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칠 때 떠나는 난 행운아”
▲ “후회는 없어요” 삼성화재 블루팡스 장병철이 10년 동안 뛰었던 배구코트를 떠나면서 후회 없는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석진욱·최태웅과 죽마고우
“선수 때는 휴대폰을 알람용으로 사용했어요. 와이프도 전화를 자주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하루 종일 전화 한번 안 올 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은퇴 발표 후 갑자기 휴대폰이 수시로 울려대요. 생전 전화 안 하시던 분들이 인사차 전화를 하시거나 이런저런 팀에서 다양한 제안을 하시기도 하고, 또 인터뷰 요청도 많고요. 뭐 이러다 시간 지나면 잠잠해지겠죠. 다 한때잖아요.”
언제부터 은퇴를 준비했는지가 궁금했다. 당장 연봉 1억여 원이 넘는 돈을 못 받게 되는 상황이라 집안의 가장인 그로선 오랫동안 고민을 했을 것 같았다.
“지난 6월 30일로 계약이 끝났어요. 그날을 디데이로 잡았다가 선수들이 FA 문제로 인해 단체행동을 벌였잖아요. 자연스레 계약 문제가 연기될 수밖에 없었고요. 그러다 팀에 다시 합류하니까 2주 후에 ‘부산 IBK’대회가 열리더라고요. 대회를 앞두고 그만두겠다고 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경기에 참가를 했는데 예상 외의 성적을 거둔 거죠. 은퇴는 2년 전부터 생각했던 일이에요. 그래도 전 운이 좋은 편이죠. 대부분의 선수들이 은퇴를 앞두고 몸이 아파서 뛰지 못하거나 부상 중에 은퇴를 하는 등 마무리가 좋지 않은데 전 그래도 장병철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은퇴한 셈이니까요.”
신치용 감독의 설득과 회유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당장 선수가 부족한 상태에서, 새로 영입해온 용병이 제대로 적응도 못한 마당에, 장병철이 은퇴를 하는 건 팀 전력상 큰 손실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감독님께서 은퇴하는 걸 반대하셨어요. 사실 저한테 항상 두려운 존재였던 분이 설득하는 자리에서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게 쉽지 않거든요. 그래도 지금이 은퇴 적기라고 생각했고 그 결심을 굽히지 않았던 거죠. 감독님도 그러셨지만 동기들이 난리였어요. (석)진욱이도 은퇴하려다 주저앉았잖아요. (최)태웅이랑 함께 1년 만 더 뛰자며 설득을 했습니다.”
장병철 석진욱 최태웅은 인천주안초등학교 시절부터 배구인생의 희로애락을 올곧이 같이했던 죽마고우들이다.
“배구의 시작은 같이했지만 그 끝을 함께 마무리할 수는 없잖아요. 팀 입장에서도 그렇고요. 진욱이가 은퇴를 번복하긴 했는데 진욱이는 선수 생활에 대해 미련이 남아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전 미련이 없었습니다. 두 차례의 발목 수술과 재활과 복귀 과정 등이 너무 힘들었고 체력이 완전히 소진된 상태에서 그만두면 그 다음의 인생을 만들어 가기 힘들 것 같았어요.”
은퇴 발표가 나자마자 기사화됐던 용인시청 코치직 제의에 대해 사실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장병철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그런데 그 얘기가 어떻게 나오게 된 거예요? 누가 그런 얘길 퍼트린 거죠? 용인시청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아직 은퇴 정리도 안 됐고 진로 문제는 가족들과도 상의를 해야 하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겠다는 게 전부입니다. 솔직히 용인시청 말고도 다른 데서 연락 온 데도 있어요. 하지만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했어요. 선수로 뛸지, 코치로 갈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마치 은퇴 전에 제가 갈 곳을 미리 정해 놓고 나온 것처럼 알려지니까 굉장히 불쾌하더라고요.”
장병철은 삼성화재에서 보낸 10년의 시간들이 ‘2인자’로 정리되는 데 대해 주저없이 동의했다. 이미 입단 전부터 김세진이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었고 김세진 은퇴 후에는 레안드로-안젤코 등 막강 용병이 영입되면서 라이트 공격수 자리는 장병철의 붙박이 포지션이 되지 못했다.
▲ 장병철은 ‘취중토크’를 하면서도 말실수를 할까봐 무척 신경을 썼다. | ||
“제가 삼성화재에 입단할 당시 드래프트 파동으로 인해 1년을 쉬었잖아요. 평생 배구밖에 안 했던 놈이 갑자기 코트에 설 수 없다 보니까 정말 앞날이 막막하더라고요. 그때 어린 마음에 배추장사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1종 면허 시험을 봤었어요. 집안이 굉장히 어려웠거든요. 3녀1남의 막내인 데다 제가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에 당장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그때 절 불러준 곳이 삼성화재였습니다. 물론 삼성화재에는 김세진이라는 대단한 선수가 있었지만 그런 걸 따지고 재고 할 여유가 없었어요. 당시 전 돈을 버는 게 훨씬 절박했습니다.”
장병철한테 김세진은 너무나 넘고 싶은 벽이었지만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한때 김세진을 이겨보려고 주말 외박을 반납하고 체육관에서 살다시피하며 훈련에 훈련을 반복하는 등 발버둥을 쳤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다고 털어놓는다.
“사람이 태어나서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그때 알았어요. 아무리 죽기살기로 발버둥을 쳐도 세진이 형은 한수 위였어요. 저도 1인자에 오르고 싶었습니다. 붙박이 주전 선수로 인정받으려 했지만 진짜 그건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세진이 형이 은퇴한다니까 겁이 덜컥 나는 거예요. 제가 그 형만큼 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두려웠다는 게 훨씬 솔직한 표현일지도 몰라요.”
장병철은 항간에 ‘용병 때문에’ ‘항상 치이는 인생이라’ 결국 은퇴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소문과 관련해선 “그렇게 말해주신다면 제가 오히려 고맙죠”라고 대답했다.
“제가 용병만큼 해주질 못하잖아요. 어느 정도 나이도 찬 상태였고요. 이게 제 운명인가 싶었어요. 레안드로가 팀에 들어왔을 때는 그저 감사했어요. 저보다 월등한 부분이 많은 선수였으니까요. 안젤코요? 참 대단했죠. 우리 팀에 딱 맞는 선수였어요.”
장병철은 자신의 은퇴와 관련해 왜 이렇게 소문이 무성하느냐며 하소연을 해댔다.
“어디 기사에서 보니까 제가 삼성과 연봉 협상 과정에서 이견을 보여 은퇴를 결정했다고 하던데 정말 아니에요. 물론 연봉 협상은 했었어요. 은퇴를 하기 위한 형식적인 과정이었습니다.”
10년을 함께했던 신치용 감독이 장병철은 항상 어려웠다고 한다. 신 감독에 대한 설명이 존경하는 지도자, 두려운 존재, 철저한 프로 정신, 가깝고도 먼 분, 앞에 서면 저절로 주눅이 드는 카리스마 등등이 나열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삼성만의 팀 문화를 정립해 놓으신 분이에요. 개성 강한 선수들을 자신의 스타일로 끌고 가시는 지도력도 탁월하시고요. 그런데 이건 제가 은퇴한 상황이라 말씀드리는 건데요, 더 이상 삼성이나 현대만이 우승을 하면 배구가 재미없어져요. 배구 팬들이 떨어져 나가잖아요. 대한항공이나 LIG 등이 우승도 하고 뒤집기도 해야 배구가 더 재미있어 질 것 같아요. 이 기사를 감독님이 보시면 당장 전화하실 것 같은데요(웃음)?”
삼성 점차 세대교체 해야
장병철은 내친김에 한마디 더 덧붙였다. 지금 당장은 선수 부족으로 전체적인 세대교체가 힘들다고 해도 최태웅, 석진욱 등이 은퇴하고 1~2년은 삼성이 바닥을 쳐야 더욱 더 탄탄한 삼성의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삼성은 1~2년간 밑바닥에 있어도 다시 정상에 오를 수 있는 팀이거든요. 후배들이 성장해야 해요. 그래야 더욱 단단한 팀이 구성돼요. 요즘 토토도 많이 하시는데 승률이 5할대를 유지해서 이기고 지는 시소 게임을 반복해야 배구가 재밌어지지 않을까요? 선수들 연봉도 더 많이 올라가고요.”
장병철은 인터뷰 말미에 향후 진로와 관련해서 플레잉코치 직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프로팀이 아닌 실업팀이라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운동을 병행하며 지도자 생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밝혔다. 그러나 모든 건 불투명하다. 플레잉코치를 할지, 코치로 갈지, 아니면 영원히 배구계를 떠날지, 당분간은 계속 더 고민을 하겠다는 게 장병철의 속마음이다.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