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바둑을 둬?”…산통 끝 첫 대회 열었다
1974년 발족한 한국여성바둑연맹은 4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학술대회 심포지엄을 개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로기사 원성진 9단의 모친이기도 한 윤재경 한국여성바둑연맹 회장은 ‘여성과 바둑’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을 통해 “여성바둑이 갖는 가치와 특징을 조명하고 향후 여성바둑계 발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며 한국여성바둑의 활동 범위를 세계로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이 행사를 열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번 심포지엄 중에는 한국 여성바둑의 역사(조선오·명지대 바둑학석사)라는 주제발표가 눈길을 끌었는데 이를 통해 한국여성바둑의 발전 과정을 들여다봤다.
한국기원에서 열린 여성과 바둑에 관한 심포지엄 전경.
# 최초의 여류대회 ‘여류왕위전’
조선오 씨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바둑의 여명기는 1963년~1973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한다. 여성이 바둑을 두어온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존재하지만 현대 여성바둑의 시작은 최초의 여성바둑대회인 여류왕위전의 출범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여류왕위전은 1963년 4월 13일 조선일보사에서 주최했는데 이 당시만 해도 여자가 바둑을 두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던 시절이라 여성들만의 바둑대회 개최는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여성의 바둑이 안방에서 공식적인 자리로 나오기까지 진행 관계자들의 권고와 설득이 많이 작용했고, 그 결과 출전을 허락받은 인원은 겨우 30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아무튼 대회는 열려 기력에 따라 갑조, 을조로 나뉘어 치러졌는데 여류왕위는 신광여중 3학년(당시) 조영숙이 차지했고, 을조는 숙명여중 1학년 윤희율이 우승했다. 올드팬들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낯익은 이름의 이들은 후에 국내 최초의 여류 프로기사가 됐다.
여류왕위를 차지한 조영숙은 우승 후 사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었는데 특히 여러 잡지사를 비롯한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은 당시 여성이 바둑을 둔다는 사실이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한편 을조 우승을 차지했던 윤희율은 당시 조영숙보다 조금 부족한 실력이었으나 점차 라이벌 관계로 성장하여 여류기객의 톱스타로 성장한다. 윤희율은 1967년 일본에서 열린 제2회 한일 학생친선바둑대회에 유일한 여학생으로 참가하여 일본 여류 아마본인방인 이노우에에게 2승, 니시다에게 1승 등 총 3전 3승을 거두는데 이는 개인적인 영광을 넘어 우리나라 여성바둑의 실력을 과시한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대회를 계기로 윤희율은 이후 여성 최초로 일본에 바둑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훗날 윤희율은 조영숙과 함께 국내 첫 여류 입단의 영예를 안게 된다.
한국 여성바둑의 여명기를 함께 열었던 윤희율(왼쪽)과 조영숙. 한복을 차려입고 대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진제공=한국기원
# 여류국수전과 대한여성기우회의 발족
1963년 제1회 여류왕위전이 1회로 중단된 이후 10년 만에 한국경제신문이 여류국수전을 개최하였다. 여류국수전은 다른 토너먼트 대회와는 달리 결승전에서 도전기 제도를 도입하여 독특한 대회방식으로 치러졌다. 3판 2승제로 진행된 이 대회는, 예상외로 일반 바둑팬들의 관심을 받아 당시 1국에서 3국까지를 KBS-TV에서 보도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이러한 매스컴을 통한 대중과의 접촉은 점차적으로 여성바둑이 대중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제1회 대회에서 강력한 우승후보로 지목되었던 윤희율과 조영숙을 꺾고 여류국수를 차지한 여성은 김상순이었다. 김상순이라는 새로운 인물의 출현은 조영숙과 윤희율의 독주 시대에 새로운 여성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로 여겨지기도 했다.
한편 YMCA 바둑클럽에 다니고 있던 고윤정, 송의순, 안윤희, 이숙자, 김미옥 등이 모여 그해 4월 대한여성기우회를 탄생시켰다. 이는 현 한국여성바둑연맹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90년대 초의 라이벌 윤영선(왼쪽)과 이영신. 윤영선은 현재 독일 함부르크에서 바둑보급에 힘쓰고 있다.
# 여성바둑의 발전
프로와 아마 양 방면에서 양적 팽창을 거듭하던 여류바둑계는 1990년 다시 부활한 여자입단대회를 기폭제로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이 입단대회에서 10대 소녀였던 남치형과 이영신이 기존의 세력을 누르고 입단하게 되었고, 이후 윤영선, 박지은, 조혜연, 최정으로 이어지는 강자들이 등장하면서 여류바둑계도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2000년대 들어 여성 바둑은 실력외적으로 방송, 보급, 교육 등 활동 분야를 확장해나간다. 군부대 바둑보급 사업과 방과 후 특기적성 과목에 바둑이 큰 인기를 모으게 된 것은 여성 바둑인들의 노고와 무관하지 않다.
심포지엄 말미에 명지대학교 정수현 교수는 여성 바둑의 발전 방향에 대해 다양한 주문을 했는데 그중에서도 ‘남성을 임원진으로 영입하라’는 대목이 눈길을 붙든다. 정 교수는 “당연하다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성바둑연맹은 회원은 물론 임원진도 모두 여성들이다. 여성바둑연맹이 여성을 위한 단체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구성원이 여성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을 바꿔 남성 사회 인사들을 영입, 유치한다면 조직의 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문했다.
일리 있는 얘기다. 여성바둑이 발전하는데 남성들의 힘이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여성바둑의 무궁한 발전을 바란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