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하게 풀어준 뒤 빡세게 조였죠”
▲ 연합뉴스 | ||
신태용 감독이 즐겨 찾는다는 청담동의 한 ‘이자카야’ 에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띄었다. 바로 신 감독과 절친한 친구 사이인 탤런트 이종원이었다. 신 감독을 발견한 이종원이, “어이! 준우승 감독!”이라며 딴지를 걸자, 신 감독은 “야, 너 요즘 출연하는 드라마 이름이 뭐지? 하긴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내가 제목도 모르지”라며 응수한다. 100% 농담이다. 이종원이 출연하는 KBS 일일극 <다함께 차차차>는 시청률 30%를 넘어서며 일일극의 지존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이종원과는 나중에 합류하기로 하고 신 감독과 따로 자리를 잡았다. 겉으론 덤덤해 보이지만 챔피언결정전을 치른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얼굴에선 피곤함과 아쉬움이 한껏 묻어났다.
일단 첫 잔은 가볍게 ‘원샷’
―챔피언결정전이 끝난 뒤 심판 판정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었다. 명백한 오심이라면서.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나.
▲경기 끝나고 비디오를 반복해서 봤다. 더 열이 받았다. 전반 34분과 후반 27분의 페널티킥 상황은 분명 오심이었다. 페널티킥 지역 안에서 라돈치치를 방어한 전북 수비수가 골키퍼가 펀칭하듯 주먹으로 공을 쳐냈다. 중계방송에도 잡힌 장면이다. 두 번째 페널티킥도 말이 안 된다. 파울은 페널티지역 3미터 정도 벗어난 지역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당시 부상당한 선수를 보느라 직접 그 장면을 보지 못해서 항의를 못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다른 경기도 아닌 챔프전 결승전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경기 끝나고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전북의 우승을 축하한다고 말하고선 더 이상은 ‘노코멘트’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유가 있다면?
▲경기가 끝나고 라커룸에 앉아 있는데 눈물이 복받쳤다. 울고 있는 선수들한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더라. 다른 것도 아닌 잘못된 심판 판정으로 우승컵이 날아갔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힘이 들었다.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면서 계속 마음을 다잡았다. 자칫 잘못해서 이성을 잃어버리고 눈물을 쏟아냈다가는 내 성격상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노코멘트’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상하게 성남 일화는 심판과 악연이 많다. FA컵 결승전 때도 그렇고 인천과의 플레이오프전에서 퇴장을 당한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니었나.
▲사람 심리가 우리한테 좋은 결과가 나오면 심판 판정이 공정한 것 같고, 우리가 좋지 않은 결과를 얻으면 심판 탓을 하게 된다. 하지만 추울 때나 더울 때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오직 한 곳만 보고 열심히 뛴 선수들이 마지막 순간에 오심에 의해 목표가 날아간다면, 그건 누가 보상해줄까. 심판들이야 한 번 잘못 봤다고 ‘속으로는’ 생각할지 모르지만, 선수들은 한 해 농사의 운명이 걸려있는 것이다.
―좀 전에 챔프전 결승을 앞두고 이런저런 구상을 했다고 들었는데, 무슨 구상을 했는지 궁금하다.
▲우리가 이겼을 경우와 패했을 때를 상상했다. 만약 패하면 ‘아름다운 패배자’가 되고 싶었다. 상대 감독한테 찾아가서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싶었고 성남에 있다가 전북에서 멋진 활약을 보여준 김상식과 이동국한테도 축하를 아끼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너무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니까 경기가 끝난 뒤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더라. 솔직히 지금 마음 같아선 그 심판들과 ‘취중토크’를 벌이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전북이 우승한 데 대해선 진심으로 축하를 보낸다. 우승할 만한 팀이 우승했고, 최강희 감독한테 배울 점이 많았다.
―인천과의 플레이오프에서 퇴장당하는 바람에 벤치에 앉질 못했다. 그 후 관중석으로 올라가 무전기로 선수들을 지휘하면서 승승장구하자, ‘무전기 매직’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왜 무전기 회사에서 CF가 안 들어오는지 모르겠다(웃음). 인천전에서 퇴장당한 것도 솔직히 이해를 못하겠다. 심판 측에선 내가 코트를 벗어던지고 심판한테 욕설을 퍼부었다고 하는데, 맹세코 코트를 벗어 던진 적도 없고 심판한테 욕을 하지도 않았다. 코트는 의자에 얌전히 놓아뒀고 심판한테 항의를 하려고 뛰어나가자 김정우랑 샤샤가 말리는 바람에 입도 뻥긋 못하고 들어와야 했다. 나중에는 심판들이 코치가 욕을 했으니까 감독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더라. 물론 퇴장당하는 바람에 ‘무전기 매직’을 일으킬 수 있었으니까 (심판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건가?
(신태용 감독은 심판 판정에 대해 심경을 토로하다가 터키로 떠난 귀네슈 감독을 떠올렸다. “떠나기 전에 심판 판정에 대해 한마디 하고 가시지. 난 쎄게 말하고 싶어도 밥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말 못해요”라며 웃는다).
▲ 신태용 성남 일화 감독과 청담동의 한 식당에서 ‘취중토크’를 했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전혀 서운한 마음이 들진 않았다. 처음엔 (김상식이) 많이 섭섭했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팀에서 내보낸 데 대해 고마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식이는 팀을 나간 이후에도 전화를 해왔다. 자신은 괜찮으니까 너무 불편해 하지 말라고 했고, 나 또한 오해하지 말고 서로 잘해보자고 말해줬다. 난 (이)동국이보다 상식이랑 (김)영철이한테 너무 미안했다. 구단에선 동국이를 잡으려고 했다. 상식이랑 영철이는 내보내고. 내가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상식이랑 영철이는 성남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그런데 어떻게 두 선수를 내보내고 동국이를 잡을 수 있겠나. 잡으려면 두 선수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결국 세 명이 다 같이 나가게 된 것이다. 상식이랑 영철이는 나랑 같이 뛰었던 선수들이다. 그런 선수들을 내보내기가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그 선수들이 다른 팀에서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게 정말 고마웠다.
―평소 숫기 없고 말수 적은 김정우를 주장 완장을 차게 한 것도 흥미로웠다.
▲처음에 정우한테 주장을 맡기고 나서 3일 정도 지나니까 절대로 주장을 못하겠다고 하더라. 황당했다. 감독이 맡겼는데 못하겠다는 선수가 생겼으니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정우가 말하기를 성격상 주장은 자기랑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마인드를 바꾸라고 충고했다. 왜 항상 2인자 인생에 만족하느냐고, 너도 당당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한다고, 1인자와 2인자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설득하면서 주장을 맡겼다.
―비록 감독대행이었지만 39세의 나이에 프로팀 사령탑을 맡고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선수들 합숙을 없애고 다른 팀보다 휴가와 휴식 시간을 더 많이 주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내가 코치 경력이 있나, 감독 경력이 있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성남에서 오랫동안 주장을 하며 박종환 감독님, 차경복 감독님한테 배운 노하우를 우리 선수들한테 맞게끔 다시 풀어내는 방법밖에 없었다(신 감독은 이 부분에서 ‘우리 구단도 미쳤지. 어떻게 초보 중에 왕초보한테 팀을 맡기냐고. 빅3에 들어가는 팀에서 말이야’라고 표현했다^^). 차 감독님 계실 때는 감독님과 휴가 일수를 놓고 잦은 의견 충돌이 있었다. 난 가급적이면 선수들이 많이 쉴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나선 ‘빡세게’ 훈련을 시키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는 편이었다. 게임에서 졌다고 해서 절대 고개 숙이지 말고 이동 중일 때 버스 안에서 더 크게 떠들고 웃으라고 자주 강조한다. 놀 땐 화끈하게, 경기할 때는 집중해서 하자고 말했었다. 그런 부분들이 선수들과 잘 맞물린 것 같다.
―프로 감독 데뷔 후 첫 승을 홈에서 벌어진 포항전에서 이뤄냈다. 첫 승 이벤트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레슬링 국가대표 출신 심권호와 함께 레슬링 유니폼을 입고 춤을 췄는데, 누구의 아이디어였나.
▲이벤트 아이디어 때문에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이미 웬만한 이벤트는 선배 감독들이 다 한 상태라 뭔가 기발한, 신태용만의 이벤트가 필요했다. 공모도 해봤지만 신통한 게 없었다. 그러다 문득 레슬링 세리머니가 생각난 것이다. 심권호랑 절친한 사이라 선뜻 응해줘서 할 수 있었다. 그 이벤트가 끝나니까 그제야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었다. 사실 첫 승의 감격보다 이벤트를 무사히 치렀다는 사실이 훨씬 더 기뻤다.
프로축구 최연소 사령탑인 신태용 감독은 명절 때마다 다른 팀 선배 감독들한테 ‘알아서’ 인사를 한다. 지난 추석 때는 통뿌리 인삼을 보냈는데 그 반응이 재밌다. “어떤 감독님은 어린 놈이 기특한 생각을 했다며 고마워하시는데 어떤 분은 그냥 ‘생까시더라’고. 그래서 혹시 배달 사고가 났나? 하고 의심을 했었다니까 하하. 그중 한 분이 누구냐고? 선홍이 형!(황선홍 감독)”
톡톡 튀는 언행으로 선수 때부터 기자들한테 풍부한 기사거리를 제공했던 신 감독은 인터뷰 말미에 이런 마무리로 기자를 뒤집어지게 만들었다. “난 (홍)명보 형이 감독하는 게 너무 신기해.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신태용이가 감독하고 있다는 사실이지. 자, 마시자고. 이번엔 꺾기 없기야. 다시 원샷!”
절친 이종원과 토크 배틀
“초짜의 준우승은 대단한 일”
▲ 신태용 감독과 인터뷰 중 친구 이종원이 합석했다. | ||
“초보 감독이 준우승을 한 것도 대단한 성적이죠. 전 6위 안에만 들어도 다행이다 싶었거든요. (김)상식이도 빠지고, 처음에 우여곡절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태용이 실력보다 운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하하.”
이종원은 신 감독이 프로 지도자로 데뷔한다는 얘길 듣고 이런 말을 해줬다고 한다.
“‘너 길어야 3개월 가겠다’라고 말했어요. 너무 빠르다는 생각도 했었고. 코치 경험이 없는 게 시즌을 길게 치르면서 발목을 잡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었고요. 의외로 잘 헤쳐나가더라고요. 아무래도 최근까지 선수 생활을 했던 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선수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뛰는지 너무 잘 알거든요. 그런데 그 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어요. 주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니까요.”
그냥 친구가 아니었다. 이종원은 성남 일화의 팀 사정과 감독 신태용의 성향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지난 번 챔피언결정전 1차전 때 직접 경기장 가서 봤거든요. 제가 일화 쪽이라 그런지 심판들이 좀 편파적으로 경기를 보는 것 같더라고요. 많이 아쉬웠어요.”
스포츠 마니아로 소문난 이종원은 10여 년 전 연예인축구단에서 선수로 뛰며 우연히 선수 신태용을 만났고 자선행사를 하며 개인적인 친분을 쌓은 후부터는 진한 우정을 주고받는 친구가 됐다. 1월 말에 끝나는 드라마가 현재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데 상대역으로 나오는 심혜진과 결혼을 하는지가 궁금하다고 묻자, “아마 안 하게 될 걸요? 결혼식장에 안 나타나는 걸로 알고 있어요”라고만 귀띔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기자에게 “태용이 기사 좀 잘 써주세요. 겉으론 솔직담백하지만 속은 아주 깊고 정도 많은 친구입니다”라며 마지막까지 친구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다섯자 토크
서포터즈 땡큐베리잉
‘입담’에 관한 한 스포츠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신태용 감독과 다섯 자 토크를 해봤다.
―전북 최강희 감독은 어떤 사람?
▲봉동 이장님
―최고의 멋쟁이 감독은 누구?
▲강원 최순호
―이유는
▲너무 젠틀맨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팀은?
▲경남 에프씨
―군대 간 주장 김정우에게 하고 싶은 말
▲정신차려라
―이동국에게 하고 싶은 말
▲축하합니다^^
―김상식에게 하고 싶은 말
▲너, 용됐다 잉
―심판한테 하고 싶은 말
▲잘 살아 보세
―성남 일화 서포터즈에게 하고 싶은 말
▲땡큐 베리 잉
이영미 기자=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