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상속 감시 여파 제왕주 주가 빠지고 주력사 주가 오르고
“거대 경제세력의 특권적·탈법적 행태를 방치하면 정상적인 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으로 갈 수도 있다. 재벌 총수의 전횡을 막기 위해 의사결정 과정을 민주화하는 것과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즉 반칙과 횡포를 막는 것이 시급하다. 즉각 상법 개정에 나서겠다.” (6월 21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대표)
20대 국회가 문을 열면서 각 당 대표들이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일제히 ‘재벌개혁’의 기치를 내세웠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기업 쏠림 현상에 대한 곱지 않은 여론을 반영한 결과다. 하지만 여느 대선 전 국면과 달리 이번에는 한계사업 구조조정, 롯데 사태 등으로 재벌 중심 경제구조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졌다. 이는 증시에도 반영돼 이른바 총수 일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한 ‘제왕주’들의 추락이 뚜렷하다. ‘대기업의 모든 가치는 총수 일가의 이익으로 귀결된다’는 제왕주 투자법칙에 재검토가 필요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SDS의 주가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현대차그룹도 정의선 부회장이 지분을 가진 현대글로비스가 -47.8%다. SK그룹 지주사로 최태원 회장이 직접 지배하는 SK도 -33.6%다. 그나마 일찌감치 지주체제로 전환한 LG는 사정이 나은 편이어서 총수 일가가 직접 지분을 보유한 ㈜LG와 LG상사가 각각 -19.3%, -12% 수준이다.
제왕주를 위기로 몰고 간 가장 큰 원인은 편법상속에 대한 감시다. 삼성SDS, 삼성물산, 현대글로비스는 후계자들을 위해 그룹의 일감을 몰아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주가가 급등했던 종목들이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고, 투자자들도 결국 경영권 승계를 위한 주가 부양에 투자자들의 돈이 활용된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SDS 주식을 팔아 현금을 마련한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풀이했다.
삼성그룹의 전산 부문으로 덩치를 키운 삼성SDS는 최근 아예 기업분할 계획을 밝히면서도 자사주 매입 등 인위적인 주가부양은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익명의 한 펀드매니저는 “삼성SDS가 분할전략을 내놓은 것은 주식가치가 아닌 지배구조의 재조합으로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부회장 때문에 삼성SDS의 기업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던 일반 주주들로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게 된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받던 현대글로비스 주가도 부진하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경우 제왕주가 부진한 가운데 주력사들의 주가는 상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후계구도에는 썩 우호적인 환경이 아니다.
삼성전자 주가는 최근 144만 원선을 회복하며 지난해 3월의 전고점(151만 원)에 육박했다.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견고해지려면 직접 지배하는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확고해야 한다. 정치권의 재벌개혁 목소리가 높아 금산분리도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가져와야 이재용 중심의 지배구조가 완성된다. 그런데 삼성전자 주가가 높을수록 자금 부담이 커진다. 이건희 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상속받을 때도 주가가 낮을수록 세금 절대액수가 작아진다.
현대차그룹 사정도 비슷하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모비스를 통해 그룹을 지배한다. 정의선 부회장 입장에서는 현대모비스 지분 확보가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현대차그룹 주가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유독 현대모비스의 움직임만 양호하다. 현 주가는 26만 원선으로 2014년 고점인 31만 2000원보다 14% 낮지만, 지난해 7월 18만 5500원까지 떨어진 후 반등한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탄력이다. 한때 3 대 1 이내로 근접했던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기업가치 차이는 4 대 1 이상으로 벌어졌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마찰음, 롯데의 경영권 분쟁,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경영 실패, 그리고 대우조선해양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 등 악재들의 연속이다. 편법은 물론 합법적이더라도 국민정서를 자극할 수 있는 경영권 승계와 경영 관행은 이제 어려워졌다”고 내다봤다.
최열희 언론인
김승연 회장 일가 참여로 ‘의리’ 지킬까…한화 4000억 유상증자 주목 한화그룹 지주사 격인 ㈜한화가 우선주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에 나선다. 한화테크윈 인수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재계에서는 김승연 회장 일가의 증자 참가 여부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한화가 최근 공시한 내용을 보면 3분기 중 진행할 주주배정 유상증자 규모는 4000억 원이다. 김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율 36%를 감안하면 최대 1440억 원어치를 받을 수 있다. 연간 125억 원가량을 배당으로 받는 김 회장 일가에 적지 않은 금액이다. 특히 김 회장의 세 아들에 배정될 우선주만 무려 307억 원어치다.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리기도 애매하다. 하지만 김 회장 부부와 세 자녀가 가진 한화 지분 2387만 주 가운데 이미 1562만 주가 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에 주식담보로 제공돼 있다. 돈을 더 빌리려다가는 보유주식을 거의 전부 은행에 잡힐 수 있다.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이니만큼 김 회장 일가가 인수하지 않더라도 회사 지배력에는 영향이 없다. 하지만 최대주주가 실권을 하면 책임경영 명분이 약해지고, 다른 주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데도 불리할 수 있다. 실권주를 인수할 투자자를 찾기도 만만치 않을 수 있고, 자칫 증자 액수가 당초 목표한 금액에 미달할 수도 있다. 특히 이번에 발행되는 우선주는 이익배당이 우선된다. 한화의 지난해 현금배당수익률은 보통주 1.2%, 우선주 2.1%다. 또 우선주가 발행되면 기존에 발행된 주식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오진원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한화테크윈 인수대금 중 미지급액 3513억 원 납부를 위한 자금 확보 목적으로 증자하는 것”이라며 “현재 한화의 시가총액 2조 8000억 원 대비 4000억 원이니만큼 대규모 주주가치 희석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의결권이 있는 보통주 지배력을 훼손하지 않고 차입금을 늘리지 않기 위한 것”이라며 “우선주 배당 지급에 따른 주당순이익(EPS)과 주당순자산(BPS) 감소를 고려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의 경우 이재용 부회장은 기존 주주가 아님에도 사재를 털어 삼성엔지니어링 유상증자에 참여함으로써 다른 주주들의 호응을 이끌어냈다”며 “김 회장 일가의 참여가 이번 유상증자 성공에 중요한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