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백홈이라뇨? 이제부터 시작인데!
▲ 내일을 꿈꾸며 재활 중인 류제국은 피칭 연습을 하며 내년 시즌 화려한 부활을 기약했다.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
재활선수와 초보아빠
7월 29일 낮 12시경. 피닉스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외곽에 자리한 한인 식당에 유모차를 밀고 들어온 젊은 부부가 눈에 띈다. 취재진을 보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그들. 바로 류제국(26)-김혜미(26) 부부다. 올 1월 초에 결혼한 두 사람은 생후 8주된 아들 교빈이를 둔 속도 위반 커플. 지난 2월 출국 전 인천공항에서 인터뷰한 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두 사람과 그리고 갓난 아이.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있는 모습이 생소하다 못해 낯설기까지 했다.
“제국 씨가 예상과 달리 아이를 너무 잘 봐줘요.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상황들인데도 아이한테 신경을 쏟으며 시름을 잊는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이 만만치 않지만 제국 씨가 잘 도와주니까 큰 어려움은 없어요.”
테니스 선수 출신으로 일본서 활약했던 김혜미 씨는 나이 어린 ‘초보 아빠’가 의외로 아이를 잘 본다며 남편 자랑을 늘어놓는다. 가만 보니 아이를 어르는 류제국의 폼이 꽤 그럴싸하다.
지난 2월 9일 인천공항에서 두 사람을 인터뷰할 때만 해도 류제국한테는 갈 곳이 있었다. 당시 원소속팀 탬파베이에서 방출대기 조치를 받았다가 이틀 만에 극적으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부름을 받은 류제국은 샌디에이고 스프링캠프에 합류하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류제국은 시즌 개막 직전인 3월 27일, 샌디에이고에서 웨이버로 공시된 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향했다. 류제국이 샌디에이고 스프링캠프 동안 보여준 성적은 8차례의 시범경기에 등판해 9와3분의1이닝 동안 안타 16개에 12점을 내준 게 전부. 그러나 악몽은 이번이 끝이 아니었다. 류제국을 데려갔던 클리블랜드가 4월 2일 류제국의 이적 자체를 무효화하면서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웨이버 영입 취소를 요청한 것. 결국 류제국은 다시 샌디에이고로 돌아갔고 또 다시 방출당했다.
“모양새 정말 우습게 됐었죠. 샌디에이고로 갔다가 클리블랜드로, 그리고 다시 샌디에이고에 가서 또 다시 방출당했으니까요. 환희와 절망과 아쉬움 등을 차례대로 겪고 나니까 해탈의 경지에 오른 기분이었어요. 사실 샌디에이고에서 클리블랜드 마이너리그로 옮겨갔을 때는 또 다시 한 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한다는 걱정이 굉장히 컸어요. 그런데 가자마자 신체검사에 통과를 못해 샌디에이고로 돌려보낸다는 거예요. 사실 속으론 잘 됐다 싶었어요. 샌디에이고에서 재활하다가 메이저리그 승격을 노릴 수 있겠다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가자마자 다시 방출당한 거예요. 얼마나 어이가 없었겠어요.”
출산일이 점점 다가오는 상태에서 만삭의 아내와 샌디에이고와 클리블랜드를 오가다 결국 내쫓기는 신세가 된 류제국으로선 당시 상황이 만만치 않은 고통이었을 것이다.
▲ 붕어빵이죠~ 7월 29일 8주된 아들 교빈이를 안고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류제국.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
류제국은 자신의 신분과 관련된 룰을 잘 몰랐다고 한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세 번째 마이너리그 옵션을 모두 소진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던 것. 당시 에이전트와도 연락이 닿지 않아 류제국 혼자 속을 태우며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클리블랜드에선 신체검사 후 “당신은 신체검사에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수들과 같이 훈련할 수 없다”며 아예 유니폼도 건네주지 않았다고 한다.
신체검사 불합격 황당
“사복을 입고 나가서 두세 시간 동안 의사나 팀 관계자들을 기다렸어요. 그렇게 있다가 ‘오늘은 그냥 집에 돌아갔다가 내일 다시 와라’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갔어요. 그런 짓을 5일 동안 반복했었죠. 5일이 지나서 담당 의사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신체검사에 통과 못했으니까 샌디에이고로 돌려보내겠다’라고 하더라고요. 정말 황당했어요. 선수들이 ‘쟤, 뭐야?’하며 쳐다보는 것 같았고 다시 돌아간 샌디에이고에서도 ‘너 뭐니?’하는 눈치였어요. 그래도 다시 받아준 샌디에이고에서 정말 잘해서 꼭 메이저리그에 올라가자고 결심을 굳히고 라커룸에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감독이 부르더라고요. 그때 감독이 한 말이 ‘우린 널 받아줄 수가 없다’였습니다. 이렇게 내보낼 걸 뭐 하러 다시 받고 바로 방출시키는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죠.”
만삭의 아내가 편히 쉴 집도 없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는 류제국. 그때 추신수가 류제국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 ‘애리조나에서 재활을 해야 하니 돈 주고 호텔에 있지 말고 우리 집에서 같이 지내자’라는 내용이었다.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형이 애리조나에 큰 집을 마련했거든요. 더욱이 형수님이랑 와이프가 굉장히 잘 통하고 친해요. 형수님이 출산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와이프한테 여러 가지로 많은 배려를 해줬어요. 지금은 집을 따로 구해서 신수 형 집을 나왔지만 같이 살던 그 시간들은 잊지 못할 거예요.”
무적 신세가 된 상태에서 태어난 아들 교빈이. 처음으로 자신의 분신을 만난 류제국은 교빈이를 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왔다고 한다.
“멋진 아빠가 되고 싶었거든요. 아니 멋지진 못해도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은 이렇게 놀고 있는 게 아이를 돌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계속 이렇게 놀고 있으면 아이한테 너무 미안해지는 일이잖아요. 아이가 참으로 예쁘고 사랑스럽다가도 제 현실을 떠올리면 절로 한숨이 나오더라고요.”
가장 큰 두려움은 오랫동안 실전 게임을 뛰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단다. 지난해 오른쪽 팔꿈치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하는 바람에 2년여를 마운드에 올라가보지 못했던 것. 야구에 대한 감을 잃어서 당황하진 않을까, 밸런스를 못 잡아서 컨디션 난조에 빠지지 않을까…, 류제국의 걱정은 끊이질 않았다. 주위에선 그냥 한국으로 들어가라는 충고 아닌 충고도 많았다고 한다. 한때 LG에서 류제국을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걸 떠올린 까닭이다.
“한국복귀 맘 접었슴다”
“솔직히 한국으로의 복귀는 100% 마음을 접었어요. 생활이 어려워서 한국행을 선택한다면 지금 당장은 편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꾸 뒤를 돌아볼 것 같았어요. 미련 때문에. 와이프도 고생은 각오하고 있으니까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극구 만류하더라고요. 신수 형을 담당하고 있는 에이전트(엘렌 네로)를 만난 것도 큰 행운이었죠. 그 에이전트가 그러더라고요. ‘비전이 있는 선수가 꿈을 포기한다면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다. 만약 미국에서 계속 야구를 하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라고요. 그동안 에이전트 문제로 상심이 컸는데 미국 에이전트를 만난 뒤로 자신감이 생겼어요.”
야구를 시작한 뒤로 유망주로 꼽히며 관심의 대상이 됐었던 류제국. 시카고 컵스와 계약하기 전까지만 해도 류제국은 고교야구의 에이스 중 에이스였다. 미국야구에 도전장을 내밀며 결코 실패란 단어를 떠올려보지 못했을 만큼 이전의 류제국은 거칠 것 없는 당당함, 그 자체였다. 시간이 흐르고 메이저리그보다는 마이너리그에서 보낸 시간들이 더 많았고, 지금은 무적 신세로 전락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려 했다.
“아내와 아이가 저한테 보이지 않은 힘을 주는 것 같아요. 포기하지 말고 다시 일어서라고. 지금 열심히 재활 중인데 9월 초쯤이면 조금씩 공을 던져보려고 해요. 그동안 마이너리그의 성적도 좋았고 메이저리그에서도 한두 경기 빼놓고는 심하게 못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활에만 성공한다면 팀을 구하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믿어요.”
아직 군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류제국한테 그 해결책을 물어보니까 이런 대답을 들려준다.
“전 신수 형만 따라갈 거예요(웃음). 신수 형이 아시안게임에 대표팀 선수로 뽑히면 저도 열심히 노력해서 낙점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지금 군 문제까지 거론하면 머리가 이상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 부분은 ‘숙제’로 남겨 둘래요.”
한국으로 돌아온 뒤 며칠 전 류제국한테 전화를 걸었다. 재활이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몸이 아주 좋아졌어요. 피칭 연습하고 있는데 느낌이 괜찮아요. 내년 시즌에는 사복 말고 유니폼 입은 모습 기대해 주세요^^.”
애리조나=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