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린 대금 납부·재고 확보에는 부족한 규모…조속한 인수자 찾기 과제, “분할매각도 검토해야”

서울회생법원은 7월 21일 홈플러스의 즉시항고 사유를 받아들여 7월 3일 내렸던 회생절차 폐지 결정을 취소했다. 회생계획안 가결기간도 법정 최종기한인 9월 4일까지 연장했다. 법원은 홈플러스가 메리츠금융그룹의 2000억 원 DIP(긴급운영자금) 대출을 확보하면서 폐지 결정의 근거였던 운영자금 부족이 해소됐다고 판단했다. 홈플러스는 이후 관계인집회에서 채권자 동의를 받아야 회생계획을 인가받을 수 있다.
홈플러스가 지난 6월 29일 서울회생법원에 제출한 수정회생계획안을 놓고 심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수정회생계획안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수익을 내거나 지역 거점 역할을 하는 대형마트 67곳을 중심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점포와 본사 인력을 줄이기로 했다. 이후 자가점포와 비핵심 부동산을 유동화해 운영자금과 채무 변제재원을 마련한 뒤 법원 허가를 받아 대형마트·온라인 사업의 제3자 매각을 추진한다.
금융권에서는 2000억 원을 홈플러스의 영업 정상화 자금보다 회생계획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자금으로 보고 있다. 금융업계 한 관계자는 “2000억 원을 조달하면 법원이 요구한 조건을 충족해 회생계획을 다시 심사받을 수는 있지만 그때부터가 시작”이라며 “이미 쌓인 상품대금과 임금 등을 지급하고 나면 매대를 다시 채울 자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수정안의 공익채권 변제계획표에 반영된 원금은 신규 DIP 2000억 원을 포함해 1조 1243억 원이다. 상품대금 4102억 원과 미지급금 1602억 원, 리스료 미지급금 1291억 원, 퇴직금 사외예치 부족분 649억 원에 큐리어스파트너스 DIP 600억 원과 MBK DIP 1000억 원 등이 포함됐다. 공익채권은 회생절차와 관계없이 수시로 그리고 회생채권보다 우선 변제해야 하는 채권이다.
1조 1243억 원 전부를 홈플러스가 즉시 현금으로 상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MBK가 빌려준 1000억 원은 회생계획상 변제 대상에서 제외됐고 큐리어스파트너스 대출 600억 원의 원금은 만기에 연대보증인들이 갚도록 돼 있다. 이를 제외해도 상품대금과 미지급금, 리스료, 퇴직금 부족분은 약 7644억 원이다. 신규 DIP 2000억 원은 이 가운데 일부를 지급하면서 매장 재고와 운영비까지 마련하는 데에 쓰인다.
유통업계에서는 대형마트 한 곳의 재고를 정상 수준으로 채우는 데 50억 원 안팎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추산을 67개 점포에 단순 적용하면 약 3350억 원이, 전 점포를 한 번에 채우지 않고 절반 수준의 재고만 확보해도 1600억 원 이상이 들어간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밀린 대금을 일부 갚는다고 납품업체가 곧바로 예전처럼 상품을 넣는 것도 아니다”며 “다시 대금이 묶일 수 있다는 불안이 해소되지 않으면 공급 재개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2000억 원의 역할은 M&A 협상을 이어갈 수 있도록 매장을 가동하는 데 가깝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2000억 원으로 현재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며 “급한 대금을 지급하고 매장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해 M&A 협상력이 더 떨어지는 것을 막는 자금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매출이 다시 발생하는 모습을 보여야 인수 협상이 진행될 수 있고 인수자가 추가 자금을 투입해야 완전한 정상화 단계로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홈플러스는 2025년 6월부터 인수자를 물색했지만 같은 해 11월 공개매각 본입찰에 응한 곳이 없어 통매각이 무산됐다. 이후 익스프레스 사업부를 NS쇼핑에 1206억 원에 넘기고 대형마트 점포 37곳의 영업을 중단했다. 익스프레스 매각가격은 당시 업계에서 거론된 3000억 원 안팎의 기대치에 크게 못 미쳤다. 상대적으로 사업성이 양호한 익스프레스를 먼저 떼어낸 만큼 대형마트와 온라인 사업만으로 새 인수자를 찾아야 하는 부담도 커졌다.
유통업계에서는 통매각 당시와 다른 인수 조건이 제시되지 않으면 결과가 달라지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통업계 다른 관계자는 “인수될 기업이었다면 이미 주어진 기간에 인수자가 나왔을 것”이라며 “2000억 원으로 영업을 연장해도 가격이 그대로라면 인수자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홈플러스 노동조합은 매장 영업을 정상화하고 인수자를 찾는 과정에서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추가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7월 21일 국회 정무위원회 간담회에서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수 의향 기업의 자금이 부족할 경우 정책금융을 공급할 의향이 있는지 묻자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경영 정상화에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검토하겠다는 취지로 답했다.
최철한 마트산업노조 홈플러스지부 사무국장은 “홈플러스가 회생계획 인가 이후에도 영업을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M&A가 구체화되면 일부 정책자금 지원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 세금으로 홈플러스에 무턱대고 자금을 투입하기는 어렵다. 과거 공적자금 투입 과정에서 손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홈플러스가 보유한 매장과 부동산을 토대로 담보를 설계하고 이해관계자들이 각각 얼마를 부담할지 정한 뒤 지원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홈플러스는 M&A를 추진하는 동안 부동산과 비영업자산을 매각해 채무 변제와 영업 유지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수정안에 반영된 자산 처분액은 약 1조 6433억 원이다. 유성점 1230억 원과 동광주점 505억 원, 야탑점 800억 원, 서면점 매각 잔금 257억 원 등이 포함됐다. 전체 처분액의 약 69%인 1조 1401억 원은 회생계획 인가 후 첫 회계연도(1차 연도)에 비핵심 자가점포를 팔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일부 점포는 매각이 성사돼도 임차료 부담이 새로 발생한다. 유성점은 1230억 원에 매각한 뒤 개발된 건물의 판매시설에 15년간 다시 입점하고 동광주점은 505억 원에 팔아 현재 건물을 최장 20년간 임차하는 조건이다. 매각대금은 담보권자 변제와 운영자금에 사용할 수 있지만 홈플러스는 이후 임차료를 계속 지급해야 한다. 비핵심 점포 매각가격이 계획보다 낮아지거나 거래 일정이 밀리면 다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릴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빠른 시일 안에 매각 협상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어렵게 마련한 DIP 자금도 영업비용으로 소진될 가능성이 높다”며 “통매각만 고집하기보다 이마트·롯데마트 등 기존 유통업체나 오프라인 판매망이 필요한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분할매각을 추진하고 고용승계를 약속한 인수자에게 정부가 세제·금융 지원을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MBK도 가격을 낮추고 손실을 감수해 직원과 협력업체의 피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매각 조건을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