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킹’ 넘는 데 ‘올인’할 겁니다
그래서인지 최순호 감독은 김영후에 관해선 좀 더 ‘예민하게’ 관리를 하는 편이다. 선수한테 최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인터뷰도 가급적이면 사양하는 중이다. 시즌 잔여 경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사활을 걸고 있는 팀 사정도 있지만 미디어의 관심이 김영후한테만 쏠리다보면 자칫 선수 자신이 오버하거나 또는 위축될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다.
2주의 기다림 끝에 지난 9월 16일, 강원FC 숙소에서 김영후와의 인터뷰 자리가 마련됐다. 예상대로(?) 모범 답안만 내놓는 바람에 뭔가 독특하고 색다른 대답을 원했던 기자가 상당히 애를 먹기도 했지만 늦깎이 신인다운 녹록지 않은 축구 인생을 조금은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학교에서는 절 알아보는 사람들이 없어요. 사인 요청도 받아보지 못했는걸요? 강릉 시내로 나가면 상황이 많이 달라지지만 이상하게 학교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는 것 같아요.”
관동대학교 유니버스텔의 7, 8층을 숙소로 사용하고 있는 강원FC. 1층 로비에 3대의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그중 1대는 7, 8층 전용 엘리베이터다. 선수들만 주로 사용하지만 1층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보면 자주 부딪힐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학생들. 더욱이 그곳은 여대생 기숙사도 함께 있는 탓에 주로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지만 김영후는 아직 사인 요청을 받아보지 못했다며 볼멘소리다.
김영후가 강원FC에 입단할 때만 해도 ‘내셔널리그의 판 니스텔로이’ ‘N리그의 괴물’로 불리는 등 3년간 리그를 평정하다시피 한 화려한 성적표로 인해 큰 기대를 모았다. 울산현대미포조선에서 한마디로 날렸던 선수라 프로 무대에 발을 내딛은 그한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영후는 내셔널리그에서처럼 자신감 있는 플레이를 펼치지 못했다.
“정말 꿈에 그리던 프로무대였고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에 처음엔 자신감이 차고 넘쳤어요. 물론 내셔널리그랑 수준이 다를 거라 생각은 했지만 열심히 한다면 크게 어렵진 않을 거라고 믿었죠. 그런데 막상 부딪쳐 보니까 힘든 부분이 너무 많았어요. 무엇보다 제 자신한테 실망감이 컸습니다.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었나 싶기도 했었고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던 김영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릇이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도 있었다.
“체력적으로 너무 벅차더라고요. 경기 템포나 수비수들의 압박이 대단했습니다. 특히 수원의 곽희주 선수는 마크나 스피드가 월등했어요. 제가 뛰어 갈 위치를 정확히 꿰뚫고 미리 가서 자리를 잡고 있는 거예요. 속으로 ‘귀신 아니야?’ 싶었다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그 정도에 무너질 김영후가 아니었다. 전반기 때 10경기 중 2골에 불과했던 그는 3주간의 A매치 휴식기 동안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체력 훈련에 집중했다.
숭실대를 거쳐 미포조선에 입단한 김영후는 2005년 신인 드래프트를 잊지 못한다. 대학무대에서 득점왕과 MVP를 수상하는 등 나름 괜찮은 스펙을 구축했다고 생각했지만 프로팀으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다.
“실망감이 굉장히 컸어요. 물론 다른 사람의 눈에는 제가 많이 부족해 보였겠죠. 그래도 대학에서 득점왕에다 MVP를 탔는데 왜 지명이 안 됐는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동안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프로에 입단하지 못하니까 허망하더라고요. 결국 미포조선에 입단했지만 팀이 울산에 있는 데다 처음엔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해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잠시 향수병에 빠져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는 김영후는 내셔널리그에서 2006년부터 3시즌을 보내며 2006년 내셔널리그 신인왕과 득점왕을 독식했고, 2007년 MVP, 2008년 득점왕을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29경기에 나서 31골을 집어넣었고 8경기 연속골이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괴물’이란 별명이 저절로 붙을 수밖에 없는 놀라운 성적표였다.
“대학 4학년 전까지만 해도 전 축구를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어요. 그냥 평범한 선수였죠. 그러다 실업팀에서 최순호 감독님을 만난 이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감독님께서 선수 시절 저랑 같은 포지션이셨기 때문에 더 많이 배우고 비슷해지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외아들인 김영후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축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부모님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고 한다. 대학 입학 전까지 경기장에 한두 번 와 보셨을 정도로 부모님의 반응은 냉정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한 이후 부모님도 조금씩 달라지셨단다.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어요. 운동을 좋아했고 태권도, 육상 등으로 상을 받곤 했어요. 부모님 입장에선 그렇게 반대하셨던 축구를 통해 대학을 가게 됐으니 얼마나 기쁘셨겠어요(웃음). 대학생이 된 후부턴 경기장에 나오시더라고요. 지금은 강원FC의 열렬한 팬이 되셨죠.”
김영후는 2년 전 친구와 수원월드컵경기장을 방문했다. 숭실대 동기인 양상민이 뛰는 경기를 보기 위해서였다. FC서울과 경기를 벌이는 모습을 보며 ‘난 언제쯤 이렇게 많은 관중들 앞에서, 그것도 월드컵경기장에서 뛰어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부러웠습니다. 내셔널리그에는 관중들이 많아야 100명 정도 되거든요. 경기장 시설은 또 어떻고요? 프로 유니폼을 입고 팬들의 열띤 응원을 받으면서 뛰는 선수들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과연 저한테도 프로 유니폼을 입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고요. 그랬던 제가 올 시즌 수원월드컵 경기장에서 프로 유니폼을 입고 2골1도움을 기록한 적이 있었어요. 그날 경기 후 진짜 기도 많이 했습니다. 꿈이 현실로 이뤄졌으니까요.”
시즌 초반 부진한 모습을 보였던 김영후는 신인왕 타이틀은 ‘감히’ 떠올리지도 못했다고 한다. 인천유나이티드의 유병수가 일찌감치 앞서나간 탓에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고.
“그때는 신인왕이고 뭐고 그저 경기장에만 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경기 출전 시간이 점점 줄어들어서 내심 불안했었거든요. 신인왕은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자신의 페이스를 잃지 않고 꾸준한 모습을 보여야만 골도 넣고 도움도 되고 하더라고요.”
득점왕 경쟁에 대해서도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김영후는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전북 현대의 이동국을 이전부터 가장 좋아했던 축구선수였다고 고백한다.
“이동국 선배의 체격과 골 감각 등이 항상 부러웠어요. 월드컵을 앞두고 아픔도 많으셨지만 그래도 최고의 스트라이커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죠. 그런 분이랑 경쟁을 벌일 수 있다는 게 영광이고 또 많은 자극도 돼요. 끝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모르지만 남은 경기동안 모든 걸 다 쏟아 붓고 싶어요.”
요즘 K리그 골키퍼들한테 가장 위험한 인물로 꼽히는 선수가 김영후다. 지난 6월과 7월 연이은 경기에서 두 차례나 골키퍼를 기절시켰기 때문이다. 전북현대전에서 상대팀 골키퍼 권순태는 김영후와 부딪혀 뇌진탕을 일으켜 교체됐고 포항전에서도 골키퍼 김지혁이 김영후와 충돌 끝에 뇌진탕과 턱까지 다쳐 18바늘을 꿰맸다.
“저도 골키퍼들 못지않게 부상이 컸다고요. 오른쪽 이마를 18바늘 꿰맸고 오른쪽 눈썹 윗부분을 7바늘을 꿰맸거든요. 포항전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아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뛰었어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실려나간 골키퍼의 상태가 걱정돼서 경기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죠. 골키퍼들이 절 무서워한다고요? 지금은 제가 골키퍼를 무서워해요. 이젠 제 이마에 더 이상 꿰맬 자리도 없단 말이에요.”
강원FC의 김원동 사장이 시즌 마친 후 흉터를 없애주는 수술을 시켜주기로 약속했다고 말하는 김영후는 구두약속만 받은 상태라 팀이 6강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면 서면으로 성형수술 약속을 받아내야겠다며 오랜만에 우스갯소리를 한다.
김영후는 ‘괴물’이란 별명에 어떻게 생각할까.
“가끔 야구를 보면 류현진 선수가 ‘괴물’로 불리더라고요. 신인 때 굉장히 좋은 활약을 펼쳐서 ‘괴물’이란 별명이 붙은 거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으면 좋겠어요. 그 의미가. ‘괴물’이란 별명이 좀 강하게 보이나 봐요. 사람들이 저한테 접근하길 어려워해요. 인상도 그리 편한 편은 못 되잖아요. 내셔널리그 때부터의 별명인데 성적이 안 좋았다면 이런 닉네임도 사라져 버렸겠죠.”
요즘 국가대표팀 허정무 감독의 인터뷰 때마다 등장하는 이름이 김영후다. 아직 태극마크 경험이 없는 김영후를 과연 국가대표로 불러들일지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 자연스레 김영후도 조금씩 마음을 부풀릴 수도 있을 텐데 김영후는 태극마크에 대해선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한 번이라도 뽑혀봤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아요(웃음). 그러나 제 포지션에 너무나 훌륭한 선수들이 많고 아직 K리그에서 경험도 다 쌓지 못했는데 어떻게 태극마크를 달 수 있겠어요. 이번 월드컵보다는 다음 월드컵에 도전하고 싶어요. 욕심보다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았으면 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만이라도 올려놓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주전으로 뛰지 못한다고 해도요.”
인터뷰를 마치고 숙소 앞 잔디 마당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그때 갑자기 여대생 기숙사에서 ‘김영후 파이팅!’하는 소리가 들렸다. 김영후가 신기한 듯이 올려다보고선 “절 알아보는 학생들도 있네요”하며 환하게 웃는다.
강릉=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 K리그의 주목받는 신인 김영후는 올 시즌 득점왕과 신인왕을 노리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지운아 평생 딸랑거리면서 살게”
‘괴물’ 김영후한테는 6년째 사귀고 있는 여자친구이자 애인이 있다. 바로 동갑내기 김지운 씨. 대학 2학년 겨울에 만나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그들은 몇 차례 헤어질 뻔한 위기가 있었지만 잘 극복해 나갔다.
“세 번 정도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어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직업이요? 수입차 회사에서 사무직 일을 하고 있는데 곧 그만둔다고 하네요. 회사원이라 경기장에는 자주 못오지만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주말 경기가 열릴 땐 꼭 보러 와요.”
여자친구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난다는 김영후는 이변이 없는 한 ‘그녀’와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다.
“올 시즌 이후나 내년 시즌 마치고 꼭 (결혼을) 할 생각이에요.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결혼을 했으면 좋겠는데 제 욕심만 부릴 순 없겠죠?”
워낙 표현하는 데 서툴러서 여자친구로부터 투정도 많이 받았다는 김영후한테 지면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고 ‘닭살스러운’ 주문을 했다. 한참 망설이다가 던진 대답이 다음과 같다.
“지운아! 운동선수의 여자친구로 사는 게 굉장히 힘들다는 거 잘 알아. 그래도 잘 이해해주고 배려해줘서 너무 고맙다. 결혼하면 평생 너의 ‘종’으로 딸랑거리면서 살게. 진심이다. 알았지?”
강릉=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