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깨는 원균? 힘 보태는 이억기?
‘창의 귀환’은 아직 구체적 모양새를 갖추고 있진 않으나 이를 바라보는 당내 시각은 벌써부터 여러 가지 해석으로 엇갈리고 있다. 의원들 간에 복귀 정당성을 둘러싼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면 대권주자들도 여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나라당의 대권경쟁에 새로운 변수로 급부상한 이회창 전 총재. 이를 둘러싼 한나라당 내 대권경쟁 구도를 들여다보았다.
이회창 전 총재의 정계 복귀설은 오래전부터 정가에서 심심찮게 들려오는 얘기였다. 처음에는 그저 일부의 뜬소문이려니 하던 분위기가 친이회창 인사들의 지원과 이 전 총재 본인의 여러 가지 발언들이 얽히며 이제는 하나의 기정사실처럼 정가에 회자되고 있다. 지난 2002년 대선패배 직후 은퇴를 선언한 이후에도 이 전 총재는 정치권을 완전히 떠나있진 못했다. 직간접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재기’를 노려왔다는 것이 정치권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던 중 대선을 1년 남겨둔 시점에서 이회창 전 총재 행보의 모양새가 완전히 달라졌다. 지난 5일 당 공식행사인 ‘한나라포럼’ 초청특강에 모습을 드러낸 데 이어 지난 13일 경희대 특강에서는 이른바 ‘순신불사’ 발언을 내놓으면서 그의 정계복귀에 대한 세간의 시선을 더 끌어당긴 것.
이 전 총재는 이날 “상유십이 순신불사(尙有十二 舜臣不死,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고 이순신이 죽지 않았으니 염려 말라는 뜻)라는 문구를 떠올릴 때마다 전율 같은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한 “후회할 바에야 차라리 한 번 더 맞는 것이 낫다…두 번째 당하면 불의의 습격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언급하며 자신의 속내를 사실상 드러냈다.
이회창 전 총재의 발언에 대한 당내 안팎의 시각은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그의 정계복귀를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특히 최구식 의원은 ‘이순신은커녕 원균만도 못하다’며 직격탄을 날렸고 이계진 의원도 이 발언을 옹호했다. 이들이 이 전 총재를 공개적으로 ‘강력비판’하고 나선 것에 대해 대부분의 당 관계자들은 “용기 있는 발언”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이는 이 전 총재가 다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결코 한나라당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들의 발언은 곧바로 ‘창사랑’ 측의 강력한 반발을 샀고 일부에서는 이 전 총재의 복귀에 나름대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 4년 전 대선 패배를 확인하고 눈물을 글썽이는 이회창 전 총재. | ||
그러나 아직 이 전 총재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CBS라디오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19일 전국 성인남녀 586명을 대상으로 한나라당 내 대선후보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한 지지는 4.1%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이명박(52%) 박근혜(28.2%) 손학규(6.6%) 다음으로, 위안을 삼는다면 최근 대권도전을 선언한 원희룡 의원(1.2%)보다 높다는 것이다.
이회창 전 총재 측은 세간의 ‘정계 복귀설’에 대해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한 측근은 “언론에서 확대재생산한 것일 뿐이다. 오해받더라도 할 말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좌파에 대한 비판을 한 것인데 이것이 정치재개로 오인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권도전설’에 대해서는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얘기는 일절 한 적이 없다. 다만 한나라당을 도와 정권 창출하는 것에 역할을 할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발언 역시 대권도전에 대한 ‘가부’의 언급을 하지 않은 것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 있다. 즉 가능성을 남겨둔 것으로 ‘역할을 하겠다’는 발언은 바로 정계복귀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치권 관계자들은 이회창 전 총재가 앞으로 본격적 정치행보를 시작하는 것을 이미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을 위해 이 전 총재가 맡겠다는 ‘역할’은 어떤 형태가 될까. 이에 대해 박찬종 전 의원은 그가 ‘한나라당의 경선에 참여하는 대신 독자후보로 나서지 않겠느냐’고 분석했다. 박 전 의원은 “신우파연합을 만들어 독자후보로 나온 뒤 한나라당 후보가 결정되고 나면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형식 같은 걸 취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만약 먼저 한나라당 내 후보단일화가 실현된다면 이후 이 전 총재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 행사를 보장받고 힘을 싣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현 상황으로는 이 전 총재가 직접 대권에 도전하는 것보다는 이와 같은 ‘킹메이커론’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대권주자들의 심경은 결코 고요할 수 없다. 지지도 1위를 달리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새로운 변수가 결코 달가울 리 없을 것이며 더구나 이 전 총재와 지지기반이 겹치는 박근혜 전 대표 입장에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될 수도 있다. 당내에서 격한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전 총재는 구체적 역할에 대해서는 당분간 입을 열지 않을 듯하다. “구체적인 복안은 아직 없다. 모색 중”이라고 측근은 전하고 있으나 그의 흉중에는 각각의 시나리오에 대한 대책이 마련돼 있을 것이 분명하다. 과연 두 번의 대선 실패 이후 재기를 노리고 있는 이회창 전 총재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지켜볼 일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