로 붙으면 절대 지고 싶지 않다는 의욕이 불타올라요. 이전에만 해도 롯데전에 류현진이 나오면 일부 팬들은 ‘어휴, 롯데 오늘 또 졌다’하는 반응이었잖아요. 그런 인식을 바꾸고 싶었어요. ‘괴물’보다 더한 투수가 올라와도 롯데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싶었죠. 그래서인지 에이스급 투수전에서 승리를 하면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3번의 기회 놓치고 수렁에 빠져
“몬트리올 엑스포스(지금의 워싱턴 내셔널스) 시절이 최고로 좋은 성적을 올린 해였어요. 팀 내 MVP에 올랐을 정도로 컨디션이 최상이었죠. 9월되면 빅리그로 올려준다는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내심 기대를 잔뜩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소식이 없는 거예요. 나중에 미나미 단장이 절 불러선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연봉을 올려줄 여력이 안 돼서 올려보내지 못했다면서요. 한 번은 텍사스의 후안 곤잘레스와 제가 1대1 트레이드 대상으로 떠올랐어요. 박찬호 선배가 직접 전화를 걸어선 방 비워 놨으니까 형네 집에서 같이 지내자고 하실 정도였죠. 당연히 트레이드가 되는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판에 곤잘레스가 트레이드 거부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무산되고 말았어요. 트레이드가 불발되면서 모든 게 꼬이기 시작했죠.”
2004년엔 리반 에르난데스와 토니 아마스가 부상으로 제외되면서 또 다시 송승준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오는 듯했다. 투수 코치가 시카고 컵스 전에 올라갈 것이라고 귀띔해줬고 송승준은 리글리필드 마운드에 설 수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그런데 트리플 A 경기에서 타자로도 타석에 섰던 송승준은 그날 2루로 진루하다가 상대 선수가 던진 공에 손목을 맞았고 손목 뼈가 완전히 부서지는 큰 부상을 입게 된다. 결국 부상으로 실려 간 송승준 대신에 시카고 컵스 마운드에는 더블 A에 있던 션 힐이라는 선수가 올라갔다.
“수술 후 집에 누워 있다가 분을 참지 못하고 모든 집기들은 다 집어 던지고 때려 부쉈어요. 인생이 꼬여도 그렇게 꼬일 순 없는 거잖아요. 미국 생활 8년 동안 빅리그로 올라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세 번 있었고 그 세 번의 기회를 다 놓친 셈이죠. 지금이야 추억으로 남아있는 부분들이지만 당시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릴 정도로 절 피폐하게 만들었어요.”
송승준은 부산에서 야구를 하고 있는 현재가 너무나 만족스럽다고 한다. 가끔은 팬들의 반응에 온탕과 냉탕을 오락가락하지만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넉넉히 받아들일 수 있다며 활짝 웃는다.
인터뷰 말미에 미국에서 맹활약 중인 추신수 얘기가 살짝 거론됐다. 추신수와 친분이 있는 송승준은 이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전 운 좋게 올림픽을 통해 병역 면제를 받았지만 신수는 표현 못할 부담을 안고 살 거예요. 저도 미국에서 생활해 봐서 알아요. 메이저리그에서 4번 타자로 활약한다는 건 엄청난 일이거든요. 신수가 금메달 획득 못지않은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제가 더 가슴이 벅차올라요. 신수가 오로지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어떻게 좀 해주시면 안 되나요?”
이영미 기자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