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터서 지도자로 돌아온 ‘불사조’ 런던 향해 비상
▲ 박현성 팀피닉스 관장(왼쪽)이 제자 민현미를 지도하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이번엔 여자복싱이다
킵워킹펀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향해 도전하는 이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한 양주회사의 프로그램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UCC 공모 등 다양한 평가를 통해 최종 5명을 선정해 2년간 1인당 1억 원씩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적지 않은 액수가 걸린 만큼 누리꾼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모았고, UCC를 통해 응모한 300여 명 중 현재 최종 후보 10명이 선정된 상태다. 박현성 관장은 2012년 런던올림픽 여자복싱 금메달을 꿈꾸는 ‘팀피닉스의 꿈’으로 응모를 했다. 여자복싱은 2012년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박현성 관장은 “지난해 가을 우연한 계기에 킵워킹펀드 프로그램을 알았어요. 그래서 UCC를 만드는 등 착실히 준비를 했죠. 그런데 10월 응모를 하러 가기 전날 여자복싱이 런던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이건 하늘이 돕는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 최종 5명에 뽑히면 더없이 좋겠지만 일단 치열한 경쟁을 뚫는 과정에서 올림픽 여자복싱을 홍보하게 된 것이 더 기쁩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팀피닉스는 박현성 관장과 4명의 선수로 구성돼 있다. 2005년 ‘한국판 밀리언달러베이비’로 화제를 모은 민현미, 2009년 전국체전 우승자 소민경, 2009년 전국여자복싱선수권 챔피언 이혜미, 그리고 서울대연구원인 박주영이 팀피닉스의 멤버다. 목표는 당연히 2012년 런던올림픽. 아직 한국 여자복싱은 전통의 강호인 유럽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 북한 등에 현격하게 뒤져있다. 어려운 국내 선발전, 올림픽 출전권 확보, 올림픽 메달 도전 등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 놓여 있다. 그동안은 사비를 털어 훈련해왔는데, 이번 킵워킹펀드에서 최종 선발되면 경제적으로 큰 짐을 덜 수 있는 것이다.
참고로 지난 1월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11월) 조직위원회는 여자복싱을 정식종목으로 채택했다. 팀피닉스의 여자선수들은 올림픽에 앞서 아시안게임부터 도전한다.
밀리언달러베이비 컴백
민현미(33)는 2004년 박현성 관장을 만나 국내에서 무패의 전적으로 국가대표가 됐다. 당시에도 적지 않은 나이에 복싱에 입문했고, 또 건설회사 회계사원으로 일을 하면서 운동을 해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의 한국판 모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민현미는 2005년 대만 아시아선수권 출전을 끝으로 은퇴했다. 올림픽 출전이 목표였는데 당시 여자복싱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물론 심지어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도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선수 본인이 좌절한 것은 물론이고, 박 관장도 많이 방황했다.
이런 민현미가 2009년 9월 서울 당산동에 위치한 박현성 관장의 체육관으로 다시 찾아왔다. 런던올림픽을 목표로 다시 권투를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가뜩이나 적지 않은 나이인데 네 살을 더 먹었고, 그동안 운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4년 전 올림픽의 꿈은 4년을 곰삭은 까닭에 더 진해졌다. 여자 아마복싱 한국 최고 선수였던 까닭에 그의 재기가 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민현미는 “정말 열심히 운동했고, 한국 최고의 선수가 됐는데 갑자기 더 나아갈 목표가 없어졌다. 그래서 은퇴했는데 복싱을 잊을 수가 없었다. 결과야 어떻든, 우리의 꿈을 위해 관장님 및 3명의 동생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박현성과 피닉스걸
조폭 보스, 분신자살 시도 등으로 파란만장한 박현성의 삶은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뿌리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에 있다. 86아시안게임 전체급 석권 등 당시 복싱은 한국 스포츠의 메달밭이었다.
박현성은 소년체전 우승을 시작으로 학생시절 운동할 때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모토로 삼았다. 하지만 86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는 결승에서 84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신준섭에게 패했고, 88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도 아쉽게 2위에 그쳤다. 이런 아픔이 운동을 그만두고, ‘멋있게만 보이던’ 주먹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되는 계기가 됐다.
“항상 마음 속에서 아시아 1위,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청운의 꿈이 있었다. 정말이지 24년 만에 제자들을 통해 내 꿈을 이루고 싶다.” 박 관장은 이제 4명의 팀피닉스 여성복서와 함께 과거로 돌아간 것이다.
아마추어 복싱계에서 박현성 관장의 지도력은 유명하다. 영화 <주먹이 운다>의 실제 모델인 서철을 한국 헤비급최강자로 키워내는 등 성적에 관한 한 늘 화제가 될 정도로 최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한때 주먹세계에 있었다는 과거, 분신자살의 상처, 전과 등이 그의 발목을 잡아 제도권 지도자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격투기 쪽으로 방향을 돌려 스스로 선수로 나서기도 하고,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출신인 최용수, 지인진에 김민수 이재선 등 많은 톱파이터가 그의 제자로 거쳐갔다. 결국 따지고 보면 이번 팀피닉스의 도전은 박현성 관장이 출발점인 아마복싱으로 돌아온 셈이다.
“프로에서 여자 세계챔피언이 많은 것은 허울만 좋다면 되는 것이죠. 저는 진짜 세계 최고의 복서를 만들고 싶습니다. 내 유년기 시절의 꿈처럼 말입니다.”
킵워킹펀드의 최종 선발자 발표는 오는 2월 25일이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iner@ilyo.co.kr