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정녕 ‘애물단지’인가요?”
▲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KIA 타이거즈 선수들이 한국시리즈 우승 기념으로 사이판 여행을 떠난 다음 날이었다. 올 시즌 FA 신청 후 심적 고통을 겪고 있는 장성호(32). 믿었던 한화마저 FA 시장에서 손을 떼면서 장성호는 갈 곳이 없어졌다. 원소속팀인 KIA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KIA와의 이별까지 염두에 두고 과감히 FA 신청을 했지만 돌아가는 시장 자체가 장성호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장성호를 둘러싼 다양한 ‘설’들이 야구계를 떠돌고 있다. KIA 팬들은 ‘레전드’를 잡아야 한다느니, 괘씸죄에 걸린 장성호가 다른 팀으로 가야 한다느니, 또 뭐 하러 FA 신청을 했느냐며 비난을 퍼붓기도 한다. 결국엔 장성호가 안고지고 가야 할 몫으로 남았다. 기자와 만나기 전날 폭음을 한 뒤 집에 들어가서 가족들 앞에서 펑펑 울었다는 장성호는 ‘장성호가 왜 이것밖에 안 되는지 모르겠다’며 또 다시 눈시울을 붉힌다.
―야구 선수들한테는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느냐, 아니면 더 춥게 보내느냐를 결정짓는 게 한 해 동안의 성적이다. 어느 겨울보다 춥게 보내고 있을 것 같은데 FA 신청한 걸 후회하지는 않나.
▲후회는 하지 않아요. FA 신청을 안 했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테니까요. 지금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게 용해요. 아주 짜증 나고 스트레스가 심해서 미쳐버릴 지경이니까요. 하루에 수십 번도 더 생각이 바뀌어요. 머리가 깨질 것만 같고.
―수십 번도 더 생각이 바뀐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다시 KIA로 돌아가게 됐잖아요. 근데 과연 제대로 계약을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트레이드 신청을 조건으로 내세워야 하나? 또는 여기서 야구를 그만둬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트레이드 신청을 하겠다는 건 더 이상 KIA에선 야구하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보이는데 맞는가.
▲제가 구단과 처음으로 FA 협상을 벌였을 때 내년에도 절 쓰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풍겼거든요. 저 또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팀에선 더 이상 야구하고 싶지 않아요. 감독님도 절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고요. 결국 트레이드를 요구할 수밖에 없잖아요.
―조범현 감독과 사이가 안 좋았다는 게 사실인가.
▲원래부터 안 좋은 건 아니었어요. 작년 가을 때 우리 팀 성적이 좋지 않았잖아요. 추석 전후로 잠실에서 게임이 있었는데 당시 제가 등이 너무 아파서 게임에 못 나가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 경기에서 아마 졌을 거예요. 그날 미팅을 하는데 감독님이 주장이란 놈이 연습도 안 해보고 미리 경기에서 빠지겠다고 했다면서 마구 야단을 치셨죠. 당장 광주로 내려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가 추석 연휴라 교통도 혼잡했고 내려갈 교통편이 마땅치 않았어요. 다음날 내려가려고 했는데 눈치가 보여서 강동우 선수랑 같이 택시 타고 밤 12시에 출발해서 다음날 아침 9시 10분에 2군 연습장에 도착했죠. 택시비가 36만 원 나왔습니다. 그때부터 조금씩 틀어졌던 것 같아요. 주장도 원래는 상조회에서 결정하는 건데 코칭스태프에서 바꾸라고 했다는 거예요. 저한테 한 마디 말도 없이 주장을 (김)상훈이로 바꾼 거였죠. 그러다 올 시즌 개막 후 부산에서 일이 터졌어요.
―부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새벽에 술 먹고 숙소 들어오다가 단장님한테 걸렸어요. 그런데 제 상태가 술이 취했거나 자세가 흐트러졌거나, 그러질 않았거든요. 그런데 감독님한테는 제가 술 먹고 늦게 들어와서 고성방가를 했다느니, 호텔에서 난리를 피웠다느니, 뭐 그렇게 보고가 된 것 같아요. 아니나 다를까, 바로 2군 내려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먼저 잘못은 했지만, 좀 억울했던 건 다른 선수도 똑같은 케이스로 걸린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선수는 2군으로 내려가지 않았거든요. 그때 절감했었죠. 감독님이 저에 대한 시각을 달리 두고 있다는 걸요.
―감독이 선수들 입맛에 다 맞춰줄 순 없다. 한 팀을 이끄는 리더는 나름의 원리원칙이 있는 것이고, 유명한 선수라고 해서 대우해줄 순 없지 않은가. 선수 기용 여부 또한 감독 고유의 권한이다.
▲물론 잘 알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감독님 부임 후부터 주전에서 밀려났고 2년 동안 부상으로 시달리며 맘 고생을 많이 했어요. 전 (최)희섭이가 KIA에 복귀한다고 했을 때도 팀을 위해선 1루수 자리를 내주는 게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외야수를 보면 되니까요. 그 당시 제가 3할 치고 있었어요. 한창 잘나갈 때라 1루수를 고집한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어요. 팀이 좋아질 수 있는데, 제 보직이 무슨 상관인가 싶었죠. 하지만 이렇게 감독님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들쭉날쭉 출장하는 데다 어느 순간부터 팀의 주축 선수가 아닌 외곽으로 밀려나는 느낌이 드니까 운동하기가 너무 어렵더라고요. 사실 시즌 중반까지만 해도 FA 신청을 할 생각은 못했어요. 규정 타석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그냥 시즌 끝나면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 요청을 할 생각이었죠. 팬들은 왜 FA 신청을 했느냐고 뭐라고 하시는데, 솔직히 내년에도 이런 상황에선 운동할 자신이 없었어요.
―그렇다면 FA 시장에 나왔을 때 다른 팀으로의 이적이 쉬울 거라고 생각했나?
▲아니요. 제 몸값이 너무 높잖아요. 보상금도 엄청나고요. 성적도 좋지 않았고 계속 잔부상이 있었기 때문에 절 데려갈 팀이 쉽게 나오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혹시 다른 팀으로부터 FA와 관련해 전화를 받은 적은 있는지 궁금하다.
▲(웃으면서) 한 군데도 없었어요. 솔직히 한화는 기대를 한 팀이었어요. 제가 봐도 한화 외엔 갈 팀이 없더라고요. 25억 원 가까이 되는 보상금만 해결된다면 연봉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한화마저 기대할 수조차 없게 되니까 정말 괴로운 거예요. 야구하고 나서 이렇게 비참한 심정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KIA 팬들은 타이거즈의 ‘레전드’로 꼽히는 장성호 선수가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는 건 원하지 않는 것 같다. 다른 팀과 1년 계약이라도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부분 때문이다.
▲역대 타이거즈 타자들 순위에서 출장 경기 수, 안타, 타점, 볼넷, 출루율 등 주요 부문은 제가 다 1위에 올라 있어요. 물론 KIA 유니폼을 벗는다는 건 너무 힘든 현실이죠. 하지만 제가 야구를 하고 싶은 욕망보다는 그 아픔이 더 크진 않다고 봐요. 가끔 이종범 선배가 부러울 때가 많았어요. 제가 좋은 기록은 더 많이 갖고 있지만 이종범 선배는 타이거즈의 간판 선수로 대접을 받고 있잖아요. 모든 건 제 탓이겠죠. 이런 저런 설명을 해도 결국 원인은 저한테 있는 거니까요.
―FA 신청 후 KIA 홈페이지에 많이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10번 정도 ‘호랑이 사랑방’에 들어가 본 것 같아요. 팬들의 비난이나 원망이 가득 담긴 글을 읽으면 순간 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글을 쓰다가 지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제가 왜 FA 신청을 했고 어떤 심정으로 지내는지, 그리고 몇몇 팬들은 제가 희섭이한테 밀려서 외야로 나갔다고 하시는데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밀린 게 아니라 팀을 위해서 제가 외야로 가겠다고 한 거라는 얘길 하고 싶었어요.
―올 시즌에는 김상현 선수가 LG에서 이적 후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프로야구 최고 스타로 떠오를 만큼 좋은 성적을 거뒀는데 지켜보는 심정이 어떠했나.
▲부러웠죠 뭐. 팀 성적도 좋고 상현이도 잘 치니까 시너지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전 제가 잘할 때는 팀 성적이 좋지 않아서 크게 부각이 되지 않았거든요. 나중엔 그것도 문제가 되더라고요. 어떤 분이 제가 개인 성적만 챙기는 이기적인 선수라고 얘기한 걸 들었으니까.
―혹시 거포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해 본 적이 있는지.
▲왜 안 해봤겠어요. 연습도 했었죠. 홈런을 많이 치기 위해서. 그런데 제가 갈 길이 아니더라고요. 제 스타일과는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냥 중장거리 타자로 가자고 마음먹었던 거고요.
―10년 연속 3할 타율을 달성하지 못했다. 9년에서 멈췄는데, 아쉬움이 많을 것 같다.
▲제일 아픈 부분이에요. 2007년 부상당했을 때 완치를 하고 경기에 나갔어야 했어요. 제가 결단을 못 내린 거죠. 그때 온전히 휴식을 취하고 몸을 제대로 만들었더라면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이 돼 있었을 겁니다.
―야구를 짧고 굵게 하고 싶나 아니면 길고 오래 하고 싶나.
▲전 구질구질하게 오래 끌고 싶지 않아요. 제 몸이 안 되는 것 같으면 과감하게 은퇴할 생각입니다. 그 시기가 멀지 않았다는 걸 항상 느끼고 있어요. 만약 KIA랑 재협상을 시작했을 때 필요없는 선수처럼 대하면 정말 옷 벗을 생각입니다. 정 안 되면 대만리그에서라도 뛰든가요.
‘사연 많은’ 장성호의 한 가지 소원은 지속적인 경기 출장이었다. 그것만 가능하다면 계약 기간도, 연봉도 전혀 미련을 갖지 않겠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4년 전 42억 원의 FA 계약을 맺고 그만큼 ‘몸값’을 했는지를 물었다. 장성호한테는 아픈 질문이었지만 그는 편하게 대답했다.
“못했어요. FA 이후 그 다음 시즌에는 아주 좋은 성적을 냈는데 2007년 부상과 경기에 제대로 나서지 못하면서 제 몫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돈에 대해 마음을 비웠어요. 하지만 FA가 되고 나서 운동을 게을리했거나 내 자신만 챙기는 그런 선수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아! 아버지
기아 붙박이 됐다고 좋아하셨는데…
▲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친구 분이랑 장기를 두시다가 쓰러지셨대요. 쓰러지시면서 친구 분께 며느리한테 전화 좀 해달라고 하신 뒤 의식을 잃으신 거예요. MRI 촬영을 하니까 피가 터졌다고 했어요. 수술해도 좋지 않으실 거라고, 잘못되면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죠. 정말 고생 많이 하셨거든요. 아들 놈 야구 한 번 시켜보시려고 어렸을 때부터 절 데리고 다니시면서 이런저런 운동도 많이 시키시고, KIA에서 자리 잡는 걸 보시며 너무 좋아하시고 자랑도 하셨고요. 그런데 작년부터 제가 힘든 모습만 보여드려 너무 죄스럽고 회한이 많이 남네요.”
장성호는 어렸을 때 아버지랑 같이 운동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집 앞 마당에 대추나무가 있었어요. 떨어진 대추로 방망이 연습을 시키셨죠. 때리면 대추가 깨지는데 안 깨진 게 있으면 할머니가 다시 주워오셨어요. 그렇게 몇 년을 연습하며 타격폼을 갖췄던 것 같아요.”
장성호의 아버지는 지금도 입원 중이고 실어증에 걸린 데다 제대로 걷기조차 힘든 상태다.
“어제 아버지 뵈러 갔다가 많이 울었어요. 괜히 저 때문에 더 아프신 것 같아서요. 병원에서 나온 후 술을 좀 많이 마셨어요. 술 마시고 집에 들어가서 와이프 앞에서 또 울어버렸죠. 제가 우니까 아내도 딸도 다 같이 울고…. 이렇게 장성호의 야구 인생도 가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버지가 완쾌되실 때 제가 계속 야구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장성호는
출생 1977년 10월 18일 신체 키 184cm 몸무게 87kg 학력 충암고 포지션 외야수 등번호 1 프로입단 1996년 해태 타이거즈 경력 해태·KIA 타이거즈(1996~현재) 수상 1999년 스포츠투데이 베스트9상 외야수부분 2009 시즌 성적 타율 0.284 경기 88 타수 271 득점 39 안타 77 홈런 7 타점 39
광주 이영미 기자=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