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치는 순간 부모님 얼굴이...
▲ 추신수 | ||
남희석 씨의 팬티 사이즈를 묻는 질문은 정말 다시 생각해도 웃음이 나와요. 재치가 넘치시는 분 같아요. 제가 남희석 씨를 왜 모르겠습니까. 미국에서도 한국 방송을 다 시청할 수 있다는 거 잘 아실 텐데.
오늘 마침내 정말 소원했던 20-20클럽 가입에 성공했습니다. 며칠동안 너무 마음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오늘 홈런을 때렸을 때는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라고요. 홈런을 치는 순간, 부산의 부모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제 기록 때문에 마음 졸이셨을 두 분의 얼굴이 베이스를 도는 내내 제 앞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무빈이가 전화를 해선, “아빠, 오늘 꼭 홈런 쳐! 오늘은 꼭 쳐야 해, 알았지?”하고 말하는 거예요.
평소 그런 말을 잘 안 하는 녀석이 홈런 치라는 말을 하니까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고요.
어제(10월3일, 한국시간) 보스턴전에서 무안타로 타율이 2할대로 내려가자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 홈런이 18개만 되도 마음을 비웠을 텐데 19개가 되니까 조금씩 조급해졌던 게 사실이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무안타의 성적은 더 이상 욕심을 내면 안 되겠다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만들어줬습니다. 설령 무빈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도, 19개의 홈런으로 시즌을 마무리한다고 해도, 그래도 어려운 상황들 속에서 이 정도의 성적을 낸 데 대해 스스로 만족하자고 마음먹고 오늘 경기에 나섰더랬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아버지와 통화를 했어요. ‘장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버지가 항상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야구선수는 기록이 중요한데, 더 중요한 건 남들이 해보지 못한 기록을 내는 거라고요.
그래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메이저리그 20-20클럽 가입이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기록이 됐습니다.
얼마 전, 제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했던 에릭 웨지 감독이 해임 통보를 받았습니다. 웨지 감독은 시애틀에서 헤매고 있던 절 클리블랜드로 불러 들였고 변함없는 신뢰와 애정을 드러내면서 절 꾸준히 선발로 내보내셨어요.
전에도 한 번 얘기했지만 올시즌 클리블랜드의 성적은 감독의 지도력 부재가 원인이 아닙니다. 팀의 주축 선수들이 대거 다른 팀으로 팔려 갔고 젊은 선수들 위주로 멤버들이 구성되면서 선수단 전체가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시즌을 치러야 했어요.
유난히 부상 선수들도 많았고 기대를 모았던 선수들이 부진에 빠지면서 감독의 애간장을 녹인 적도 많았죠. 이제 선수들과 이별을 해야 하는 웨지 감독에게 제 기록이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제 보스턴과의 한 경기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굉장히 긴 시즌이었는데, 막상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으니까 순식간에 올시즌을 달려온 것만 같아요. 아무래도 매주 한 번씩 쓰는 일기 탓도 클 겁니다. 일주일이 어찌나 빨리 다가오던지^^.
오늘은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요. 소주 한 잔 찐하게 마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보스턴에서 추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