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장’이 부실하면 죽도 밥도 안된다
▲ 남아공 월드컵을 6개월여 앞두고 전지훈련을 하기 위해 남아공에 입성한 축구대표팀 선수들. 잠비아전의 완패 충격을 잊고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오는 6월 남아공월드컵에서 맞붙을 팀은 모두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르헨티나는 어쨌든 우승후보다. 그리스, 나이지리아도 한번쯤 해볼 만한 상대일 뿐,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하나도 놓치지 말고 모든 면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수비가 기본이다
스포츠계에는 “공격이 강한 팀은 한 경기는 이길 수 있지만 우승을 하려면 수비가 강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축구뿐만 아니라 모든 종목에 적용되는 금언이다. 월드컵에서 맞붙을 팀은 대부분 우리보다 강하다. 무엇보다 수비가 흔들리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수비의 핵은 이정수(가시마)다. 공격수 출신 이정수는 빠른 몸놀림과 뛰어난 개인마크 능력을 지녔다. 이변이 없는 한 월드컵 3경기를 모두 뛸 것이다. 이정수와 짝을 이룰 중앙 수비수를 찾는 게 숙제다. 조용형(제주), 곽태휘(교토), 강민수(수원)가 후보자다. 최근까지는 조용형이 주로 호흡을 맞췄지만 작은 키(1m82)가 마음에 걸린다. 곽태휘(1m85) 강민수(1m86) 중 한 명이 그리스전에서 이정수와 짝을 이룰 공산이 크다.
수비의 생명은 고정된 멤버의 반복훈련이다. 그래야만 빈틈이 줄어들고 조직력이 촘촘해진다. 수비에서 창조적인 플레이를 하다가는 우스갯소리처럼 우리 선수까지 속일 수 있다. 특히 한국수비의 약점은 세트피스다. 그리스는 공중볼 능력이 탁월하고 아르헨티나는 킥력이 좋은 선수들이 많다. 나이지리아도 가공할 만한 중거리 슈팅을 쏘아댄다. 세트피스 수비가 걱정되는 이유다.
▲ 남아공월드컵 예상 멤버(4-4-2) | ||
3경기를 모두 0-0으로 비긴다면 수비는 대성공이다. 그러나 16강 티켓은 잡을 수 없다. 1승1무1패도 불안하다. 1승2무 또는 2승은 거둬야 16강을 바라볼 수 있다. 결국 한두 경기는 이겨야한다.
그동안 주전 투톱으로는 박주영(AS모나코)과 이근호(주빌로)가 뛰었다. 호흡도 좋았고 성과도 좋았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보다 전력이 떨어지는 아시아팀을 상대했을 뿐이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또 다른 공격 옵션이 필요한 이유다.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스리톱 변환이다. 수비시에는 4-5-1로, 공격에서는 4-3-3으로 변하는 형태다. 한국이 월드컵에서 쓸 가능성이 높은 시스템이다. 핵심은 원톱 공격수다. 이동국(전북), 김신욱(울산), 하태균(수원) 등이 테스트를 받고 있는 가운데 아직까지는 이동국에 무게가 실린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스리톱을 받치는 삼각형 형태의 미드필더진이다. 공격형을 1명, 수비형을 2명 놓는 정삼각형 미드필더진은 수비에 중점을 둔 것이다. 공격형에는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김두현(수원)이 나서게 된다. 강한 상대와 싸울 때 주로 구축하는 미드필더 형태다. 반대로 공격형 2명, 수비형 1명을 배치하면 공격적으로 변한다. 우리가 동점골 또는 역전골이 필요할 때 꺼내들 카드다. 박지성, 기성용(셀틱), 이청용(볼턴)은 4-4-2든, 4-3-3이든 이미 공격요원으로 굳어졌다.
#체력이 관건이다
기술이 좋고 전력이 강한 팀과 싸울 때 승부를 결정하는 키워드는 체력이다. 체력은 단기간에 키울 수 없다.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지금부터 서둘러도 시간은 많지 않다. 게다가 한국 전력의 핵인 유럽파는 2009~2010시즌이 끝난 뒤 월드컵을 치러야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다운될 수밖에 없다.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박지성, 이영표의 활약상이 두드러지지 못한 것도 체력문제가 컸다. 어떻게 보면 박지성이 맨유에서 과거처럼 많은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게 오히려 대표팀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경기에서 체력이 중요하지만 그 중 체력이 가장 필요한 경기는 2차전 아르헨티나전이다. 아르헨티나는 1,2차전을 모두 해발 1700m 안팎 고지 경기장에서 치른다. 물론 월드컵 베이스캠프도 그 근처에 마련한다. 반면 한국은 1차전을 평지에서 치른 뒤 아르헨티나와 싸우기 위해 고지로 올라간다. 이용수 세종대 교수는 “한국이 강호들과 싸울 때 상대가 자기 플레이를 하지 못하게 끊임없이 괴롭힌 게 어느 정도 대등한 경기를 한 비결”이라며 “아르헨티나전 승부도 우리가 얼마나 강하고 끈질기게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전망했다.
월드컵 최종 엔트리는 23명이다. 허정무 감독은 지난해 연말 인터뷰에서 “70~80%는 확정됐다”고 말했다. 일단 박지성 박주영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꾸준히 풀타임 뛰고 있는 이영표, 이근호 등 일본파 등은 이미 주전이 확정됐다. 김정우(광주), 조원희(수원) 등 수비요원의 주축을 이루는 국내파도 대체적으로 결정됐다. 이제 현실적으로 남은 자리는 측면 미드필더와 측면 수비수 등 5~6명이다. 염기훈(울산) 김치우(서울) 등이 각축을 벌인다.
이천수(알 나스르), 중국에서 ‘조용히’ 공을 차고 있는 안정환(따롄 스더)은 현실적으로 월드컵에 뛰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허 감독이 최근 인터뷰에서 “안정환, 이천수에게도 문은 열려 있다”고 말했지만 이는 “모든 선수에게 문은 열려 있다”는 상투적인 말과 똑같다.
김세훈 경향신문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