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선생님’ 불호령이 그립습니다
▲ 고 조성옥 감독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힌 추신수. 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 전문 기자 | ||
추신수와 관련된 기사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이 고 조성옥 감독일 것이다. 어쩌면 사랑하는 아내보다, 부모님보다 더 자주 언급되는 사람이 조 감독이다. 많은 선수들을 통해 스승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전해 들은 적은 있지만 추신수처럼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사랑을 보이고, 감독을 회상할 때마다 눈물을 글썽이며, 또 조 감독의 가족, 특히 아들 조찬희 씨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스스로 안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선수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조사모’ 모임에서 추신수는 조성옥 감독이 ‘밉다’라고 표현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앞뒤를 돌아보지 못했지만, 올해는 주위도 살피고, 경제적으로 고생을 많이 한 조 감독을 위해 뭔가 해드리고 싶은 일이 있었는데 스승은 제자를 기다려주지 않았다는 원망이 담겨 있었다. 그러면서 2000년 세계청소년야구대회 때의 일화를 소개했다.
“부산고 시절, 전국대회가 많다 보니까 팔에 무리가 올 정도로 많은 등판을 했었다. 그런 가운데 청소년대표팀에 발탁이 됐고 조성옥 감독님이 대표팀 감독을 맡으셨다. 캐나다 애드먼턴에 도착 후에도 계속 팔이 아팠다. 그렇지만 팀 사정을 생각하면 아픈 걸 내색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결승전 전날, 트레이너로부터 밤 12시까지 마사지를 받았다. 어깨부터 팔목까지 테이핑을 하고 화장실에 갔다가 감독님과 마주쳤다. 내 몰골을 본 감독님은 ‘팔이 많이 아프나?’하고 물으셨다. 난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감독님은 ‘많이 아프면 낼, 던지지 마라’하고 말씀하셨고 난 고집을 꺾지 않았다.”
추신수는 당시 시애틀 매리너스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은 상태였다. 만약 팔에 이상이 있거나 부상을 당하기라도 하면 미국 진출 자체가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개인적인 목표를 위해 대표팀을 버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조성옥 감독한테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며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나 말고 대안이 없었다.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감독님은 날 내보내지 않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의 간절한 부탁과 하소연에 감독님이 어렵게 허락을 하셨다. 선발로 나가지 않았고 중간에 교체돼 등판했는데 그 경기가 연장까지 가는 바람에 12이닝까지 던진 걸로 기억난다. 정말 어렵게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모든 선수들이 얼싸안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감독님이 선수 한 명씩 악수를 하고 안아주시다가 맨 마지막에 날 안으시곤 한참을 우셨다. 우시면서 ‘신수야, 진짜 미안하데이, 내가 니한테 못할 짓 했다. 진짜 미안타’라며 흐느끼시는데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11월 초 귀국했던 추신수는 생애 처음으로 연예인처럼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 냈다. 항간에선 너무 많은 행사에 불려다닌다며 우려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지만 추신수의 설명을 들어보면 그의 행보에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어린이들을 위한 야구클리닉과 팬사인회가 있었고 화보 촬영, 시상식, 그리고 CF 촬영 등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모든 행사의 중심에는 어렵게 야구하는 유소년 선수들을 위한 수익금 마련이 존재했다. CF는 물론, 시상식에서 받은 상금이나 사인회, 화보 촬영을 통해 발생된 이익은 모두 유소년 발전기금으로 내놓았다. 한 달여 동안 내 가족들도 돌보지 못하고 휴식 없이 많은 행사들을 소화했는데 그에 따른 경제적인 가치가 유소년 발전기금으로 이어진 부분에 대해선 보람도 있었고 만족감도 크다. 물론 내 모습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있을 수도 있다. 모든 건 내가 감수할 부분이다. 또 그런 말들에 별로 귀 기울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들은 보이는 부분만 보고 말하기 때문이다.”
추신수는 한국에서 보낸 시간들 중 가장 기억나는 부분이 청각장애인들로 구성된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들과 함께 출연한 ‘천하무적 야구단’과 야구클리닉을 꼽았다.
“만약 ‘천하무적’이 단순한 오락프로그램이었다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다. 멀쩡한 몸으로도 야구하기가 어려운 가운데 청각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야구를 한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았다. 그들과 함께 어울려서 야구도 하고 생활도 함께 한다는 취지가 좋았다. 실제 그 선수들을 보고 많은 걸 깨닫고 반성도 했다. 이렇게 야구를 좋아하는데, 장애를 가진 상태에서도 이렇게 열정적으로 야구하는데, 난 그동안 성한 몸을 갖고 너무 안일하게 야구를 한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었다.”
추신수는 능력과 여건만 주어진다면 해마다 야구클리닉을 열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그로 인해 생기는 수익금은 온전히 야구 발전기금으로 내놓겠다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안타까웠던 게 야구하는 어린아이들이 점점 줄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 시즌 성적이 좋아서인지 추신수란 선수를 보고 야구하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고 말하는 어린아이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내가 박찬호 선배를 보고 야구하는 꿈을 키웠듯이 말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건 야구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나 또한 너무나 힘들게 야구를 했기 때문에 그들의 사정이 남 일 같지 않았다.”
흔히 해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금의환향 뒤 시끌벅적한 국내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면 허탈감에 사로잡힌다. 또 선수 자신도 정신없이 바쁜 시간들을 보내면서도 운동 부족에 대한 두려움과 막연한 걱정을 안고 출국한다. 조금이라도 이전보다 못한 성적을 내거나 부진하다면 ‘한국에서 바쁘게 보내더니’ 운운하며 뒷말이 나올 게 뻔하다. 그러나 추신수는 욕 먹을 수도 있지만 내년 시즌에 대한 걱정은 크게 하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잘할 자신있다. 이번에 한국서 많은 걸 보고 느끼고 안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내가 왜 야구를 잘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일단 늘어난 체중부터 빼고 천천히 몸을 만들어 나가겠다. 그 내용과 과정은 <일요신문> ‘추추트레인-메이저리그일기’ 시즌2에서 천천히 공개할 예정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일기를 계속 진행하고 싶다.”
추신수는 지난 시즌 인기리에 연재된 자신의 메이저리그 일기를 <일요신문>에 단독 공개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즌 2’를 기대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랑하는 매니저 찬희에게
조 감독 아들이란 사실 절대 잊지마!
▲ 추신수는 국내 마지막 공식 일정을 조사모(조성옥 감독을 사랑하는 모임)와 함께했다(왼쪽부터 추신수, 기자, 조찬희 씨). | ||
찬희야, 이번에 매니저 일을 하면서 여기저기서 좋은 소리보단 싫은 소리를 더 많이 들었지? 형도 다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했다. 어차피 네 일이고 네 직업이기 때문에, 그리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너로선 모든 게 좋은 경험이 되기 때문에, 온전히 네 몫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좋은 이미지는 형이 갖고, 나쁜 역할은 네가 맡아야 한다고 믿고 행동할 때는 내가 많이 미안했다. 그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잖아.
형이 떠나오기 전날 너한테 한 말 기억나니? 넌 그냥 아들이 아니라 조성옥 감독의 아들이란 사실을 결코 잊지 말라고. 그렇기 때문에 남한테 나약한 모습 보이지 말라고. 널 도와주려는 사람은 굉장히 많다. 그러나 네가 먼저 도와달라고는 하지 말라는 형의 당부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감독님 아들이기 때문에 넌 누구보다 더 강하게 잘 살아야 해. 그래서 형이 먼저 도와주기 전에는 형한테도 도와달라는 말을 해선 안 된다. 앞으론 네가 개척하고 헤쳐 나가고 겪고 견디고 버텨나가야 하는 거야.
형이 대형 매니지먼트사의 제의를 거절하고 왜 너랑 일하려고 했는지 아니? 경제적인 도움은 돈만 있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거지만 난 네가 사회 경험을 하길 바랐어. 각자의 이익들이 서로 맞물리고 충돌하는 한가운데서 네가 중심을 잡고 정리해가면서 형을 도와주길 바랐지. 당연히 어렵고 시행착오도 많이 겪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생각한 것보다 찬희가 너무 잘해줬고 네 덕분에 덜 욕먹고, 하고 싶은 일들 하면서(가족들한테는 너무 미안했지만), 복잡다단했던 귀국 일정들을 마치고 돌아왔다.
찬희야, 형이 없는 동안 너도 또 다른 사회를 경험해야 할 거야.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맡은 역할들에 최선을 다한 다음, 다음 시즌이 끝난 뒤 다시 만나자. 그땐 지금보다 서로 더 많이 성장했으면 좋겠다.
니 아나? 형이 널 많이 사랑하는 거. 고맙다. 그리고 서로 잘 살자!
애리조나에서 신수 형
조성옥 감독을 추억하며…
자신보단 어려운 학생 챙겨
▲ 조성옥 감독 | ||
롯데 자이언츠 김태민 매니저는 이런 내용을 털어 놓았다.
“이 자리에 조 감독님이 계셨더라면 얼마나 흐뭇해하시겠어요. (추)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주축 선수로 우뚝 섰고요, 한국에서도 많은 팬들이 좋아해주고요, 무엇보다 당신이 아꼈던 제자가 그 사랑을 잊지 않고 어딜 가나 감독님 얘길 꺼내며 가슴 아파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잖아요. 신수가 이번엔 워낙 바쁘고 나름 유명한 선수가 돼 있어서 이렇게 가까이 보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오늘 만나보니까 하나도 변하지 않았네요. 조 감독님이 선수 보는 눈은 정확하세요.”
김태민 매니저는 조성옥 감독이 부산고 시절, 추신수에 대해 얼마나 뜨거운 열정을 보여줬는지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신수를 고등학교 때 투수로 키우다가 타격에도 재질이 있다는 걸 발견하셨어요. 정말 혹독한 훈련을 시켰습니다.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아셨기 때문에 신수 눈에서 피눈물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도 꿈쩍도 안 하신 분이세요. 그 엄청난 훈련을, 단 한마디 불평도 없이 다 견뎌낸 신수도 대단한 놈이고요.”
장원준의 아버지 김성재 씨는 조 감독에 대해 이렇게 추억했다.
“(장)원준이의 정신적인 지주이셨어요. 원준이를 이만큼 만들어 준 분이 조 감독님이십니다. 제가 감독님 계실 때 야구부 학부모 모임 회장을 맡았거든요. 경제적으로 어렵게 지내시면서 너무 고생을 많이 하신 걸 직접 다 지켜봤습니다. 그래서 원준이가 롯데 입단했을 때 받은 계약금 일부를 드리며 인사를 했는데, 조 감독님은 그 돈을 집에 안 갖다 주시고 어렵게 야구하는 학생들을 위해 다 쓰셨어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단 한 푼도 취하지 않은 분이세요. 세상에 이런 감독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우리나라 야구계의 큰 별이 돌아가셨어요. 이런 실력있는 분이 일찍 돌아가신 건 한국 야구의 큰 손실입니다.”
조성옥 감독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놓던 장 씨는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7월 4일 작고했지만 장 씨는 여전히 조 감독만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며 고개를 숙인다. 추신수도 또 다시 눈물을 보였다. “아, 울면 안 되는데, 자꾸 눈물만 나네”하며 쉽게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지난 번 감독님을 찾아뵈었을 때 감독님 영정 사진을 보곤 깜짝 놀랐어요. 감독님이 절 보시더니 웃고 계시는 거예요. 감독님이 그곳에서 계속 웃으실 수 있도록 내년 시즌에도 더 열심히 할 겁니다.”
이영미기자=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