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계약만 믿다 뒷수습 ‘허둥지둥’
▲ 연합뉴스 | ||
볼트와 같은 선수는 보통 육상 전문 에이전트에 의해 움직인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은 엄청난 명예가 주어지는 까닭에 아무리 대스타라고 해도 빠짐없이 출전한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이 주관하는 그랑프리투어는 명예와 함께 쏠쏠한 출전료와 기록수당도 있다. 그래서 대스타들은 보통 그랑프리 대회는 골라가며 출전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레벨이 낮은 그랑프리 대회나, 대구대회처럼 이렇다 할 메리트가 없는 경우는 엄청난 출전료가 아니면 보통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출전료는 선수에 따라 다르지만 장대높이뛰기 스타 이신바예바(러시아)의 경우 5만~10만 달러 정도이고, 볼트는 베이징올림픽 이후 수십만 달러에서 최고 100만 달러 이상까지 몸값이 폭등했다. 참고로 마라토너 이봉주도 전성기에 A급 국제대회에 나갈 때 10만 달러까지 초청료를 받은 바 있고 ‘골프황제’ 우즈의 초청료가 300만 달러 안팎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육상선수들은 보통 1년 스케줄은 미리 확정돼 있는 경우가 많고, 늦어도 수개월 전에는 출전계약을 마치는 것이 관례다.
볼트의 한국대회 출전은 대구육상관계자들이 지난 1월 자메이카를 방문하는 등 일찍부터 공을 들였다. 하지만 성과가 없었다. 8월 베를린 세계대회 현장에서도 ‘볼트 모시기’에 최선을 다했지만 확답을 얻지 못했다. 언론을 통해 ‘볼트 대구에 오나?’라는 추측성 기사가 나올 뿐이었다.
사실 이것 자체가 문제다. 대구는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 개최지로 볼트에게는 한번쯤 방문할 만한 이유가 있다. 여기에 수십만 달러의 출전료가 주어지면 충분히 초청이 가능했다. 오히려 베를린 세계대회에서 또 한 번 경이적인 성적을 내기 전에 계약했다면 몸값이 더 쌌을 것이다. 하지만 대구육상대회 주최 측은 이를 사전에 성사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한때는 대구가 볼트를 일본의 가와사키 대회(9월 23일)에 뺏긴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반면 대구대회(9월 25일)에 앞서 열리는 상하이 그랑프리대회(9월 20일) 측이 일찌감치 볼트와 출전계약을 한 것이 좋은 본보기다. 심지어 볼트의 대구대회 출전 확정 소식 자체가 대회주최 측이 아닌 볼트의 스폰서 회사가 한국지사에 연락을 취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9월 28일).
볼트의 출전이 무산되는 과정에서 대구가 볼트 측과 구두로만 계약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비난이 일고 있다. 문동후 대구조직위 부위원장은 “볼트의 에이전트로부터 볼트가 피로감이 심하고 자메이카로 돌아가고 싶어해 대구대회 참가가 어렵다는 이메일을 9월 8일 오후 늦게 받았다”고 밝혔다(볼트는 이에 앞서 9월 5일 벨기에에서 대회를 마친 후 “몹시 피곤해 막판 25∼30m는 제대로 뛸 수 없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다”며 피로함을 호소한 바 있다). 출전 계약 자체가 문서로 제대로 이뤄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위약금을 받을 수도 없다. 대구와 마찬가지로 볼트의 불참이 확정적인 상하이 그랑프리 대회 측이 중국언론을 통해 “볼트가 계약을 파기한다면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당당한 자세를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구는 이전 2007년 당시 최고 스프린터였던 타이슨 게이를 초청했다가 대회 이틀 전에 불참통보를 받은 바 있어 엉터리 행정에 대한 비난이 더욱 거센 것이다.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볼트도 문제가 있지만 허술한 계약을 믿고, 입장료 경기시간 대회홍보 등 대회의 모든 것을 볼트에게 맞춰놓고 있다가 뒷수습에 진땀을 빼고 있는 대구조직위의 모습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