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 자존심 ‘치수 고치기’ 빅매치
▲ 이세돌 9단(왼쪽)과 구리 9단 | ||
10번기란 두 사람이 바둑 열 판을 두는 것. 역사적으로 우칭위엔 9단의 10번기에서 유래했다. 1914년 중국 대륙의 남동쪽 푸젠(福建)성의 푸저우(福州)에서 태어난 우칭위엔은 일찍이 바둑 천재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1928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우칭위엔의 일본 유학을 주도했고, 그를 제자로 받아들인 사람이 지난번에 말한, 그 시절 일본 바둑계의 실력자였던 세고에 겐사쿠 9단이다.
우칭위엔은 일본에 건너가자마자 바로 실력을 발휘했고 바둑 공부에 전념했다. 그는 천재였지만 훗날 세고에의 회고가 증언하듯 무서운 노력파였다.
“우칭위엔은 내 집 별채에서 10년을 살았는데도 내가 우칭위엔과 얼굴을 마주친 적은 몇 번 안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칭위엔은 도무지 방 밖으로 잘 나오지를 않았다. 거의 매일, 하루 종일 바둑 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오히려 궁금해 가끔 별채 주변을 기웃거렸는데, 그럴 때면 어김없이 바둑돌 놓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나는 소년의 집념이 한편 흐뭇했고 한편 두려웠다. 저 소년이 미구에 우리 일본 바둑을 평정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전율을 느끼곤 했다.”
귀에 익은 말이다. 우리도, 이창호를 키운 조훈현 9단의 부인 정미화 씨가 언젠가 비슷한 얘기를 했다.
“깊은 밤이나 새벽에 어쩌다 잠이 깨면 어디선가 무슨 소리가 들렸다. 창호가 이층 자기 방에서 바둑돌을 놓는 소리였다. 저 아이가 언젠가는 내 남편을 이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시절엔 오늘날과 같은 기전이 없었고, 승단대회가 유일한 무대였는데, 무풍가도를 달리는 우칭위엔에게도 만만치 않은 상대가 한 사람 있었다. ‘괴동’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면 각광받던 네 살 연상의 기타니 미노루였다. ‘기타니 도장’으로 일본 현대 바둑사에 지워지지 않는 사람. 지금 한국의 프로기사의 절대 다수가 ‘충암’ 출신인 것처럼 일본 일류 기사의 태반이 기타니 도장 출신이다.
일·중 최강 신예의 실력을 한번 보자고 만든 것이 바로 1932년 ‘시사신보’ 주최의 ‘기타니 대 우칭위엔 10번기’였다. 그러나 이건 10번기의 예고편이었고, 1939년 요미우리신문이 ‘폭탄처럼 터뜨린’ 우칭위엔 대 기타니 치수 고치기 10번기가 우칭위엔 10번기의 본격 시발이었다.
핵심과 초점은 ‘치수 고치기’였다. 맞바둑(호선)으로 출발해 10국을 진행하는 동안 예컨대 한 사람이 먼저 4연승을 하든가, 5승1패, 6승2패가 하는 식으로 승패가 네 판 차이가 나면 치수가 고쳐지는 것.
1939년에 시작된 우칭위엔의 10번기는 이후 1961년까지 장장 21년을 이어갔다. 일본의 모든 일류기사가 우칭위엔의 상대로 등장했고, 모두 우칭위에게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신화였고 전설이었다. 신화와 전설이 끝나갈 즈음 나타난 사람이 사카다 에이오였고, 거기서 현대바둑사는 장을 달리 하게 된다.
이세돌-구리의 10번기 얘기에는 이세돌을 빨리 다시 보고 싶다, 봐야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물론 그냥 10번기가 아니라 치수 고치기 10번기다. 중국은 중국대로 구리가 요즘 세계 메이저대회 5관왕이니 일 대 일 승부로 이세돌을 꺾어 구리가 세계 1등이라는 걸 공식화하고 싶은 것이고, 우리는 우리대로 구리가 5관왕이라 하더라도 그건 주변 여건이 만들어 준 의미가 크고 아직은 이세돌이 천하제일검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은 것이리라.
치수는 기사의 모든 것. 기전이 없던 시절, 일 대 일의 치수고치기는 기사의 모든 것이 걸린 글자 그대로 진검승부였다. 현행 기전의 경우는 요체는 대국료나 상금이다. 우승을 하면 큰 상금을 차지하고 명예도 올라가지만, 우승을 못하더라도 상금은 없지만 명예를 크게 잃는 건 없다. 다음에 또 나갈 수 있고, 언제나 동등한 조건으로 겨룰 수 있다. 그러나 치수 고치기에서 지면 치수가 고쳐진다. 돈으로는 치유할 수 없는 굴욕이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성사되기를 바란다. 흥분되는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상금일 것이다. 누리꾼들은 최하 10억 원은 되어야 할 것이라고들 한다. 흥행과 위험부담을 고려한다면 20억 원 정도는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스폰서는 어차피 바둑을 아는 기업이어야 할 것인데, 그렇다면 기왕에 세계대회를 주최하고 있는 삼성이나 LG, 중국에서는 춘란배 주최사 등이 공동후원하고, 거기다 대만의 잉창치 기금과 일본의 후지쓰가 협찬하는 그런 그림은 불가능할까.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