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터도 ‘살생’을 한다
<1도> 상변과 중앙에서 흑백의 대마와 요석들이 얽혀 있다. 백1은 공중전의 요소, 빼앗길 수 없는 자리다. 그러나 이 9단은 중앙은 쳐다보지도 않고 흑2로 상변 대마에 총부리를 겨누었다.
이 9단은 느림과 안전운행의 대명사. 서울에서 대국장인 유성까지, 2시간이면 넉넉한데 이 9단은 3시간이 걸렸다. 경제속도를 유지하며, 1시간마다 휴게소에 들러 쉬엄쉬엄 오느라고.
그런 이 9단인데, 바둑은 요즘 변했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형세가 만만치 않다 싶으면 분연히 칼을 뽑고, 대마를 잡으러 가기도 한다.
백3, 김영삼 9단의 말마따나 까칠한 응수타진. 흑A로 나오라는 것. 그러면 백B로 나가는 흐름을 타겠다는 것. 그러나 이 9단은 콩지에 9단의 주문을 거절하며 흑4, 통렬히 건너붙였다. 대마를 잡으러 간 것이다.
<2도> 백1~흑4, 백 대마가 끊겼다. 일단은 백5로 버텨보는데….
<3도> 망설임 없이 흑1~5로 끊어 잡고, 백6을 기다려 흑7로 넘어갔다. 백8에는 흑9. 백 대마는 여기도 후수 한 집, 저기도 후수 한 집. 흑의 무서운 살수, 백 대마의 함몰이다. 백10으로 좌상귀를 망가뜨렸지만, 백 대마가 잡힌 것과는 물론 비교가 안 되고, 승부는 이걸로 끝이었다. 흑11은 용의주도한, 필요한 보강이다. <2도> 백5 때 그냥….
<4도> 흑1로 넘으려는 것은 백6에 흑7로 늦추어야 하고 백8 다음 흑A에 이어야 하니 백B로 대마가 완생한다. 한편 <2도> 백5로는….
<5도> 백1, 여기가 이른바 ‘쌍립되는 곳의 급소’ 같고, 이걸로 백 대마가 타개하는 길이 있지 않나 싶지만 안 된다. 흑2가 선수다. 다음 흑4로 그만이다. 백3으로 A에 젖혀 패로 버티는 수가 있지 않을까? 없다. 흑B로 몰고 백3 이을 때 흑C로 몰아 축. <3도> 흑11이 왜 필요한 보강이냐 하면. 흑11을 소홀히 하면….
<6도> 백1로 웅크리는 수가 있다. 흑2로 파호해야 하고, 백3에는 흑4도 절대, 계속해서 백5부터 흑8까지 외길을 거쳐서 백9로 여길 끊는 수가 있는 것. 흑10으로 몰 수밖에 없는데, 백11, 13으로 나가 A, B를 맞보기로 흑이 걸리는 것.
그러면 백은 왜 <3도> 백10으로 <6도> 백1 이하를 결행하지 않았을까? 그때는 사정이 또 좀 다르다. 백1이면 흑3으로 젖히고 백2, 흑4, 백5 때 흑C로 이 패를 하는 것인데, 흑은 부담이 없고, 백은 팻감이 없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