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빚진 사람이 수임…더 나가면 다 죽는다”
- 중앙지검 한 층 복도 가득 채울 정도로 수사문건 넘쳐 수사관들 구속 자신감
- 홍만표 수임 이후 검찰수사 180도 변화 담당검사 인사발령…사건은 ‘무혐의’
- 롯데 수사 이후 잠잠한 ‘정운호 게이트’ 수사 맞물려 ‘전관 로비’ 의혹 재점화
[일요신문] ‘전관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홍만표 변호사 구속 이후 ‘정운호 법조게이트’에 대한 수사가 표면적으로 잠잠한 분위기다. 특히 롯데를 비롯한 대기업 사정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검찰이 법조 비리 의혹을 둘러싼 주위의 부담스런 시선을 돌리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홍 변호사는 검찰 조사에서 ‘탈세’ 혐의는 시인하면서도 ‘법조 비리’ 혐의에 대해선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홍 변호사를 조만간 재판에 세울 예정이지만 혐의를 얼마나 입증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일요신문>은 홍 변호사가 수임한 사건에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유력한 관계자를 접촉했다. 해당 관계자는 홍 변호사가 수임한 ‘CTS 감경철 회장 횡령 사건’ 당시 검찰 내부 수사팀에 직접 참여했다. 이 관계자는 “홍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한 이후 검찰 내부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고 주장했다. 당시는 말할 수 없었던 수사 과정에서의 뒷얘기도 함께 폭로했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로비 의혹에 연루된 홍만표 변호사가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2011년 12월 22일,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는 서울 동작구에 있는 CTS(기독교텔레비전) 건물을 전격 압수수색한다. 검찰은 당시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감경철 회장의 집무실과 회계팀 사무실 등에서 주요 문서를 확보하고, 감 회장 소유의 골프장 2곳에도 수사관을 보내 회계장부 등을 추가로 확보한다.
당시 감 회장은 2002년 CTS 신사옥 건축 과정에서 ‘150억 원’ 상당의 회사 돈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밖에 신한캐피탈과의 채무조정 과정과 쌈지공원 매입 과정, 가족 소유의 골프장에서도 횡령 의혹이 불거졌다. 일각에서는 횡령 금액만 모두 ‘500억 원’에 달할 것이란 얘기도 흘러나왔다.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얼마 뒤, 회계 전문가 A 씨는 검찰의 전화를 받게 된다. 내용이 너무 방대하니 한번 와줬으면 좋겠다는 전화였다. 앞서 A 씨는 CTS 비리와 관련해 상당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검찰 수사전에는 앞장서서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다. A 씨는 “압수수색 직전 검찰이 CTS 사무실 층수를 물어봐 CTS 조감도를 그려 보여줬다. 압수수색 5일 후 전화를 받고 퇴근 후 검찰청에 들어갔다. 서울중앙지검 첨단수사부 1130호로 기억한다. 그분들이 그동안 작업해 놓은 것이나 궁금한 것을 검증하고 답변하는 식이었다. 전문가가 없다보니 상황 자체가 많이 열악했다. 최선을 다해 답변을 했다”라고 말했다.
하루 이틀이면 끝날 줄 알았던 A 씨의 검찰 출입은 그 이후로 계속됐다. 압수수색 물량이 워낙 많을뿐더러 추적해야 할 계좌가 수천 개에 달했기 때문이다. A 씨는 “수사관들도 이렇게 방대한 양의 압수수색은 처음 해본다고 했다. 계좌만 3300개 정도이고, 연계 계좌는 통틀어 만 개 정도라고 들었다. 검사님은 감경철 가계도를 그렸고, 수사관 두 명과 저는 회계 쪽에 매달렸다. 검사에게 보고할 때 선임 수사관은 꼭 나에게 먼저 이것저것 물어봤다. 그 이후에는 혐의 사안별로 파일을 하나씩 만들었다. 퇴근할 때 보면 캐비넷에 그 파일이 가득 찼다. 거의 나중에는 합숙하다시피 조사를 했다”라고 회상했다.
방대한 양의 계좌를 추적하다 보니 나름 자금 이동의 꼬리도 잡혔다. 다음은 A 씨가 주장하는 당시 CTS 자금 흐름이다. “17개 계열사를 조사했는데 상당 부분이 소위 얘기하는 ‘페이퍼컴퍼니’가 많이 있었다. 그때 검찰 내부에서 아예 이번 사건 페이퍼컴퍼니의 정의를 내리자고 했다. 첫째 종업원이 없다. 둘째 영업행위나 사업행위를 하지 않았다. 셋째 사업장에 사업자를 계속 두지 않았다 등이다. 이런 것을 추리니(A 씨는 계열사 6~7개 정도를 언급했다) 자금이 온라인을 통해 막 흘러간 정황이 포착됐다. 한 계좌로 들어온 돈이 또 다시 10개 계좌로 찢어져서 내려가고 최종적으로 감경철 회장의 측근으로 돈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서 ‘아 이게 전체적인 구조구나’라고 쾌재를 불렀다. 그 안에 있는 회사들은 빠져나간 돈을 ‘대손처리’하고 세금을 절감하는 식의 모양새를 갖췄다. 특히 이중에는 CTS 계열사인 K 사가 허리 역할을 했다. 일부 계열사의 세금계산서를 보곤 수사관은 ‘이거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만’이라고 혀를 끌끌 찼다”라고 주장했다.
수사는 더욱 탄력을 받았다. 압수수색 물량은 더욱 많아졌다. A 씨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한 층 복도를 가득 채울 정도로 문건이 넘쳤다. 결국 아래층 타 부서 사무실을 통째로 빌리기에 이르렀다. A 씨를 포함 외부 회계 전문가 11명이 투입됐다. 일부는 ‘기밀 유지’ 각서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수사 속도가 붙다보니 항간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도 했다. 감경철 회장이 만약 구속되더라도 ‘옥중 결재’를 통해 경영을 계속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A 씨는 “항간에 이러한 소문이 돈다고 수사관에게 보고하니 수사관이 버럭 화를 내며 ‘한번 해보라고 해. 여기가 어딘지 알어? 옛날에 여기가 물고문 했던 자리야!’라며 바닥을 가리켰다. 바닥에는 타일이 깨진 자국이 있고 삼엄해 보였다. 수사관은 반드시 구속시키고 수사 끝까지 할 것이라고 역정을 내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검찰 직원이 책상 위에 둔 탁상용 달력을 보기도 했다고 한다. 달력에는 일정이 적혀 있었는데 감경철 회장과 측근 2인의 소환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상당한 혐의점을 찾아냈고, 소환 일정이 조정됐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A 씨는 “그 무렵 수사관들이 ‘방송 탈 텐데 네가 오른쪽에 설래? 내가 왼쪽에 설까?’라고 대화를 하기도 했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구속까지는 문제없다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라고 회상했다.
A 씨는 기대감을 갖고 소환 날짜를 기다렸다. 하지만 해당 일이 되도 소환 소식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시간은 흘러 2012년 3월 무렵. 검찰 분위기가 이때쯤 뭔가 달라졌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어느 날인가. 다 털렸다고 그랬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그냥 끝내라 여기서 끝내라’라는 말 뿐이었다. 그때부터 저에게 쌀쌀맞게 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갑작스런 회의감과 피곤함이 밀려왔다. 대체 이 일을 죽자 사자 왜 했을까. 두 달간 종이를 하도 넘겨 지문이 다 닳아서 없어질 정도였다. 억울해서 계속해서 물어봤다. 그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애초 문제제기를 한 사람은 당신이기에 ‘합의를 하라’는 것이다. 심지어 합의 보는 방법까지 알려줬다. 일단 변호인을 선임하고 합의를 보면 기존에 있던 검찰과 수사관은 다 인사발령을 낸다. 새로 온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합의문만 들어오면 사인하고 끝낸다라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갑자기 180도 바뀐 분위기에 A 씨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반가운 소식 하나를 들었다. 수사팀이 완전히 해체되지 않고 일부는 남아 수사를 마무리한다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검찰 관계자에게 배경을 물어보니 의미심장한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A 씨는 “이렇게 수사 계속할 거면 그때 왜 합의를 하라고 하셨냐고 물어보니, 검찰 관계자가 ‘어쩔 수 없었다. 검찰이 빚진 사람이 사건을 수임했다. 해봤자 백전백패다’라고 했다. 그 사람이 누구냐고 하니 ‘알 필요는 없고 홍 아무개 변호사다’라고 답했다. 그 사람이 홍만표 변호사인지는 나중에야 알았다”라고 말했다.
이후로 A 씨는 수사팀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한번 기회가 돼 찾아갔지만 또 다시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한다. A 씨는 “수사팀 사무실에는 못 들어가게 하고 담배 피는 곳에서 그런 말을 했다. ‘이제는 끝내라. 여기서 더 하면 다 죽는다. 당신은 그래도 문제없겠네. 검사님하고 나하고는 죽겠구만’라고 토로했다. 이제 풀기 힘들겠구나 그때 비로소 직감했다”라며 강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결국 수사팀은 마치 예언한 듯이 해체됐다. 검찰은 2012년 11월 감경철 회장을 ‘증거부족’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됐고 잊혀졌다. A 씨는 “입사 이후로 이렇게 많은 압수물들을 보지 못했다고 검찰 관계자들은 입버릇처럼 얘기했다. CTS 본사와 17개 계열사를 살펴봤는데 증거 부족이라니 할 말이 없다. 그때 너무 허탈해 이민을 가려고 생각을 했는데 쉽진 않았다. 추운 겨울에 들어가 연말 연초를 모두 검찰에 보냈다.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고 기억이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박스> ’거물 홍만표‘ 진짜 검찰 수사에 개입했나? 아무리 전문가라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이처럼 일반인이 참여하는 것도 상당히 이례적이다. 통상 검찰은 사건에 정통한 이들의 경우 참고인으로 소환 조사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수사의 전문성과 정확성을 확보한다는 취지로 전문가를 수사위원으로 위촉하는 ‘전문 수사자문위원 제도’가 있긴 하지만, 막상 검사들이 이를 활용하는 경우는 상당히 저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사기밀이 유출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일반인이 수사 초기 단계부터 참여한 것은 거의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수사팀에 회계를 볼 수 있는 전문 인력이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수사팀이 무능력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A 씨의 주장으로 유추해 낼 수 있는 사실은 몇 가지뿐이다. 첫째 홍만표 변호사의 사건 수임 시기다. 실제로 홍 변호사는 2012년 초 CTS와 계열사인 옥산레저, 안동개발로부터 ‘1억 7000만 원’의 변호사비를 받았다. A 씨가 검찰 내부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시기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이후 같은 해 감경철 회장 측은 홍 변호사에게 2억 9000만 원의 변호사비를 추가로 전달한다. 둘째는 감경철 회장 사건을 담당한 수사팀 해체다. 감 회장 사건을 전담했던 수사팀 검사는 2012년 상반기 인사발령으로 떠났다. 이즈음 수사팀은 사실상 해체됐다. 수사를 총괄했던 첨단범죄수사 1부 부장검사 역시 2012년 하반기 인사발령으로 떠난다. 감 회장이 검찰에 소환된 시점은 2012년 7월이다. 이후 5개월이 지난 그해 11월 감 회장은 증거부족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이 같은 정황만으론 홍 변호사가 수사에 개입했는지, 감 회장의 혐의가 확실히 있었는지 여부는 단정할 순 없다. 다만 검찰 수사에 합류했던 유력한 관계자가 당시 수사 과정을 증언함으로써 홍 변호사에 대한 ‘전관 로비 의혹’ 파장은 또 다시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홍 변호사는 감 회장 사건이나 ‘정운호 게이트’ 외에도 과거 거액 수임료를 받은 사건들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홍 변호사가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부부,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 강덕수 전 STX 회장, 김광진 현대스위스저축은행(현 SBI저축은행) 회장 등의 사건을 정식으로 수임하지 않고 막후에서 맡아 처리했다는 ‘전관 로비’ 의혹이 제기됐다. 재판을 앞두고 있는 홍 변호사를 두고 검찰이 ‘전관 로비’에 대한 제대로 된 혐의 입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